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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이 없다 — 상속이 남긴 이야기[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

파이낸셜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12.15 09: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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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생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가족과 재산의 얼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이름보다 오래 남는 것은 재산의 문제일 때가 많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채 잦아들기도 전에, 남은 가족들 사이에서는 “이건 누구 몫인가요?”라는 질문이 조심스레, 혹은 격렬하게 오간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남긴 재산은 법적으로 상속재산이라 불리고, 자동적으로 상속인들에게 넘어간다. 재산의 범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집, 예금, 주식뿐 아니라 보증금이나 보험금, 누군가에게 받을 돈 같은 권리까지도 포함된다. 생각보다 폭이 넓은 셈이다.​

상속이 개시되면, 피상속인의 재산은 일단 상속인들이 공유한 상태가 된다. 형제들이나 배우자, 자녀들이 모여 서로의 몫을 정하는 일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처음엔 “법정상속비율대로 나누자”고 시작하지만, 곧바로 계산에 여러 변수들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분쟁의 불씨가 되는 핵심 단어가 ‘특별수익’과 ‘기여분’이다.​

“남겨진 통장과 등기부, 그리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 상속은 언제나 숫자와 감정이 함께 움직이는 계산이다.”​
특별수익은 피상속인이 생전에 특정 상속인에게 미리 재산을 준 경우를 말한다. 가령 한 자녀에게만 아파트를 사주었다면, 그 재산은 이미 상속분의 일부를 앞당겨 받은 것으로 본다. 돌아가신 부모 입장에서는 “형편이 어려우니 좀 도와준 것뿐”이었겠지만, 다른 형제들의 눈에는 불공평한 차별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법원은 피상속인의 생활수준, 가족 사정, 증여의 목적 등을 종합해 그것이 특별수익에 해당하는지 판단한다.​

반면, 평생 부모를 모시며 재산 유지나 형성에 특별한 기여를 한 상속인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은 ‘기여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병든 부모를 간호했거나, 생전의 재산을 함께 불린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결국 법은 상속재산에 이 두 가지 “특별수익과 기여분”을 더하고 빼서 보다 공평한 몫을 계산하려 한다. 하지만 공평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분쟁은 피하기 어렵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지만, 누군가는 더 많이 돌보고, 누군가는 더 많이 받았다. 특별수익과 기여분은 그 엇갈린 시간의 무게를 숫자로 환산하는 작업이다.”​
오늘날 상속은 재산의 크기보다 가족의 형태에 따라 더 복잡해진다. 과거처럼 단순한 가족 단위가 아니라, 재혼과 혼외자, 이복형제 등 다양한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0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와 생전 교류가 거의 없던 전혼 자녀가 한 자리에서 상속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법이 정한 상속 순서와 비율은 명확하지만, 관계의 깊이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삶의 대부분을 함께한 사람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녀 사이의 감정의 벽은 너무 높다. 이런 경우 상속재산분할협의는 거의 불가능하고,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상속이란 제도가 법률상으로는 평등을 지향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움직이는 감정은 어느 쪽에도 기울기 쉬운 저울과 같다.​

법원에서의 상속재산분할 절차는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누가 상속인인지, 각자의 법정 비율이 얼마인지 확정한다. 그다음 피상속인의 재산을 낱낱이 조사하고, 각 상속인의 특별수익과 기여분을 따져본다. 이렇게 구성된 재산을 ‘간주상속재산’이라 부르며, 이를 기준으로 실제 받을 몫을 산정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차갑다. 때로는 수십 년 전의 계좌내역, 오래된 가족 간의 거래기록까지 증거로 제출된다. 이미 고인은 말이 없고, 남은 기록만이 “누가 더 많이 받았는가”를 증명한다.​

“법정에서 현출되는 것은 오래된 거래내역과 증여 서류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말하지 못한 서운함과 오해가 포개져 있다.”​
이런 분쟁을 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하나는 상속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언으로 미리 정리하는 것이다. 특히 유언은 가족들 사이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중요한 장치다. 다만, 유언이라도 법정상속인의 유류분, 즉 최소한의 상속 권리를 침해하면 또 다른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적 틀을 갖추는 일’과 더불어 살아 있는 동안 가족 간의 이해와 대화를 쌓아두는 일일지 모른다.​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 그 순간 남는 것은 돈이나 집이 아니라, 그 재산을 둘러싼 이해와 오해의 흔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온정이었던 도움도, 다른 이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상속은 단순한 재산의 이전을 넘어, 삶의 관계를 정리하는 마지막 과정이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남은 사람들의 평화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 남는 진짜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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