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아마데우스

운영자 2010.04.27 15:55:14
조회 251 추천 0 댓글 1

  나는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시켜 점심을 때우고 부지런히 수원법원으로 향했다. 재판 한시간 전쯤부터 가서 기다리지 않고서는 오후 내내 재판정 한구석에서 말뚝처럼 시간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변호사 한사람이 증인신문을 하고 그에 대한 반대문신문이 있고 재판장이 또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신문사항이 많으면 한 사건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출석한 여러명의 변호사가 재판을 하게 되면 나는 앞선 변호사들의 그런 과정을 법정 구석에서 지루하게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흔히 말한다. 사무실에서는 고객을 기다린다. 소송서류를 접수하고는 재판기일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법정에 가서는 순서를 기다린다. 업무의 상당부분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다. 개정삼십분 전의 텅빈 법정은 마치 연극이 끝난후의 무대처럼 휑뎅그레 했다. 높은 법대위의 근엄한 재판장의 의자가 방청석의 낮은 의자들을 향해 대신 권위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그 한구석에 법정의 부품처럼 혼자 앉아 식곤증으로 무거워지는 오후의 눈꺼풀을 감당해 내고 있었다. 재판시간인 두시 오분전쯤 되자 이윽고 소송을 위해 달려온 당사자들이 하나 둘 법정으로 들어와 방청석에 무겁게 궁둥이를 내려 놓는다. 모두들 표정이 굳어 버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무언가 벽이라도 주먹으로 쳐박아 놓지 않고 서는 못견디겠다는 숨막힌 감정들을 가슴 가득히 담아가지고 온 듯 하다. 그 때 검은 색 남방과 바지를 입은 정리가 방청석의 중앙을 어슬렁 거리면서 방청객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아저씨 씹고 있는 껌 뱉으세요 여기가 놀이터인줄 아세요]

  하고 말하는 정리의 말에 한 사람이 주눅이 들며 슬그머니 입속에서 껌을 뱉어 주머니에 넣는다.


 [할아버지 여기는 법정입니다. 모자를 벗으셔야죠]하자 한 노인이 겸연쩍은듯 낡고 먼지에 찌든 챙있는 둥근 모자를 벗는다. 대머리 위에 몇가닥 파뿌리 같은 흰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다. 재판장이 나오기 전의 정리의 권위가 대단하다. 정리가 쓴 금테안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차가운 빛은 방청석의 누구라도 금새 꼬리를 내리게 할 듯 위세가 대단하다.


  그때 근육질의 몸이 풍성한 옷 속에 감추인 듯한청년 하나가 법정에 들어섰다. 손에는 변론기일소환장으로 보이는 종이 한장이 달랑 들려 있었다. 그는 방청객들 중앙에 서 있는 정리에게 [여기가 119호 법정입니다. 이 종이에는 거기로 나오라고 써 있던데----]하고 물었다.


 [ 그런건 밖에 나가서 찾아 보쇼]

 정리는 약간의 거드름을 섞어 귀찮다는 듯이 쏘아 붙였다.


 [이런 씨팔 법정에 나오라고 불렀으면 바깥에 안내문을 붙이든가 아니면 친절하게 안내해 줘야 할게 아냐 사람 오라 가라 하면서 어디로 오는지 알려 주지도 않아?]

  그 근육질 청년의 태도는 여차하면 정리의 멱살이라도 잡아 내동댕이칠 기세였다. 그 태도에 정리는 마치 강한 짐승을 만나 꼬리를 내리는 약한 동물처럼 움츠려 들더니 구석으로 가서 얌전히 딴데를 보고 있었다. 근육질도 하나의 가장 원초적인 권력이자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의 법적힘이 은근히 근육질이라는 원초적 권력에 꺽이는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법대 뒤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검은 법복을 입은 재판장이 나오고 그를 뒤따라 두명의 배석 판사가 나와 앉았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변호사 한사람이 사건번호를 부르면서 재판장 앞에 나가 섰다. 법대 밑에서 재판을 보조하는 주임이 쌓여 있던 사건 기록중 하나를 빼내어 공손히 재판장 앞에 올려 놓는다 재판장이 그 기록을 잡아 뒤적 거린다. 순간 웬일인지 양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순간 짜증스러운 표정이다.


  [이보세요 원고 대리인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서류를 제출하시면 우리법원에서는 그 상단에 두개의 구멍을 뚫고 줄로 기록을 편철하시는 걸 아시지요. 그런데 제출하신 서류를 보면 그대로 서류 상당에 구멍을 뚫다가는 윗부분 몇줄이 기록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기록을 볼 때 마다 귀찮게 그 부분이 되면 묶여져 있는 줄을 풀고서 그 서류만 빼내어 보라는 소립니까? 만약 그 부분에 중요한 약정이라도 있어 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란 소립니까? 대법관들은 호치키스를 찍은 서류에서 철침을 떼내고 한장한장 보는 경우도 있다는데 말이에요. 웟부분 끝까지 내용이 있는 서류들이면 그 뒷면에 백지를 한장 올려 붙여서 상단에 공백이 있게 해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이건 국민학생한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오십대 말로 보이는 변호사는 무안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약간 각진 얼굴에 안경을 쓴 아직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판사는 어려서 부터 먼지하나 없는 정리정돈 속에 자라온 듯 얼음장 같은 모범생의 흔적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사건 진행만 해도 그렇습니다. 기록을 어제 읽어 보니까 육개월전 전임 재판장이 석명을 구하고 준비서면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재판장이 바뀐 지금까지 하나도 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증인 신청을 해놓고도 도대체 절차도 하나도 밟지를 않으셨어요. 사람이 하나를 보면 둘을 알고 둘을 보면 셋을 아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동안 증인의 소재를 찾는 문제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음 기일에는 증인이 꼭 나오겠답니다. 만약 증인이 안나오면 구인신청을 하겠습니다.]

  담당 변호사는 얼굴이 벌겋게 무안을 당하면서 간신히 대꾸를 하고 있었다.


  [아 증인이 나온다면 왜 구인신청을 합니까? 그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을 보니까 나올 사람이 아니예요 나도 밀리는 사건을 정리하자면 어쩔수 없습니다. 오늘 결심해 버리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젊은 재판장에게 무안과 질타를 당한 그 노인 변호사는 소송서류를 주섬주섬 가방에 챙기더니 슬그머니 법정을 나가 버리고 말았다.


  다음 사건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이 증인 이름을 호명했다. 호명된 사십대의 후줄그레한 남자 한명이 어색한 듯 눈치를 보며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 직업이 뭡니까?]


  [상업입니다]

  [ 업도 현대에 와서는 그 종류가 이십만가지나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업이란 소립니까?]


  [건축입니다.]

  [진작에 그렇게 말씀하지요]


  재판장을 그렇게 말하며 법대위에 놓여진 소송기록을 부지런히 들추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재판장이 “아”하며 기록을 넘기던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물었다. 금새 상이 찡그러지며 옆에 있던 여판사를 향해 [손가락에서 피가나네 이건 종이가 아니라 면도칼이야 면도칼...] 하고 말하는 소리가 변호사 대기석에 있던 나에게 까지 전해져 왔다. 재판장의 모습을 보는 여판사가 재판장에게 조용히 미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나이먹은 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깨진 동생을 쳐다보는 정경과 흡사했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는 문득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음악가 모짜르트의 여러 행동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천재인 모짜르트는 음악 이외에는 단순하고 심지어 도덕성까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백치였다. 음식이 놓여 있는 주방에 들어갔다가 하녀의 궁둥이를 보고는 그대로 동물처럼 덤벼든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내 뱉는다 솔직하고 담백하지만 상대방의 고뇌를 짚어볼만 한 여유는 천재인 자기의 기준으로 하면 상대방의 심정을 이해하기 힘드는 것이므로. 그러나 그의 음악적 재질을 간파한 경쟁자는 혀를 찬다. 기발한 음악성과 천재성 그리고 무아지경에까지 빠져드는 그의 재주로 인해서 말이다.


  약간의 비약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담당 재판장이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정에서 속말이 함부로 튀어 나오는 법관이라면 의외로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치밀한 사전취재와 서류준비로 재판을 그보다 앞서 간다면 아무런 편견이나 불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더 담백하게 친해질수도 있는 것이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약간 긴장하면서 두명의 증인을 신문했다. 불필요한 증인 신문사항으로 재판장으로 부터 제기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또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변호사들의 눈길에 등줄기가 당기기도 했다. 그러나 준비해간 한마디도 생략하기 싫었다. 재판정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라 선임한 당사자의 속죄양이기도 하므로.


  ‘욕이 배따고 들어오냐’하는 배짱으로 재판을 마쳤다. 재판장이 이주후로 다음기일을 지정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그날은 지방출장 사정이 있어서 재판을 좀 끌어야 겠습니다. 다시 날짜를 정해 주십시요’하고 말했다. 재판장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그러면 그 이주후로 기일을 잡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감사합니다’로 내 재판은 이윽고 끝이 났다.


  당당한 걸음으로 법정을 나온 나는 법원정문 앞에 이르자 갑자기 약국을 향해 달리길 시작했다. 긴장을 해서 재판을 한 날이면 끝나자 마자 속이 땅땅 굳고 뒤틀리기 때문이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175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차우셰스쿠가 부러워한 북한 운영자 10.06.15 306 0
174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당원자격은 정상참작 사유 운영자 10.06.15 158 0
173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검사와 비슷한 변호인 운영자 10.06.15 154 0
172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요식행위인 재판제도 운영자 10.06.10 162 0
171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영장 없이 언제나 체포 [2] 운영자 10.06.10 205 0
170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처형방법에서도 독창성 주장 운영자 10.06.10 234 0
169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북한 형법교과서의 사형이론 운영자 10.06.10 241 0
168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법 위에 당, 그 위에 김일성 운영자 10.06.08 204 0
167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믿을 만한 통계 없어 운영자 10.06.08 155 0
166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보위부의 살인공작, 고문‧처형 운영자 10.06.08 316 0
165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정치범 사형은 국가보위부 재량 운영자 10.06.03 328 0
164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한 여교사의 신앙증언 운영자 10.06.03 340 1
163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군인도 공개처형 [1] 운영자 10.06.03 406 0
162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한국 노래 불렀다고 인민재판 운영자 10.06.03 199 0
161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경제범 공개처형 빈번 운영자 10.06.03 226 0
160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학생까지도 공개재판 대상 운영자 10.06.03 201 0
159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풍기문란자 공개처형은 전통 운영자 10.06.01 485 1
158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조총련 상공인 위해 여배우 처형 운영자 10.06.01 1300 1
157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즉결처형이 지금도 있는 나라 [1] 운영자 10.06.01 620 0
156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입양제도의 부활 운영자 10.05.27 130 0
155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당 간부들 대거 이혼하기도 운영자 10.05.27 223 0
154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가족법 제정의 의미 운영자 10.05.27 625 0
153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대동강변 李家村의 몰락 운영자 10.05.27 293 0
152 굳세어라, 보리 문둥이 운영자 10.05.25 253 0
151 미움받는 유태인 [1] 운영자 10.05.25 433 2
150 추억상속 운영자 10.05.25 232 0
149 리히텐 슈타인 왕국 운영자 10.05.20 289 0
148 감옥과 무덤 운영자 10.05.20 244 0
147 괴테 호텔, 단테 집 운영자 10.05.20 282 1
146 뺑소니 [1] 운영자 10.05.18 239 0
145 월부장사 [1] 운영자 10.05.18 274 0
144 간이 바뀐 친구 운영자 10.05.18 234 0
143 뚝방옆 전과자 교회 운영자 10.05.13 242 0
142 사진관 변호사 영감 운영자 10.05.13 282 0
141 엄마,합의합시다. 운영자 10.05.13 276 0
140 뜨거운 감자 운영자 10.05.11 249 0
139 변호사와 사기꾼 [1] 운영자 10.05.11 434 2
138 두 얼굴의 미인 [1] 운영자 10.05.11 469 2
137 앳된 판사와 심통난 늙은 피고 [1] 운영자 10.05.06 434 1
136 한심한 대리인 운영자 10.05.06 248 0
135 양자 빼 주세요 운영자 10.05.06 239 0
134 벙어리 증인 운영자 10.05.06 244 0
133 복대리(複代理) 운영자 10.05.06 281 0
132 약 좀 먹게 해줘요 운영자 10.05.06 243 0
131 임신한 여죄수 [1] 운영자 10.04.29 638 1
130 야! 가라 가! [1] 운영자 10.04.29 282 0
129 큰일낼 여자네 운영자 10.04.29 372 0
128 직접 실험해 보시죠 [1] 운영자 10.04.27 372 1
127 미녀와 법정 운영자 10.04.27 480 0
아마데우스 [1] 운영자 10.04.27 251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