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이란 예로부터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라 배웠다. 들통나는 순간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깨진다. 하지만 여기 몰래 두 집 살림을 하다 아내에게 들키고도 더 행복한 생활을 얻은 운 좋은 남편이 있다. 파충류샵 와이엔케이렙타일의 구진모(31) 대표다.
구 대표는 두 집 살림(?) 이외에도 유별난 파충류 사랑으로 어릴 때부터 남다른 에피소드가 많았다. 파충류와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뱀 사육장을 열어 놓고 잠들어 간담이 서늘해졌던 이야기, 생일 때마다 타란툴라를 선물 받은 이야기, 아내 몰래 방을 잡아 파충류들을 키웠던 사연 등. 구 대표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뱀, 거미, 도마뱀 등 파충류는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무섭고 징그럽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떻게 파충류에 빠지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어요. 친구가 ‘진모야 이거 한 번 봐봐’라며 타란툴라 거미를 보여줬는데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습니다. 친구와 함께 가서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키우게 해달라고 했어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그 길로 바로 친구와 함께 타란툴라 거미를 입양하러 갔어요. 무섭게 생겼단 말이 많은데 제 눈에는 그저 귀여운 털북숭이 거미일 뿐이었어요.”
-뱀, 도마뱀, 사마귀, 장수풍뎅이 등 온갖 파충류를 키웠다고 하는데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초등학교 때 수원에서 살다 버스가 네 시간에 한 대만 다니는 진짜 시골로 이사를 갔어요. 어머니께서 화단을 가꾸는 걸 좋아하셔서 집 앞에 꽃들이 굉장히 많았죠. 나비도 날아오고, 벌도 오고 새도 많았어요. 그걸 보는 순간 사마귀를 키우면 나비, 벌 등을 먹이로 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근처에서 잡은 사마귀를 시작으로 밤에 날아오는 사슴벌레, 친구들과 잡은 장수풍뎅이, 아버지가 산에 가서 잡은 하늘소까지 키웠어요. 곤충학자가 꿈이었던 제게는 너무나 즐거웠어요. 생일 때마다 타란툴라를 선물로 받았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타란툴라와 사마귀 알도 부화 시켜보고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는 집 2층에 있던 욕조에 발효 톱밥을 가득 담아 애벌레 사육도 했어요. 이후 레오파드게코라는 애완 도마뱀을 시작으로 도마뱀에도 빠졌어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땐 부모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던 뱀도 키우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께서도 실제로 보시곤 ‘생각보다 귀엽네’라고 말씀하시고는 넘어가주셨어요. 어느 날에는 뱀 사육장 문 단속을 잘못했는지 자고 일어났는데 왼쪽 겨드랑이 밑이 차가운거예요. 봤더니 뱀이 거기서 자고 있더라고요.” (웃음)
-직업군인 시절에도 관사에서 파충류를 키웠다고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주변에는 잘 알리지 않았죠. 제 취미생활이었고, 파충류 키우는 걸 알면 다들 놀라면서 무섭지 않냐, 독 있냐, 징그럽지 않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어서 딱히 말하지 않았어요. 파견 활동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몇몇 친한 후임, 선임들에게만 이야기하고 아이들 밥과 물을 부탁하긴 했어요. 그중에는 절대 파충류는 못 만진다던 후임이 한 명 있었는데 제 부탁으로 밥 주고 물 주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자기도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보다 보면 정말 예쁘고, 귀엽거든요.”
-파충류, 특히 뱀을 키우다 물린 일은 없었나요?
“물리거나 다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일부러 괴롭히지 않는 한이요. 다만 한국미래진로센터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진로교육을 하려고 1m 정도 되는 뱀을 데려갔다가 뱀이 스트레스를 받았지는 제 손을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뱀에 물리면 이렇게 된다, 피도 난다, 상처는 이렇다, 소독은 이렇게 하면 된다 등등 평소보다 더 많은 걸 알려줄 수 있었어요. 좋은 교육이 됐죠.” (웃음)
-아내도 파충류를 좋아하나요?
“직업군인 시절 와이프를 만났는데 그때는 파충류를 만지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었죠. 그저 제가 몇 마리 키우는 것만 알고 결혼했는데, 사실 다른 곳에 방을 잡고 거기서 도마뱀들을 엄청 사육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에는 ‘야근한다고 거짓말하고 퇴근하고 도마뱀들 밥 주고 가야지~’했는데 와이프가 보고 싶다고 영상통화를 건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가 걸렸죠. 고맙게도 와이프도 취미생활로 인정해 줬고 자기에게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어요. 몇 번 도마뱀을 챙겨주다 와이프도 파충류에 빠졌고, 이젠 직접 분양을 할 수 있는 지식과 실력까지 갖췄어요.”
-파충류샵을 연 계기가 궁금합니다.
“경기대학교 1학년 재학 중인 2010년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군 생활이 제게 정말 잘 맞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하고 싶은 건 해야한다는 생각에 자퇴를 신청하고 2011년 바로 부사관으로 직업군인이 됐어요. 너무 좋았는데 2017년쯤 도마뱀을 전문적으로 사육하기 위한 공간을 임대하기 시작하면서 도마뱀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어요. 파충류를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그 공간에서 파충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고요. 여기에 빠져 전역을 결심하고 2018년 파충류샵을 오픈했어요. 직업군인 시절부터 도마뱀 전문 블로그를 운영해왔고 지식을 공유하는 소모임, 카페 활동 등을 엄청 하면서 인정도 받고 있던 때라 자신감도 있었어요. 망해도 아직 젊은 나이니 괜찮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죠. 결혼도 했고, 이미 아이도 있었던 시절인데 말이에요.” (웃음)
파충류와 함께하는 아이들./ 와이엔케이렙타일
-매월 500만원 이상씩은 꾸준히 매출이 나온다고 합니다. 파충류는 분양 가격이 보통 어느 정도인가요. 가장 비싼 파충류는 무엇인가요. 샵을 찾는 고객들은 대체로 어떤 분들인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분양하고 있는 아이들은 평균 분양가가 8만원정도예요. 사육장까지 하면 13만원 정도가 평균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가장 인기가 많은 파충류는 레오파드게코, 크레스티드 게코, 육지거북 등이에요. 개인 거래로 분양하는 파충류 가운데는 한 마리에 3000만원이 넘는 친구들도 있어요. 오시는 손님들은 정말 다양해요. 올해 초까지는 4살 아이가 최연소 손님이었는데 3살 아이가 찾아오면서 최연소 손님이 바뀌었죠. 이렇게 어린 친구들부터 40~50대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이 오세요. 혼자 살아도 키울 수 있고, 가족과 함께 살아도 털이 날린다든지 하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키울 수 있거든요. 정말이지 환상적인 친구들입니다.”
-강아지, 고양이는 어릴수록 인기가 높고 비싼데 파충류는 성체일수록 가격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번식으로 부수입을 올리기 위한 것일까요?
“번식으로 부수입을 올리려는 목적도 존재하지만 사실 파충류를 돈을 보고 키우시는 분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웃음) 보통은 처음에 한 마리로 시작했다 너무 예쁘다 보니 이 친구들의 2세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맞는 짝을 찾게 되고, 한 마리 두 마리 차차 늘어가다 혼자서는 전부 케어할 수 없을 때 분양이라는 걸 처음 하거든요.”
-강아지의 경우 치와와나 말티즈에서 시바견, 비숑 등으로 인기가 옮겨왔는데요, 파충류계에도 트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요즘 인기 있는 친구들은 누구인가요?
“요즘 트렌드는 곤충을 주지 않고 사료로 키울 수 있고, 온열 기구 없이도 상온에서 잘 지내는 크레스티드게코라는 도마뱀이 가장 인기가 많아요. 다 커도 성인 손 크기 정도 밖에 안 돼 작은 사육장과 사료만으로 사육이 가능하고, 외모 귀엽고 사랑스럽거든요. 색깔도 다양해요. 전 세계적으로 없어서 못 키우는 아이예요.”
-파충류를 주문하면 직접 데려다주시기도 하신다고요. 지방일 경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이렇게 다 직접 보내주시나요? 보통은 직접 보러 와서 데려갈 것 같은데,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가요?
“손님의 99%가 직접 오셔서 보시고 예쁜 아이로 데려가세요. 다만 그렇지 못하는 손님들은 사진으로 먼저 아이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분양을 결정하세요. 그렇게 분양된 친구들은 제가 직접 데려다주고 있고요. 직접 오지 못하는 경우는 1% 정도로 드물어요.”
-샵 운영 이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현재는 여주곤충박물관에서 아이들에게 파충류를 소개해 주고 분양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으며 파충류샵과 생물탐험대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어요. 한국미래진로센터에서 파충류 진로강사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롯데, 신세계, 애경백화점 등 여러 백화점에서 파충류 박람회도 개최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파충류는 관심이 생겨 일부러 샵에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 매력을 알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 전시 카페를 만들어 파충류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파충류 친구들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많은 분께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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