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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26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29 22: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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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2)


세 사람은 승용차 한 대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렸다. 소연은 조수석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운전하고 있는 민지를 향해 물었다.


“근데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경남 합천.”


민지의 말에 소연은 잠시 머리를 굴려 경남 합천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했다. 어렵지 않은 결론이 나왔다. 그곳엔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가 있었다.


“거기서 뭘 할 건데요?”


“네 껍데기를 부숴야지.”


“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계속 남고 싶어?”


민지는 여전히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말했다. 물론 시선이라고 해봤자 얼굴의 방향일 뿐, 그녀의 시선은 전방위에 닿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연은 민지가 암흑색맹에 감염된 채 멀쩡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능력을 통제하고 있는 게 더 놀라웠다.


“뭐, 좋아요. 거기서 제가 영성 치료를 받으면 슈퍼 파워라도 생기나 보죠?”


“You’re sharper than you look.”


뒷좌석에 앉은 댄이 놀리듯 말했다. 소연은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입을 샐쭉 내밀었다.


“언니, 저 사람 한국말 좀 하라고 해요.”


“할 줄 모른대.”


“거짓말일 것 같은데, 제가 병신새끼라고 하면 반응할지 안 할지 내기하실래요?”


“할 줄 모른댔지, 알아듣지 못한다곤 안 했어.”


민지의 말에 소연은 뜨끔하며 댄을 쳐다봤다. 댄은 것 보라는 듯 소연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는데, 소연은 댄의 느끼한 표정을 보고 구역질하며 고개를 돌렸다.


“너는 센터에 가본 적 있어? 조사관이잖아.”


“저요? 아, 뭐. 제가 조사관 됐을 땐 이미 조사가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남은 추가 조사도 대부분 구출자 인터뷰로 하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저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그래? 내가 너만 할 때 가봤었는데. 15년 전이라 지금도 같을지는 잘 모르겠네.”


“와……. 언니 몇 살이에요?”


“올해가 몇 년이지?”


“22년이요.”


“그럼 30살이네.”


민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벌써 자신이 30년을 살아왔단 사실이 새삼스럽지도, 대단하지도 않았다. 그건 으레 그렇듯 당연하게, 마땅히 그래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또 달리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있었다.


이 땅의 종말까지 앞으로 1년 하고 몇 개월 남았다. 그때까지 얼마나 살아왔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그 이전에 죽은 자들이 도리어 축복받은 것일지 몰랐다. 이미 죽어버린 오빠와 제물로 바쳐진 동생과 존엄해진 부모님처럼.


“근데 댄 아저씨, 아저씨는 어떻게 여기에 오신 거예요? 국경은 전부 단절되지 않았어요?”


“Now you ask.”


댄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자, 소연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제가 지금 묻잖아요. 그러니까 대답 좀 해주시죠. 저도 그 정도 영어는 알아들으니까요.”


“The border being closed doesn’t really matter to us. If we wanted to cross, we still could — easily. What matters isn’t the how, it’s the why. Try asking the question again.”


기다렸다는 듯이 댄이 떠들자, 소연은 곧바로 민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언니.”


“다시 질문하래.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초점을 맞춰서.”


“언니는 영어 잘해요? 듣기 평가하면 막 만점 나오고 그러나? 저도 귀가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는 언어는 그냥 꼬부랑글씨 보는 거랑 똑같다니까요.”


“난 본질을 보니까. 너도 네 껍데기를 초월하면 알게 될 거야. 어쨌든 다시 질문해.”


민지의 말에 소연은 한숨을 내쉬고 백미러로 댄을 슬쩍 쳐다봤다. 댄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소연과 눈을 마주했다. 소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좋아요, 양키 오빠. 여긴 왜 오신 거죠?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그곳도 초자연현상처리반이 있지 않아요? 그곳은 어쩌고 왜 한국을 찾아오신 거예요?”


소연의 물음에 댄은 잠시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다가 답했다.


“Where I came from…… it’s already gone. Destroyed. The SOC went down with it. Korea is the last. The last land to be judged…… and to fall. And me? I suppose I’m something of a herald — the one who comes when the end begins.”


“뭔지 몰라도 표정을 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요.”


소연이 다시 민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지는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놀러 왔대.”


“Wait — that’s the best you can do?”


지나친 한 줄 요약에 당황한 댄이 따졌지만, 민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넘겨버렸다. 소연은 왠지 모를 통쾌함에 숨죽여 웃고는 댄을 향해 말했다.


“한국 관광 잘 오셨어요. 여기도 은근히 환장할 곳이 많거든요.”


“Perfect. Just perfect.”


“그렇죠?”


소연은 웃으며 그리 대꾸했다. 민지는 그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고 하려다가 소연이 백미러에 안 보이는 위치에서 민지를 향해 조소를 짓는 걸 보고 의도된 일인 줄 깨달았다.


소연의 수다 덕분에 경남 합천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까지 지루하지 않게 도착했다. 민지는 과거 탈출했던 주차장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감회랄 것도 없었다. 다만 이전에는 지하 1층에서 출구로 나갔는데, 지금은 지하 2층으로 바로 직행했다.


“구조가 좀 바뀌었나 보네.”


“뭔가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데요.”


소연이 몸을 떨며 말했다. 불쾌하면서도 미묘한 감각이었다. 무수한 시선이 자신을 관음하는 듯하면서도, 그 시선이 직접 자신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내리자.”


빈자리에 주차한 민지는 그대로 차문을 열고 내렸다. 댄은 내리지 않았고, 소연은 조심스럽게 내렸다.


“댄은 안 내려요?”


“You ladies go ahead.”


댄이 손짓하며 거절하자, 소연도 더 캐묻지 않고 민지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넋을 놓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다. 어떤 이는 손에 붕대가 칭칭 감겼는데, 붕대 감긴 손에는 쇠 파이프나 도끼 같은 것이 들렸다.


“와, 딱 봐도 엄청나게 위험해 보이는 것들이 돌아다니는데요.”


“우릴 공격하지 않으니 괜찮아.”


“시각적으로 별로 좋지 않아요. 제가 이런 곳에서 탈출해야 했다면 분명 죽었을지도 몰라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말이 안 통하니까 이길 자신이 없는 거라잖아요. 들어보셨어요?”


“초자연현상이 여태 그랬었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렇게 말하는 민지는 정작 자신이야말로 초자연현상과 그렇게 소통해온 사람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만만찮은 대가가 뒤따랐다. 댄과 소연은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다. 그 근본부터 사람의 형상을 따라 한, 한없이 사람에 가까울 뿐인 가짜였다.


그러나 민지는 달랐다. 진짜 사람이었지만, 한없이 가짜에 가깝게 떨어진 진짜였다. 그렇기에 민지는 소연과 댄에게 아주 미묘하지만 분명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그녀 자신이 과거 포천시에서 마지막 인간성을 버려뒀음에도 느끼는 것이었다.


어떤 결단을 내려도, 어떤 일을 겪어도, 마치 그녀는 여전히 진짜 인간이라는 듯, 민지는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여실히 느끼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접수처로 갔다. 민지가 접수처로 향하자, 민지를 알아본 직원이 곧바로 두 사람을 데리고 안쪽 복도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마워요.”


민지는 무심하게 답했다. 직원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소연은 미닫이문 너머로 매우 불길하고도 불쾌한 감각이 전해졌다. 마치 주체 못하는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민지는 소연의 찡그린 표정을 보고 말했다.


“느껴져?”


“저기에 어떤 의사가 있는지 몰라도 굉장히 히스테릭할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제 착각은 아니죠?”


“아니, 정답이야.”


민지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그 너머에 누가 있는지 민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연은 몰랐겠지만, 이미 두 존재는 차가 주차될 때부터 소통하고 있었다.


“나에게서 벗어날 땐 언제고……. 이젠 이렇게 당당하게 찾아올 줄이야. 사람 인생 정말 모른다니까?”


방 안은 텅 비었으나 새카맸고, 의자 하나에 나체의 여자 하나만 앉아있었다. 여자의 몸은 스펙트럼으로 빛나는 실루엣을 제외하면 그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들어차 방과 구분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희나.”


민지가 말했다. 소연은 입을 뗄 수 없었다. 희나의 미소가 인지되었을 때, 소연의 인지는 말 그대로 붕괴하는 착각에 빠졌다. 민지는 제정신을 못 차리는 소연을 두고 희나에게 말했다.


“그릇으로 각성한 조사관을 데려왔어. 때가 이르렀으니 의무를 다해.”


“……같이 온 바벨론의 사자를 봤어. 그때 너를 집어삼키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드네.”


희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깍지를 끼고 스트레칭을 하듯 몸을 뻗었다. 방의 어둠이 요동치며 소연의 몸을 다리에서부터 천천히 감싸기 시작했다.


“그럼 실력 좀 발휘해볼까?”


“다 되면 불러. 데려올 테니까.”


민지는 다시 나가려고 했다. 문을 굳이 또 여닫을 필요는 없었다. 소연의 인지를 배려해 일부러 차를 몰고 걸었을 뿐, 그녀에겐 지형과 거리가 무의미했다. 희나는 손을 흔들어 배웅했고, 민지는 자리를 벗어났다.


초자연현상처리반을 무너뜨릴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었다. 민지는 과거 자신이 마주했던 미래를 떠올렸다. 남동생과 마주하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민지는 높은 확률로 절망향 도래 이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고통 없이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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