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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아버지와 도둑 아들 6

운영자 2010.04.08 10:22:44
조회 233 추천 0 댓글 1

  이 법정 저 법정으로 보따리 장사를 다니다 보니 번개같이 엿새가 흘렀다. 오후 세시 경 후줄그레해진 피곤한 몸으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김순호의 아버지가 초조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호사님, 내일이 선고일인데 어떻게 우리 순호가 잘 될까요? 불안하고 초조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은근히 걱정되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원로 변호사가 ‘변호사는 선고 날 마음 졸이는 것만 해도 받은 돈 값은 다하는 것 같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네가 죄를 져 놓고도 안되면 변호사 탓을 하거든’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무언가 말할 게 있는 듯 주저주저 하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제가 재판을 받는 아들의 애비로 정말 양심에 거리끼는 게 있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육십 나이답지 않게 무엇인가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저.. 저.. 제가 말입니다. 아들한테도 거짓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변호사님한테 애비인 제가 명문인 S대 서양학과를 나왔다고 말한 모양인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그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열망이 많았는데 저도 가난 때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한테 거짓말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있어야죠? 그래서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있으면서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독학으로 통역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서 밤에는 자취방에서 그림을 그렸던 겁니다. 학력이 없는 탓에 국전 같은데서 초년에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했어도 지금은 대한민국 미술협의회의 회원이고 다른 미술단체도 이끌만큼 원로대접을 받게 된 건 사실입니다. 이제 서양화에서는 누구도 부럽지 않고 제 위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들에게 S대 서양학과을 나왔다고 거짓말 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재판장한테 혹시 지금쯤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면 우리 아들 애비가 거짓말한 죄로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약간 과장한다면 60먹은 어린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아들을 위해 진실로 헌신적인 기도를 하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글쎄요. 변호사인 저로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고 여기까지가 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판결은 판사가 하니까요. 어떤 판결이 나오든 이제 그건 판사의 영역과 재량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걸 인간이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변호사를 통해서 또 판사를 통해서 그의 뜻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누구는 풀려날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봤습니다. 반대로 풀려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결국 아드님이 이제 내일 감옥에서 나오고 못 나오고는 아버지의 간구와 기도라는 생각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내일 아침 선고 때까지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권합니다. 저로서는 이제 모든 결과는 아버지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여태까지는 내 그림 세계와 나를 위해서만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자식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저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새로운 각오를 한 듯한 태도로 사무실을 나갔다. 이튿날 김순호는 가장 가벼운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나는 다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정 속에 파묻혀 지냈다. 어느 날이다. 저녁 무렵 사무실로 돌아오니 벽에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짙은 숲 속 한구석 웅덩이는 비취색의 맑은 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었다. 그 뒤 우거진 나무 그늘 사이로 작은 샛길이 햇볕을 퉁겨 내며 깊은 산 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오솔길을 따라 산으로 열심히 올라가는 그 부자의 모습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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