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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27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30 16: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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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에 시간대 오류(23년이 아니라 22년임)가 있어서 그거 급하게 수정함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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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完)


“그래서 처리반은 어떻게 무너뜨린다는 거죠?”


환상 영혼으로 거듭난 소연이 몸을 풀며 말했다. 좋은 경험이라곤 말 못했지만, 그렇다고 돌이키고 싶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희나와 달리 소연은 지금의 껍데기를 유지하기로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아주 오랫동안 기만한 땅끝마을 연결담당자, 관측기록사무 2팀 혜령을 본인의 손으로 죽이기 위함이었다. 민지와 댄은 더는 지루하게 차를 탈 필요가 없어진 걸 반겼다.


“처리반은 스스로 무너질 거야. 그때를 노리는 거지.”


“스스로 무너진다고요?”


“배신자가 있거든.”


민지가 말했다. 그리고 댄을 쳐다보자, 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It’s nothing, really. Some people just can’t function unless they’re doubting something. We just fed his doubts the reasoning he was desperate for.”


소연은 잠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예전엔 얕은 지식으로 듣기평가를 진행했었지만, 이제는 그 속뜻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배신할 만한 사람에게 배신할 이유를 줬다는 거네요?”


“Right.”


소연은 휘파람을 불었다. 여전히 내부 배신만으로 어떻게 처리반을 무너뜨린다는 건지 감은 잡히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떠올려도 대응제거적출 팀 하나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초자연현상은 이 땅에 널리고 널렸다. 심지어 쓸 만한 인재가 점점 줄어만 가는 초자연현상처리반과 달리, 초자연현상 그 자체는 얼마든지 보충되었고, 얼마든지 나타났다.


인간이 존재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한, 초자연현상은 무한하며 영속했다. 인간은 초자연현상을 이길 수 없었다. 그건 초자연현상이 세상에 드러난 이래로 단 한 번도 뒤집힌 적 없는 막강한 진리였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뭔데요? 깽판이라도 쳐요? 아니면 그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해요? 그것도 아니면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와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소연이 즐겁게 말했다. 그러나 민지는 침묵했고, 댄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There’s no such thing as ‘abroad’ anymore. Like I said — Korea’s the last one left.”


“에?”


댄의 말에 소연은 잠깐 당황해서 멈칫했다. 댄은 소연의 시선을 민지에게로 떠넘겼다. 민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따라와. 국경을 넘어가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이 땅이 맞이할 미래로서 말이야.”


“어디로 넘어가는데요? 설마 북쪽으로 넘어가게요?”


“어디든 상관없어. 어디로 갈래? 일본? 북한? 중국? 아니면 동남아?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로 갈래?”


민지의 말에 소연은 잠시 고민하듯 눈을 굴렸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어딜 가든 똑같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딜 가든 똑같다면 해외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딜 가든 조만간 보게 될 풍경이란 거죠?”


“그렇지.”


“그러면 굳이 스포일러 당하면서까지 볼 필요가 있나요?”


“없지.”


“그럼 안 갈래요.”


“그래.”


“Good. You're quick on the uptake.”


소연은 댄을 쳐다봤다. 말이 통하게 된 이후로는 묘하게 자기를 향해 말이 많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지는 먼저 움직였다.


“그래도 국경을 보는 건 꽤 인상적일 거야. 처리반은 국경에 손대지 않았으니까, 말만 들어봤지?”


“그건 그런데…….”


“그럼 됐어. 댄, 다녀올게요.”


민지가 댄을 보며 말하자, 댄은 손을 살짝 들어 배웅했다.


“Have fun. Bring back a souvenir.”


“저 양반은 어째 같이 다니는데 맨날 빠지네요. 자발적 아싸라도 되는 거예요? 친구 하나 없을 것처럼 생겨선 진짜 정떨어지게 구네요. 사람 껍데기 뒤집어썼으면 사회성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녜요. 네? 안 그래요?”


민지를 따라나선 소연이 불평하듯 말했다. 민지는 그 말이 어째 자기를 저격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원래 역할이 그런 쪽이니까. 본인 말로는 기억하는 게 본인 의무지, 겪는 게 의무는 아니라나.”


“엑, 그건 또 뭐예요. 인간 하드디스크라도 되는 건가? 솔직히 일일이 다 기억하는 거면 살짝 소름인데요. 기분 나쁜 능력이잖아요, 그거. 제 피부 잡티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와, 상상했는데 소름이 쫙 돋았어.”


소연은 팔을 감싸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민지는 소연의 수다가 그저 피곤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과거 자신이었다면 어쩌면 이런 소연의 수다에 웃을 여력이 있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그런 감상과 별개로 소연이 나불거리는 것에 짜증만 밀려올 따름이었다.


“언니.”


그리고 그 감정은 환상 영혼으로 거듭난 소연 역시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절 죽이고 싶나요?”


“……계속 떠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민지의 얼굴에서 어둠이 흘러내리면서 순식간에 주위의 색이 빼앗겼다. 과시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합천에서 파주 통일전망대까지 빠르게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주위가 어둠에 물드는 과정을 보며 소연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엔 본질조차 모르고 두려워하기만 했던 것이, 이제는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마주하여 손을 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유치하게 힘 싸움하고 싶진 않은데, 막상 이렇게 큰 힘을 얻으니까 조금 궁금해서 말이에요. 초자연현상끼리 우열은 어떻게 정해지는 거죠?”


“글쎄, 유치한 힘 싸움이라도 해서 정해지는 게 아닐까?”


민지는 관심 없단 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민지 역시 소연에게서 적의와 살의를 모르는 체하긴 힘들었다. 기껏해야 비꼬고 놀리는 게 다였던 ‘사람의 껍데기’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경악할 만한 변화였다.


“흠, 언니 반응이 너무 재미없네요. 댄에게 이러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글쎄, 나중에 해봐.”


순식간에 어둠이 걷히고, 둘은 어느새 통일전망대 안에 있었다. 소연은 흥이 식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언니는 신비와 공포를 좀 더 배울 필요가 있어요. 이러는 건 확실히 효율적이지만……. 전혀 무섭지 않잖아요.”


민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을 가리켰다. 소연은 민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망원경이 설치된 방향으로, 본래라면 군사분계선 너머 북한 땅과 초소를 볼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강 너머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수히 많은 반사광 필름이 조립된 벽이 경계를 따라 세워져 시시각각 빛을 스펙트럼으로 쪼개 반사하고 있었다. 소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영혼을 감각하는 힘으로도 경계 너머를 바라볼 수 없었다.


“저게 국경인가요? 아니, 여기선 국경이란 말을 쓰면 안 되나. 어쨌든요.”


“단절이지. 저게 대한민국을 가둔 4개의 단절 중 하나야.”


“4개요? 아, 나머지 3개는 바다에?”


소연의 말에 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육지와 바다, 두 개의 단절로 구성됐지만, 대한민국의 바다 인식이 동해, 남해, 서해로 쪼개졌기 때문에 바다의 단절 역시 3가지로 분화돼 존재했다.


소연은 그중에 서해의 단절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었다. 보령머드축제와 엮인 초자연현상이 서해 단절에서 파생된 초자연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밀물 때 함께 밀려온 것들과 썰물 때 끌려간 사람들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진 않았다.


“저 너머는 이미 지옥이 됐단 거죠?”


“그 땅의 죄를 모두 심판받은 모습이 되었겠지.”


“흐음……. 지옥이라고 해봤자 솔직히 감이 안 오네요. 지금 세상도 충분히 지옥 같지 않나요?”


소연이 민지를 향해 물었다. 민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질문이었고, 어떤 답을 내놓든 그 역시 무의미했다.


“확실히 거듭나고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니 알겠네요. 단절은 다른 초자연현상과 다르네요.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다른 초자연현상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나오는 코스 요리 같은 거라면, 단절은 요리가 아니라 요리를 올릴 접시, 아니, 식탁과 의자 같은 느낌?”


“나도 댄에게 들은 거지만……. 모든 초자연현상은 단절 이후에 가속화됐다고 하니, 네 말이 틀린 건 아니겠지. 저 단절이 풀리는 때야말로 이 땅이 심판받을 때겠고.”


“그때가 처리반이 무너질 때이기도 하겠네요.”


소연이 단절에 시선을 둔 채 감상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선을 두지 않았다. 넘어갈 생각이 없는 그녀는 이곳에서 단절의 본질을 마주한 것으로 충분했다.


“그럼 돌아가죠. 앞으로 뭘 할진 몰라도, 사람을 죽이고 농락하는 일이겠죠?”


“비슷해. 우린 처리반의 퇴사자들을 노릴 거야. 그들은 처리반의 중요한 전력이거든.”


“퇴사자들이요? 퇴사했는데 중요한 전력이라고요?”


소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민지 역시 처리반에서 ‘퇴사’의 의미를 알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들을 전부 제거하지 않으면 심판의 때는 오지 않아. 멸망을 막는 쐐기 같은 거지. 의인이 이 땅에 한 명도 남지 않았을 때가 바로 심판의 날이야.”


민지의 말에 소연은 그제야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아하…….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네요. 그러면 저한테도 좋은 예행연습이 되겠네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그때가 올 때까지 착실하게, 한 명씩 정성 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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