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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여죄수

운영자 2010.04.29 14:24:28
조회 637 추천 1 댓글 1

  오후 한시의 서울시청앞 광장은 밀려있는 차량들의 행렬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탄 차는 조급증을 내며 덕수궁 옆의 법원골목으로 간신히 들어섰다. 두시에 있을 오후재판에서 이정도면 충분히 일찌기 도착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텅빈 법정에 나홀로 들어가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첫번째 순서로 변론을 할 예정이었다. 무심코 법정문을 확 열었다. 그 순간이다. 법대에 있던 판사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이 되어 쏟아졌다.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점심을 위해서 휴정시간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붉어지며 엉겁결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법정은 점심시간도 생략된채 심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변론을 하지 못한 변호사들이 여러명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은 이제 어디서나 어느분야에서나 할 것 없이 너무나 밀도가 높다. 기다리던 젊은 변호사중의 한 사람이 다급한 표정으로 다른 변호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제가 맡은 피고인은 임신한 여자인데 몸 때문에 부득이 먼저 변론해야 겠습니다. 양해를 좀 해 주십시오------”

  다른 변호사들에게 변론순서를 양보받은 그 변호사는 재판장 쪽으로 향하며 “사건번호 1995번 입니다”하고 변호인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피고인 방옥자 나와요”

  재판장이 피고인을 불렀다.이윽고 법정 한 구석에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해 배가 죄수복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여죄수가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 뒤뚱거리며 걸어나왔다.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모를 정도로 해산달에 가까와 진 듯 했다. 재판장이 인정신문을 간단히 하고 검사에게 신문할 것을 명령했다.


  “피고인은 전에도 백화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가 걸린 사실이 있지요? 그리고 이번에도 글로리아 백화점에 들어가 진열대에 있는 옷을 들어 가지고 계산대에 가지고 간 사실이 있지요? 그리고는 그 물건을 마치 며칠전에 산 것인양 가장을 하며 환불해 달라고 해서 백화점 여직원으로부터 15만원을 받아 가지고 나오다 걸렸지요?”

  “------”


  등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하얀 옆얼굴 모습과 고급 갈색 안경테가 단지 빈곤으로 물건을 훔칠것 같지만은 않다는 짐작이 가게 했다.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곧바로 이어졌다.


  “피고인은 M시에서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요? 그리고 지방의 일류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나요?”

  “네 그렇습니다”


  “피고인은 서울에서 에어로빅 강사자격증을 얻고 또 우수상을 받은 경력으로 교습을 해서 한달에 백만원이 넘는 수입을 얻고 있었지요?”

  “네----”


  “피고인은 곧 결혼을 하기 위해서 예식장계약까지 하고 청첩장을 돌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이미 지금 임신중이지요? 피고인은 지금 구치소에서 아이를 낳게 될 상황이지요?”

  “네--”


  그녀는 수치심으로 몸을 가뜩 웅크린채 개미기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사건기록을 뒤척이던 재판장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피고인 도대체 왜 이러쇼? 안정된 생활을 한다면서 그렇게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소?” 
  “------”

  “처음이면 몰라도 피고인은 이런 버릇 때문에 전에도 여러번 징역을 살았네 왜그러지?”


  재판장의 얼굴에는 딱하다는 듯 연민과 동정의 빛이 역력했다. 가뜩 움츠리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무엇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숙인채로 기어들어갈 듯한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절도범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요?”

  재판장이 의아한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아까 검사의 신문에서 왜 긍정을 했소?”

  “허락없이 남의 물건을 가져간건 사실이지만 절도는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간 건 사실이고 절도는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그렇게 재판이 끝났다.교도소에 가서 여러 구속된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곤 한다. 예를 들어 “절도를 한게 맞나요?”하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부정을 하고 싶어하곤 한다. 반면 같은 뜻이라도 “그날 거기에 있던 물건을 가져간건 맞지요?”하고 물으면 별 거부감 없이 “네”하고 대답하곤 한다 .“강간 했지?”하면 멈칫하던 사람들도 “왜 그런 못된 짓을 했어?”하면 긍정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행위는 인정하지만 죄명은 싫은 것이다.


  무거워 보이는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그녀는 다시 좁은 쪽문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엄마의 나쁜 버릇으로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제일처음 어둡고 음습한 감옥의 천장부터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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