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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을병씨의 죽음 8

운영자 2010.08.05 10:38:04
조회 415 추천 0 댓글 0

  나는 일단 보석을 청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파렴치한 횡령범이 아니었다. 그의 부인에게 연락을 했다. 


  “보석 청구를 하고 싶은데 현찰이 있으세요?”
   법원에서 보석금으로 수천만원의 현찰을 납입하라고 해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사전에 돈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감옥에 가서 영감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사채라도 얻을 건지 아니면 감옥에 계속 있을 건지 의논하고 말씀 드릴게요.”

  부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많은 작가들이 얼마씩이라도 걷어서 보석금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소설가협회 회장을 하시면서 전체 회원을 위해서 많이 헌신하셨잖아요?”

  내가 물었다.

“지금도 회원들이 전부 오해를 하고 우리 영감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몰라요. 심지어 내가 협회 돈으로 호화로운 해외여행까지 했다고 모함을 하는데 나 는 그런 호강을 한 적 없어요. 재판장이 횡령하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그 사실을 알려줄 신문도 없고-----지금 남편 옆에는 한 사람도 정말 한 사람도 돕는 사람이 없어요.”

  부인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돈 대신 재판장의 마음을 움직일  원고지 수백 장 분량의 보석청구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남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며칠 후 땅거미가 내릴 무렵 정을병씨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깨끗한 재킷과 바지를 입고 모자를 단정히 쓰고 있는 산뜻한 모습이었다.


 “감방에서 저녁을 먹고 자려고 누웠는데 교도관이 와서 짐을 싸 가지고 나가래요. 그래서 집으로 갔지. 하여튼 그동안 고맙소.”
 
  그의 말투는 잠시 어디 다녀 온 사람 같았다. 그와 마주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일심에서 재판을 받아보니까 판사가 검사 말 이외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요. 도대체 횡령을 안했다고 말해도 들어줄 귀가 전혀 없는 거예요. 판검사들이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소설을 한편 만들고 싶어요. 읽기들 싫어해도 그걸 보고 뭔가 느끼게 말이죠. 그런데 우리 소설가들이 전문적인 법조의 생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까 그런 작품들이 나오기가 불가능하지. 그게 안타까운 점이요.”

 “우리나라에 법정소설을 쓰는 분들이 더러 있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이번에 내가 감옥 안에 있으면서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소설들을 모두 읽어봤어요. 전부다 얄팍한 스토리들만 나열한 것들인데 그런 건 소설이라고 할 수 없고 문학도 아니요. 문학은 철저한 체험과 깊은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갖추어진 글이 없습디다. 내가 감옥에서 여러 사람이 있는 방에 있었어요. 내가 일흔 네 살이라고 나를 방장을 시킵디다. 그런데 좁은 감방에 변기까지 함께 있으니까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생겨요. 식사할 때도 바로 옆에서 소리를 내면서 똥을 누더라구. 그래서 내가 각자 용변을 보는 시간을 정해줬지. 겹치지 않게 하고 식사시간을 피해서 일을 보게 말이요. 작지만 그런 경험이 없으면 어떻게 감옥안의 상황을 소설로 쓰겠어요? 소설의 기본은 경험이고 철학이요.”

  그의 화두는 감옥 안에서도 오직 문학이었던 같았다.


 “이번 체험을 통해 그 안에서 발견하신 진리가 없습니까?”

  내가 물었다.


 “복도에서 걸어가는데 흉악범으로 찍힌 인간이 소리 없이 다가와 갑자기 빵 한 조각을 내 입에 물려줍디다. 그의 가슴 속에도 따뜻한 인간미가 들어있더란 말이요. 경험 없는 젊은 판사들이 어떻게 그런 휴머니티를 발견할 수 있겠어요?  법적인 관점은 인간을 보는 데는 가장 맹점인걸 알았지.”

  볼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든 진리를 발견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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