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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23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27 15: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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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Sin makes its own hell (3)


해경은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과거 자기를 구해준 건 이제 더는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구해준 사람이 초자연현상에 더 가까워진 모습을 보면 후회하거나, 직분에 충실해 자신을 적대할 게 분명했다.


“하, 하하.”


해경은 저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더는 인간의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편린을 마주하게 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해경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인간성의 끈일지 몰랐으나, 해경은 오히려 이 만남을 기회로 남은 인간성을 끊어내기로 했다.


승호는 대응제거적출 팀 특유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같이 다니는 사람도 없이 그는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주위 식물들은 그를 인식하나 별것 아닌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도시를 뒤덮은 식물들이 전부 한때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 역시 눈앞에서 사람이 존엄해지는 광경을 본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으면서도 자칫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한 풍경에 넋을 잃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승호는 깜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아무도 없었고, 자신이 지나온 길과 묘하게 배치가 바뀐 식물만 보였다. 그는 통신을 위해 입술을 열었지만, 어느 순간 귀에선 노이즈만 잡히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무선 이어폰을 뺐다.


“감이 좋네요. 역시 대응제거적출 팀이라 그런가?”


잇따라 들리는 목소리에 승호는 빠르게 감을 잡았다. 그는 다시 전진하면서 말했다.


“무사했구나.”


“……제가 누군지 아세요?”


“영성 센터에서 구해준 애, 맞지? 이름이 뭐더라.”


승호는 눈을 굴리다가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해경은 그를 비웃었다.


“말해줘도 모르실 텐데.”


“뭐, 그땐 상황이 급했으니까. 결국 처리반은 나간 것 같구나.”


“공식적으로는 말이죠.”


승호는 여유롭게 대꾸했다. 해경 역시 여유만만하게 받아쳤지만, 속으로는 조바심이 났다. 그에겐 경계하는 기색이 없었다. 면식이 있다고 안심한 것인가? 아니면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몸의 반응이 고장이라도 난 것인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란 사실에 해경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감정은 주위의 식물에 전달되었다. 식물들의 채도가 순식간에 낮아지며 순식간에 뒤틀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윽!”


“아저씨, 언제까지 여유 부리실래요?”


“여유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승호는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지만, 그렇다고 전진하는 걸 멈춘 건 아니었다. 해경은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심히 거슬렸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그의 다리를 분지를 수 있었다. 무릎을 박살 내고, 기어 다니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선 자신이 그에게 패배한 것 같았다. 해경은 오기가 생겼다.


“어째서 혼자 오신 거죠? 대응제거적출 팀은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게 기본일 텐데요?”


“아, 그거. 휴가 나왔다.”


“휴가요? 아까는 보고하셨으면서.”


“그럼 위험지역에 들어가는데 보고도 없이 들어갈까.”


해경은 승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맨몸의 사람이, 어떤 제물도 없는 인간이 포천시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아무리 봐도 죽으러 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 대체 이곳엔 왜 오신 거죠? 이곳의 사람들처럼 존엄해지기라도 하고 싶으신 건가요?”


“글쎄다. 나도 그건 잘 모르겠네.”


승호는 귀를 천천히 뗐다. 식물들의 채도는 여전히 낮아진 채 그대로였지만, 다행히 이전처럼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그는 다시 허리를 펴고 천천히 걸었다. 해경은 그의 뒤를 천천히 밟았다.


“너무 강한 척하지 마세요. 다 보인다고요. 저는 당신의 본질이 보여요.”


“위험한 친구랑 가까이했군. 어른이 곁에 있어주지 못한 탓이야.”


승호의 말에 해경은 이를 까득 갈았다. 어른의 존재, 단순히 법적 연령으로 성인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해경의 심기를 건드리긴 충분했다. 해경에게 어른이란 무책임하고 비열하며 이기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자식을 희생했고, 그마저 자멸했다. 부모다운 노릇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부모의 역할을 떠넘겼고, 해경은 거기로부터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서 만난 두 번째 어른은 성진이었다. 오로지 자기 뜻과 목적을 위해서 자기 자신조차 연기해내는 의뭉스러운 남자였다. 그는 늘 그래왔듯 후임으로 들어온 해경을 멋대로 시험하고, 내몰았다. 그리고 해경의 마음을 천천히 휘게 했다.


그 이후로 마주한 V.ANK의 간부들, 예측예지예언 팀의 ‘어른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자기들이 마주한 절망향의 미래에 좌절해 다른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해경은 간편한 퇴사 절차를 밟고, 그렇게 V.ANK에 발만 걸친 채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어른들을 벗어난 해경이 마주한 건 어른들이 망쳐놓은 형편없는 세계였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건 바벨론의 사자, 왕의 신하를 자처하는 초자연현상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방법’들을 알려줬고, 그것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그런데 어른이라니. 어른이 곁에 있지 않아서 그렇다니. 승호 주위의 색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잿빛밖에 남지 않은 풍경에 승호는 당황하며 주위를 살피며 경계했다.


“어른이라고 하셨어요?”


“이건…… 상상 이상이군.”


“당신은 뭐, 좋은 어른이라도 된단 건가요?”


해경은 잔뜩 비꼬아서 말했다. 그렇게 말한 순간, 해경의 머릿속엔 그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무단 출동이긴 해. 확인되지 않은 제보를 받고 별다른 명령이 없는데 장비를 챙기고 나간 거니까. 널 병원에 데려다주고 복귀하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거다.’


“절 구하고 나서 징계위원회는 어떻게 됐죠?”


“갑자기 그걸 묻는 건가?”


승호는 숨쉬기가 갑갑한 걸 느꼈다. 해경이 품고 있는 감정이 강제로 주입되는 것 같았다. 복잡하고, 엉켰고, 꼬였으며, 무거웠다. 이런 감정을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 누구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았다.


“대답하세요.”


“감봉으로 어떻게 타협을 봤지. 어쨌든 무단으로 나가서 사람 하나 구하고 온 길이었으니 말이지. 네 출신에 대해선 비밀로 했다. 함부로 당사의 치부를 들쑤실 순 없었으니 말이야.”


“……그런가요.”


해경은 심중의 불쾌함이 묘하게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성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자, 식물들이 승호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승호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나아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돌아와라. 돌아와서 사람으로 살아.”


“사람으로 살라고요? 저더러 죽으라는 말인가요?”


“죽으라고 하지 않았어. 사람으로 살라고 했다.”


해경은 그 순간 승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승호는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해경과 마주했다. 승호는 자기가 알던 모습과 너무 달라진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애들은 정말 금방 크네.”


“당신은 대응제거적출 팀이잖아요. 그러면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나요? 사람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초자연현상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알다마다. 그러니 사람으로 살라고 말하는 거다.”


승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숨을 쉬지 못했다. 목을 잡았지만 구멍이 막혀서 숨을 쉴 수 없는 것도, 공기가 없어서 숨을 쉴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승호는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입만 뻐끔뻐끔 벌린 채 들이마시지도, 내쉬지도 못했다.


“아, 죄송해요. 너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해서.”


해경이 손가락을 튕기자, 승호는 엎어지며 겨우 숨을 내쉬었다. 엎드린 채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며 해경은 경멸하듯 말했다.


“그게 인간의 약함이에요. 그게 현실이라고요. 그런데도 저더러 사람으로 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래. 하지만 그게 너더러 죽으라는 말도, 끔찍하게 유린당하라는 말도 아니야. 사람답게 산다는 건, 아주아주 어려운 일이거든.”


승호는 숨을 고르며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해경은 승호가 일어날 수 있을지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넘어질 때 무릎의 힘줄을 끊었다. 승호는 몇 번 다리를 주물러보더니, 혀를 차며 상반신만 일으켰다.


“이름이 뭐지?”


“차해경이요.”


“그건 네 이름인가?”


승호의 말에 해경은 한순간이지만, 미약하게 마음이 쿡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양심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해경은 그제야 심중의 불쾌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곧 다른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다른 이름은 당신이 알 것 없어요.”


“말해주지 않아도 돼. 사실 오면서 들었거든.”


“네?”


승호는 무릎을 짚었다. 해경은 분명 그의 힘줄을 끊었던 걸 기억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힘을 주더니, 기적처럼 일어나 다시 해경과 마주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었으나, 그는 애써 웃으려고 했다.


“김민지. 오랫동안 쓰이지 않던 네 이름이겠지. 미안한 얘기지만, 네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네 얘기를 듣고 온 길이다. 난 너와 대화하려고 이곳에 왔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둠에 잠식되지 않은 해경의 남은 얼굴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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