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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큰 재판장 2

운영자 2010.04.13 14:28:47
조회 328 추천 0 댓글 0

  3주 후의 다음 재판 기일에 역시 그 절도범의 재판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재판과 날짜가 겹치는 까닭이었다. 60 가까이 보이는 순박한 인상의 할머니 할 사람이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조심스럽게 증언대에 올라가 앉았다. 그 할머니의 왼쪽 옆으로 그 늙은 절도범이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증인은 도둑맞은 집의 건넌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죠? 그런데 밖에 나갔다 들어오다가 저기 저 사람이 주인집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을 보고 잡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상황을 설명해 보시죠.”

  검사가 물었다. 너무도 명약관화한 사실을 증인까지 불러내어 신문하는 것이 못마땅한 심드렁한 인상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할머니는 옆에 있는 절도범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비록 잘못을 했더라도 그 사람이 면전에서 잘못을 얘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늙은 절도범이 그 할머니를 째려보는 것이 언뜻 눈에 띈다. 순간적으로 기를 죽여서 자기의 잘못을 희석시키려는 것 같다.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다가 대문가에서 보니 저기 저 양반이 안방 창문턱에 텔레비전이랑 다른 물건들을 보자기에 싸고 있는 것이 보이데요. 너무 겁이 나서 못 들어갔지요. 요새 같은 험한 세상에 다칠까 봐요. 그 때 바로 주인집 아저씨가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얘기를 해서 저 사람을 같이 잡게 된 거예요.”


  “마치겠습니다.”

  검사는 간단히 신문을 끝냈다.


  “피고인, 저 할머니한테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봐요.”

  S재판장은 절도범에게 증인한테 물을 기회를 주었다.


  “할머니, 정말 제가 물건 훔치는 걸 봤어요?”

  “봤지요. 아저씨가 주인집 안방에서 물건을 훔치는 걸 다 봤어요.”


  증인은 일단 굳은 결심을 한 듯 정확히 당시 자신이 본 것을 당당하게 말했다.

  “....”


  절도범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 증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내심 ‘이런 때 말 한번 맞추어 준다고 어디 손해될 거 있나?’하는 원망의 눈초리였다.
 
  “피고인, 이만하고 피고인을 위해 법정에서 확인해 줄 절차는 다 해주지 않나요? 이 정도로 그만하지..”

  S재판장은 빙긋이 웃으며 사실 심리를 마칠 의사를 절도범에게 부드럽게 표시했다. 
  “아닙니다. 재판장님.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피해자를 다시 한번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가족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 원 참. 좋아요. 피고인. 그러면 피해자를 법정에 또 불러서 증언하도록 해 줄테니까 다음에는 끝내도록 합시다. 이의 없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 절도범으로부터 압수된 물건들이나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절도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그 절도범과 아무런 원한이 없는 증인들이 특히 그를 모략하기 위한 동기도 없는 것이었다. 또 경찰에서 그런 좀도둑질을 그에게 억울하게 누명 씌운 흔적조차 없는 것이었다. 피해자인 집주인이 동네 파출소에 신고를 함으로써 체포된 범죄였기 때문이다. 재판장은 답답할 정도로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재판장은 오전에 예정된 수십 개의 사건을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끝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기가 맡은 사건을 기다리고 있던 변호사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다른 법정에 갈 스케줄 때문에 다급해 하던 한 원로 변호사로부터 “재판장, 저 양반 뻔한 사건까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분명한 사건은 빨리빨리 넘어가야 하는 게 재판 기술 아니야? 내가 재판할 때는 안 그랬는데 쯧..쯧..” 하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오전 재판은 한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점심시간마저 재판장이 거르면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재판장의 눈에선 핏발이 서는 게 벌써 피곤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피고인 그 누구에게도 한마디도 짜증이나 싫은 기색을 나타내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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