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만점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혼공’(혼자 공부)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혼공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혼공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2019학년도 수능 만점자이자 서울대 의과대학 의학과 1학년 김지명(21)씨다. 그는 ‘불수능’이라 불렸던 당시 수능에서 현역 고등학생으로 전 과목 만점을 받았다. 이어 서울대 의과대학 정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학원도 과외도 없이 오직 인강, ‘혼공’을 통해서다.
그가 혼공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 발병하면서다. 오랜 기간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하며 학원·과외뿐 아니라 학교 수업마저도 제대로 듣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꽂힌 한마디. ‘붕어빵처럼 살면 안돼, 누군가 뒤집어주길 기다리면 다 타죽어.’ 한 인터넷 강사의 말인데, 결국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말을 듣고 김지명씨는 ‘스스로 뒤집는 붕어빵’이 되기로 결심했다.
/김지명씨 제공
-어린 나이에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학업까지 병행했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딱히 할 게 없었어요. 평소 정말 좋아했던 게임도 그런 상황에선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수학 문제만큼은 호기심이 생겨 자주 풀었어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어서 학교에서 못 들은 수업은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보충했어요.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픈 걸 핑계 삼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중학교 입학 후 처음 치렀던 진단평가와 중간고사 등에서 1등을 했어요.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게 의대 진학을 꿈꾼 계기가 됐나요.
“중학교 때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의사를 꿈꿨어요. 당시 주치의 선생님이 ‘꼭 나을 수 있으니 치료대로만 잘 따라오라’고 했는데 그 말이 큰 안정감을 줬어요. 언젠가 환자에게 이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tvN ‘유퀴즈’
/tvN ‘유퀴즈’
김지명씨 수능성적표. /김지명씨 제공
-책 제목이 ‘스스로 뒤집는 붕어빵’인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붕어빵 이야기는 메가스터디 현우진 선생님이 했던 말이에요.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재밌는 얘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공부하기 싫을 때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서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잖아요. 저도 병에 끌려다니면서 그런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자기 인생인데 방관적인 태도보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나를 위한 것이잖아요. 제 상황을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기회라 여기고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었어요. 제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상황을 뒤집어서 작은 성취라도 이뤄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책에서 디테일한 공부법보다 ‘혼공’ 중요성을 강조하던데.
“주변을 보면 공부법이 잘못돼서 성적이 안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각자 공부하는 방식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공부법을 따르기보다 자기만의 공부 습관을 만들고, 그걸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코로나19로 학교나 학원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기주도학습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올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공부의 원동력은 성취감인데, 사소한 것에서 나의 성취를 발견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어제 틀렸던 문제를 오늘 맞췄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나만의 공부 방법이나 루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교에선 책과 문제집을 위주로 공부했고, 집에선 인강을 들었어요. 루틴을 정해놓기보다 그때 그때 부족하다고 느끼는 과목을 공부했어요. 만약 집중이 잘 안되거나 심적 변화가 생기면 하고 싶은 과목을 먼저 했어요. 수험생 때 대략 100가지가 넘는 문제집과 모의고사를 풀어본 것 같아요.
먼저 국어는 기출문제를 위주로 공부했어요.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비문학인데, 답으로 고른 선지에 대해 판단 근거를 본문에서 정확하게 찾는 연습을 했어요. 내 풀이 과정에 대해 절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수학은 자기 수준을 파악하고 맞춰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만약 2점이나 3점 문항을 몰라서 틀렸다면 기본 개념을 다시 점검하는 게 좋아요. 4점 문항 중에서 킬러 문항은 자기만의 접근법을 만드는 게 좋아요. 해설 강의를 찾아보면서 자기만의 풀이법을 찾는 것이죠.
영어는 제가 예습을 가장 많이 했음에도 가장 성적이 안나오는 과목이었어요. 기본적으로 단어를 많이 외웠어요. 문장 구조가 복잡할 때는 문장의 전체 주어와 동사를 빠르게 찾는 연습을 했어요. 수식어를 구분해서 빼놓고 주어와 동사를 찾아두면 해석하기 편했던 것 같아요.”
-원래 게임 덕후였다고요. 오랜 취미를 끊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도 쭉 게임을 했어요. 다만 어머니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하거나 새벽 시간에 했죠. 그러다보니 다음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이를 알아차린 어머니가 제가 게임하는 공기계를 숨겨두시곤 했죠. 그럼 전 어머니가 외출할 때마다 이곳저곳을 뒤져서 공기계를 찾아냈어요. 숨기는자와 찾는자의 대결처럼 그게 계속 반복됐는데 어느 순간 현타가 왔어요. 그때가 수능이 반년도 안 남은 시점이었는데 공기계를 찾고 있는 제 자신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게임은 잠시 접어두고, 대신 웹툰을 한두 편 정도 틈틈이 챙겨 봤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교육 방법도 눈에 띄는데요.
“어머니는 공부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당시 어머니는 추어탕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노력해서 얻으라고 말씀하셨죠.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직업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라고요. 작은 일이라도 숙제를 하거나 목표치를 채우면 갖고 싶은 걸 사주셨어요.”
-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수험생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사실 수능이 다가올수록 공부가 손에 잘 안잡혀요. 시험 전날이 제일 급한데 가장 공부가 안되죠. 공부를 해도 크게 성적이 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팁은 실수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것이에요. 실전에서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실수만 줄여도 실력을 올릴 수 있어요.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남들이 자주 하는 실수도 빅데이터 삼아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좋겠죠. 무기력한 통념에 휩싸이지 말고 하던 대로 마지막까지 꾸준히 하셨으면 좋겠어요.”
-수능 당일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도시락 싸갈 때도 평소에 먹던 볶음밥 그대로 가져갔어요. 평소에 안 먹던 것을 갑자기 먹지 말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김지명씨 제공
-현재 의과대학 생활은 어떤가요?
“1~2학년 동안은 예과 기간이라고 해서 의학에 입문하는 가벼운 과정을 듣고, 원하는 강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어요. 잠시나마 공부의 부담에서 벗어나 관심 있는 분야를 탐구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축제도 재밌게 하고 동기들과도 잘 어울렸는데, 이제 본과생이 되면서 큰 여유는 없을 것 같아요. 늘어난 공부량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사가 되고 싶나요?
“어떤 과 의사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환자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소아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에 압도되고 치료에 지칠 때마다 주치의 선생님이 저를 위로하고 안심시켜주셨는데,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의사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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