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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아줌마

운영자 2010.04.15 11:35:30
조회 375 추천 0 댓글 0

  어제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내일은 예년보다 10도나 밑도는 첫 강추위라고 떠들더니 신기하게도 맞아 떨어졌다.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차에서 내리니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스쳐갔다. 책상에 앉아 법률서류를 몇 장 쓰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됐다.


  “엄 변호사, 뒤쪽 골목에 가서 만둣국이나 같이 먹고 옵시다.”

  옆에서 법률사무실을 하고 있는 장변호사가 복도에서 만나자 내게 말했다. 50대 중반인 그는 검사장을 하다가 일년 전쯤 나의 사무실 옆에서 새로 개업한 분이다. 오랫동안의 고위 공직 생활을 한 탓인지 아직까지는 고급관료의 느낌이 더 짙은 느낌이 난다. 부리부리한 눈에 뚜렷한 얼굴 윤곽은 수많은 범죄자를 신문하고 부하들을 호령하던 서슬이 베어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어깨를 움츠리고 사무실에서 10분쯤 걸어 뒷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만둣국 집으로 들어갔다. 개업한지 1년쯤 되는 만둣국 집은 근처 사무실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문 근처에 놓인 탁자에 앉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황소 같은 겨울바람이 밀어닥치곤 했다.


  “아주머니, 손님이 많네요? 이제 장사한지 1년쯤 되지요? 역시 음식점은 뒷골목에 있더라도 음식을 정성껏 만들면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장변호사가 카운터에 앉아서 일을 하던 여주인에게 장하다는 듯 격려의 말을 건넸다.


  “원, 별말씀을요.. 찾아주시는 여러분이 도와주시는 바람에 그런 거지요.”

  식당 여주인은 겸손하게 모든 덕을 손님에게 돌렸다. 이윽고 만둣국 두 그릇이 나왔다. 고기를 우린 국물 속에 주먹만한 만두 서너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밥까지 말아먹으라고 공기밥 한 그릇이 딸려 나왔다. 뜨끈한 국물을 훌훌 불면서 마시니 속이 더워진다. 사십대로 보이는 주인 내외가 정신없이 주방과 손님 사이를 뛰어 다닌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다. 값이 싼 만둣국을 한 그릇 파는데도 수많은 공정이 있음을 발견한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일단 상냥한 인사를 하고 자리를 안내한다. 따끈한 엽차를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는다.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때맞추어 가져온다. 음식 먹기를 기다려 재떨이를 가져다 놓고 또 이쑤시개를 가져다준다. 엽차가 모자라면 주전자를 가지고 와서 차를 보충해 붓고 마지막으로 손님이 나갈 무렵이면 계산을 하고 껌이나 사탕을 하나씩 준다. 그 하나하나의 행동에 시간에 늦지 않게 세심한 잔신경을 쓴다. 손님의 기분에 따라 한마디 거들기도 하고 말을 싫어하는 손님이면 편하게 모른 체 해준다. 하나하나의 극히 작은 정성이 모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님들이 그 뒷골목을 또 찾게 만드는 것이다. 장변호사와의 점심 코스는 만둣국 집을 나오면 들르는 두 번째 코스가 꼭 있다. 뒷골목 만둣국 집에서 나와 법원 쪽으로 오르는 언덕 초임 무렵의 건물 모퉁이에 있는 붕어빵 장사에게로 가는 것이다. 리어카에 둥근 솥뚜껑 넓이의 붕어빵틀을 달고 그 위에는 빛바랜 비치파라솔을 꽂은 채 오늘도 사십대 아줌마가 붕어빵을 구워 내고 있다. 첫 강추위라서 그런지 파라솔을 반쯤 비닐로 싸서 바람을 막고 있었다. 비닐이 바람에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아주머니, 붕어빵 두 봉지만 주시오..”

  장변호사가 스테인레스 위에 놓여진 방금 구운 붕어빵을 보면서 말했다.


  “두 봉지 만들려면 더 구어야 하는데 조금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럼 기다릴께요.”


  장변호사는 추운지 손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붕어빵 아줌마는 부지런히 붕어빵틀을 돌리면서 고무호스에서 나오는 밀가루 반죽을 짜 넣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커다란 양철통 속에 있던 단팥을 퍼서 조금씩 반죽 사이에 집어넣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먼지를 한껏 공중으로 밀어오리는 심술을 떨면서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추운데 여자 혼자 나와 손이 빨갛게 얼면서 풀빵장사를 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뭔가 따뜻한 한마디들 던지고 싶은데 조심스럽다.


  “어릴 때는 이런 풀빵을 좋아하고 많이 먹었었는데 아주머니도 풀빵을 좋아했어요?”

  나는 풀빵에 대한 추억을 슬쩍 꺼냈다. 나이 먹은 사람끼리 공유할 수 있는 시절을 풀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다.


  “글쎄요. 저도 어려서는 풀빵을 많이 사 먹었는데 이렇게 길거리에서 풀빵 장사를 할 줄은 몰랐어요..”

  그 말속에는 자신에 대한 한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여과된 체험이 배어 있기도 했다. 아차 싶었다. 어떻게 하면 말머리를 돌릴까 생각하는데 불쑥 한 기억 한편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모 유명 주간지 차장이 하던 넋두리 중의 한 장면이었다. 어느 저녁 퇴근 후 소주 한잔을 하려고 그와 만난 자리에서 들은 얘기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일류로 나오고 반독재 운동경력도 약간 있고 그러다가 그는 일류신문사에 가서 기자생활을 십 오년 가량 했다. 나이 사십이 넘고 보니 사회란 것이 정의가 물같이 흐르지도 않았다. 촌지의 유혹을 과감히 떨치고 생활하다 보니 이제와서는 뒤늦게 난 막둥이의 학비도 부담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편집국의 광경을 보면 머리가 허옇게 세가면서 평 기자 책상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를 바라보는 젊은 기자들의 눈치가 기사를 쓸 정열도 없으면서 월급만 축낸다는 빈축의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나가 주었으면 하는 것이 후배들의 솔직한 의견이었다. 어쩌면 그게 자기의 앞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직원을 쓸 마음을 품고 보름 휴가를 얻어 남대문 시장 안을 열심히 다녀봤다고 한다. 시장 한 모퉁이에 앉아 하루종일 기재해 나가고 평균을 내 보았다는 것이다. 또 그뿐 아니라 길거리 트럭 뒤에서 통닭을 구어 파는 사람의 1주일 수입 평균이나 장사 밑천을 환산해 보기도 하고 풀빵장수의 수입을 평균을 내면서 지켜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15년의 퇴직금으로는 간신히 통닭구이 트럭과 장비를 마련하는 저도라는 것도 어떤 허술하게 보이는 노점상도 월급쟁이보다는 실속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는 빵을 굽는 사이에 장변호사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풀빵아줌마의 얼굴에서 갑자기 환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러문요.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이 풀빵장수가 넥타이맨 월급쟁이보다는 낫지요. 그래도 이걸로 우리 아이들 다 학교에 끄떡없이 다니는 걸요..”

  풀빵장수 아줌마의 얼굴에 순간 스쳤던 그늘이 겨울답지 않게 거두어졌다. 정당하게 번 수입이 가치 척도라면 그녀는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노릇노릇하게 붕어빵이 다 구워졌다.


  “많이 파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장변호사와 나는 각자 풀빵 한 봉지를 손에 들고 풀빵 리어커를 떠났다. 나는 그녀에게 한마디는 일부러 빼 놓았었다. 그것은 그 고뇌하던 중년의 기자가 추구하는 것은 결코 돈이 아니었던 것을. 그는 보다 삶의 본질과 정신적 풍요를 얻기 위해 식구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었다.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회사의 지원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사무실 직원들을 위해 가지고 가는 붕어빵 봉지에서 나오는 따스한 기운이 언 손바닥을 녹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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