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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맑은 공기와 함께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졌다. 온몸에 찢어지듯 느껴지던 충격은 어느새 가라앉았고, 사경을 헤매이던 정신은 또렸해졌다. 구토에 가까웠던 기침이 어느정도 잠잠해졌을때,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움직여지는 사지를 이용하여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티즈는 어느덧 나의 앞에 우두커니 서서, 두 날개를 번쩍이는 한 마리의 거대한 새를 몬스터볼에 집어넣었다.
'썬더인가...'
고개를 들어올리는 나를 발견한 마티즈는 슬쩍 나를 바라보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이야기했다.
"일단 급한대로 포자 가스는 전부 날려버렸지. 환풍기도 작동시켰으니 문제는 없을거야. 그리고 한가지만 경고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신 경솔한 행동따윈 하지 말라고. 무모한 것이 매번 옳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순간, 어둠 너머에서 또다시 무언가의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마티즈는 고개를 돌려 어두운 복도 너머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아직까지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나의 앞에서, 무언가의 부품을 매만지던 그는 대뜸 나에게 물어왔다.
"이봐 플라타느, 세상에는 참 위협적인 포켓몬들이 아주 많지. 그렇지 않은가?"
그의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계속하여 이야기했다.
"그런데 참 재미있지 않나? 인간이 그 공포스런 수많은 생물들 사이에서 살아남다니 말이야. 그것도 그 자리에 군림해서 말이지."
어느덧 어둠 너머에서 무언가를 완벽히 갖춘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우뚝 섰다.
"이참에 한가지 물어보고싶군. 과연 인간이 어떻게 도태되지 않고 포켓몬의 위에 군림하게 되었는지 말이야. 혹시 자네는 알고있나?"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나의 뇌리에 스치었다. 힘겨운 숨결 너머로, 무언가 대답하기도 전에 또다시 마티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말이야.."
어둠 너머로 그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비치었다. 거대한 원통에 무언가 집어넣던 그는 슬쩍 뒤를 돌아 나를 향해 크게 미소지었다.
"왜냐하면 인간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거든."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눈앞이 강렬한 섬광으로 가득 차올랐다. 밀려오는 강풍과 함께 나는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크윽!"
"자 그럼, 한번 들어가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들고있던 거대한 쇳덩이를 집어던졌다. 바닥에 경쾌하게 울리는 굉음과 함께 어느새 그의 손에는 군장에서 꺼낸 새로운 소총이 순식간에 조립되어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귀가 터질듯한 총소리와 함께 그가 달려나갔다. 저 멀리서 찢어지는 괴물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내 다시 들려오는 몇번의 폭발음, 그 너머로 마티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따라오라고, 박사!"
이내 다시 울려퍼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쏘아올리는 불꽃이 저 멀리서 일렁이었다. 나는 가만히 들려오는 총성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하였다.
'그것이 그의 정답인가.'
나를 향해 크게 미소짓던 그의 모습이 어둠 너머로 스치었다. 인간이 도태되지 않은 이유, 아니,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포켓몬이 인간에게 굴복하는 이유, 인간이 그 수많은 포켓몬을 지배하는 이유, 오래된 질문이었다. 오래된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그 답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저 인류의 강력함 때문이었다.
'틀린 말은 아닌것같군.'
순간 다시 뇌리에 통증과도 비슷한 것이 다가왔다. 그것은 포자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던져진 의구심, 끝내 찾지 못하였고 항상 헤매이었던 정답, 그 순간 나는 그 해답중 한가지를 손에 넣었다. 그것은 확실하게 나의 눈앞에 던져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던 정답은 아니었다. 완전히 방향이 틀어져있었다. 혹은, 내 방향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엇나가버린, 하지만 그 무엇도 진짜 정답은 없을것이다.
저 멀리서 다시금 울려오는 총성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눈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 너머로 마티즈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어느새 맑게 개인 정신은 온몸을 가뿐하게 만들었고, 전신에 흐르던 고통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있었다.
'인간과 포켓몬이란..'
잠시 한숨을 내쉬던 나는, 이내 마티즈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은 괜찮아졌나? 무모한 친구."
벽에 기대어 지도를 바라보던 그가 나에게 물어왔다.
"버섯 포자를 들이마신것은 아무래도 처음이겠지. 방독면의 중요성은 확실히 배웠을거야."
"방금 전엔 감사했습니다."
나의 목소리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또다시 지도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나에게 말하였다.
"자넨 정말 죽을뻔했어. 아주 위험한 상황었다고. 도대체 초련은 어떻게 구한거지? 무사히 돌아온것이 신기한 일이군."
"빨리 달려간 보람이 있더군요."
내가 슬쩍 웃어보이자 그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시원한 웃음을 내게 보였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 그 골치아픈 여자 말이야."
"아, 저는 그저 중요한 책임을 지려고 했을 뿐입니다."
"뭐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지. 아무튼 현명한 선택을 했군. 파라섹트의 수가 지금처럼 많아지기 전에 그곳을 올라갔으니."
그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있던 지도를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군장에서 몇가지 부품들을 꺼내 그것들을 매만졌다.
"전력실은 이쪽이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능숙하게 총기를 조립해나갔다. 그의 손에서 잠시 철컥이던 화기는 어느새 완성된 모습으로 순식간에 그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다시한번 말하는데, 이런 일은 이번 한번뿐이야."
갑작스럽게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없어. 자네의 마음을 이해못하는것은 아니야. 하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법이라고. 자네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구할 수 있지?"
순간, 눈앞에 작금의 현실이 펼쳐졌다. 그의 목소리가 나의 정곡을 찔렀다. 소각로에 버려지던 포켓몬, 각지에서 모인 피난민, 파라섹트에게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그리고 지금은 대정전이었다. 파라섹트의 습격을 막아주던 태양광은 모두 사라졌다. 잔혹한 현실감이 전신을 타고 나를 집어삼켰다.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
소각로에 끌려가던 포켓몬이 눈앞에 그려졌다. 내가 두고온 수많은 것들이 눈에 다가왔다. 사실, 너무나도 오만했던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셀 수 조차 없는 많은 생명이 갑작스런 대참사에 휩쓸리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이다. 그저 그들을 방관한 채, 이 대참사를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을것이다.
애써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나는 시선을 떨구어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구할 수 없습니다."
나의 대답에 마티즈가 마치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기도 잠시, 그는 다시 나를 향해 웃어보이며 이야기했다.
"잘 알고있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에 쥐어진 총기를 들어 장전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울려퍼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이 뭐가 있나, 그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그는 앞장서서 복도를 향해 나아갔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네가 말하는 그놈을 찾으러 간다거나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길다란 쇳덩이 하나를 휙 던졌다. 손에 착 감기는 묵직한 감각, 총기였다.
"그럼 빨리 갔다오자고."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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