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 동네에서 옷가게를 했던 60대 여성 A씨는 최근 나온 뉴스를 보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본 기사는 ‘동대문 의류 도매시장이 60년 만에 주5일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가게를 운영할 당시만 해도 옷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동대문 새벽 시장에서 옷을 떼오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 역시도 새벽마다 도매 시장을 돌며 몇 봉지씩 짐을 부려뒀다가 차에 싣고 돌아오곤 했었죠. 그에게 동대문은 낮보다 밤에 더 빛나는 시장이었습니다.
국내 최대 의류 도매시장인 동대문시장이 60년 만에 주5일제를 도입했습니다. 패션전문 도매상가 디오트와 청평화시장은 2022년 3월부터, 테크노상가는 2월 25일부터 주5일제에 들어갑니다. 주5일제 운영으로 도매상가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정오까지는 문을 열고, 금요일 낮부터 일요일 오후 11시 50분까지는 장사를 쉽니다. 일요일 밤 12시부터는 영업을 재개합니다. 원래는 금요일 밤을 포함해 주6일간 문을 열었습니다. 주5일제에 들어가는 이들 상가에 입점한 업체는 3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업체가 주5일제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쉬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동대문 도매시장을 찾는 소매상들의 수도 적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다른 상가들까지 하나둘 주5일제를 시행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대부분의 도매 업체들이 주5일제에 동참하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청평화시장. /청평화패션몰
동대문 도매시장 상인들은 2015년부터 주5일제 도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은 상인들 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번번이 주5일제 시행에 실패했지만, 최근 들어선 분위기가 달라졌고, 그 결과 주5일제를 시행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디오트상가운영위원회와 청평화시장에 따르면 주5일제 도입에 찬성한 상인들은 각각 89.7%, 90.3%였습니다. 10명 중 9명은 주5일제에 찬성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왜 상인들은 7년여 만에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던 것일까요.
온라인 쇼핑과 MZ세대 사장이 바꾼 변화
이전에는 A씨의 사례처럼 다음날 가게 영업을 하려면 전날 밤 영업을 마치고 미리 동대문에서 옷을 사입해야만 했습니다. 옷을 사와야 손님들에게 판매할 옷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아침이나 낮에 옷을 떼어와도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침에는 장사 준비를 해야 하고, 낮부터 저녁까지는 옷을 팔아야 하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상인들이 도매시장에서 옷을 사올 수 있는 시간은 그래서 새벽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옷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옷을 사면 직접 만져볼 수 없고, 옷 색깔도 화면에 따라 다르게 보여 정확한 색상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오프라인 매장에 비하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임대료가 나가고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 오프라인 매장들에 비해 인터넷 쇼핑몰은 물건을 보관할 창고와 홈페이지만 있으면 됐기에 운영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고, 이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인터넷 쇼핑몰 도입 초기에는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어린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쇼핑몰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전보다 상품 품질도 좋아지고 실착 리뷰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온라인 주문 실패 확률이 크게 줄어들면서, 직장인들은 물론 중장년층도 이제는 인터넷으로 옷을 주문하고 있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의 한 도매상가에 상인들이 사입한 상품들이 쌓여있다. /링크샵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의류 시장이 더 확장하는 것과 도매시장의 주5일제가 무슨 관계가 있나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매장과 달리 창고에 미리 옷을 쌓아두기만 하면, 이전처럼 매일 도매시장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설령 주말에 주문이 많이 들어오더라도 발송은 주로 주중에 이뤄지기 때문에 주말에 도매시장을 찾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주중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말에는 도매시장을 찾는 이들이 더 줄테니 도매 상인들 입장에서는 굳이 주말까지 나와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진 셈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는 젊은 사장들이 의류시장에 많이 유입된 것도 주5일제 시행에 영향을 미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풀이됩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쇼핑몰 홈페이지가 없어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카오스토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물건을 쉽게 판매할 수 있어, 기성세대에 비해 자본이 부족한 젊은 사장들도 의류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옷을 보는 안목만 있다면 적은 자본으로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보니, 최근 의류 시장에는 젊은 사장들이 대거 늘어났습니다. 의류시장에 이들이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환경도 주5일제 시행 등 워라밸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인들이 사입한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쉐어그라운드
동대문 도매시장의 변화는 이제 시작일지 모릅니다. 벌써부터 적지 않은 상가들이 주5일제를 앞두고 있고, 일각에서는 이에 더해 운영 시간 자체를 바꾸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소매상들이 워낙 많아지고 있고, 이들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들은 낮에 매장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 굳이 새벽이 아니더라도 낮에 옷을 사입하러 올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동대문 대형 쇼핑몰인 apM은 운영시간을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로 바꾸기로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잠시 계획을 보류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만약 이들 업체가 운영시간을 바꾼다면 동대문 도매시장은 60년만에 주5일제에 더해 낮 시간 운영이라는 파격적인 변화까지 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벽에 열리는 동대문 도매시장에 추억이 있는 분들은 많이 안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에 한참 물건을 떼러 돌아다니다 포장마차에서 먹던 국수 한그릇이 그리운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새벽 도매시장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동대문운동장처럼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 아니면 새벽 시장이라는 전통을 계속 이어나갈지 동대문 도매시장의 내일이 궁금해집니다.
글 시시비비 포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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