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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을병씨의 죽음 2

운영자 2010.07.29 12:04:47
조회 504 추천 0 댓글 0

  등에서 끈끈한 땀이 번지던 2005년 6월 말 오후였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설가 협회 이사장 정을병씨가 가난한 문인들에게 지원되는 정부보조금 수억원을 횡령했다는 보도였다. 순간 실망감이 엄습했다. 정을병씨는 내가 존경하는 문학계 원로였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는 그가 쓴 책들이 여러 권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정신적 양식으로 해서 성장했다. 뉴스를 듣던 택시기사가 냉소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개새끼들, 눈먼 돈만 있으면 꼭 저렇게 해 쳐 먹는다니까.”


  정을병씨의 횡령사건에 대한 재판이 문학계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해 늦가을 어느 날 그의 재판결과를 알았다. 그는 징역 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사생활을 오래해 보면 선고된 결과만 가지고도 대충의 이면을 알 수 있었다. 문학계의 원로이고 칠십대 중반의 노인에게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됐다는 것은 법원이 그를 상당히 나쁘게 봤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그는 민주화공로자로까지 인정된 인물이었다. 거액의 횡령을 하고도 반성할 줄 모른다는 암시가 선고에 담겨있었다. 초겨울이 다가온 어느 날 한 작가의 소개로 정을병씨의 부인이 나의 법률사무소 문을 두드렸다. 항소심에서의 변호사선임을 위해서였다. 소박한 검은 코트를 입은 차분해 보이는 부인이었다.


 “변호사비가 300만원에 안될까요?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그래요. 감옥에서 우리 영감이 하는 말이 그 금액 이상이면 못 하겠다는군요”


  수억을 횡령했다는 정을병씨였다. 얼핏 납득이 가지 않았다. 거액의 국고금을 빼돌려 쓴 사건이면 변호사업계에서 수천 만 원 이상을 받기도 하는 사건이었다. 횡령범들은 빠져나가기 위해 변호료를 아끼지 않았다. 수십억을 횡령해서 일억을 주고 빠져나가면 이익이라는 게 범죄경제학이기도 했다. 부인이 계속했다.


 “우리 영감이 도와달라고 하는 군요. 자기 재판은 법관이나 검사와 싸우는 자존심 있는 재야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군요.”


  그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뭔가 겉에 드러나지 않는 수면 속의 빙산 같은 사연들이 틀림없이 들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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