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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아침의 방황

운영자 2010.04.20 10:08:09
조회 286 추천 1 댓글 0

  분당에서 광주 가는 방향으로 차로 십 여분 가다 보면 야트막한 봉우리 위에 철탑으로 된 입간판이 보인다. 그게 바로 맹산 정상이다. 산 밑에서 그 정상까지 아침 산책 걸음으로 한 삼십 분쯤 걸린다. 1995년 8월 어느 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그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으로 하루의 아침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며칠간 내린 폭우 탓인지 산은 오통 축축하고 푸른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황토 빛 오솔길의 군데군데에 사람 키 정도의 풀들이 솟아 있었다. 쏟아진 폭우 탓인지 더러 오솔길의 가운데가 패이고 그 곳으로 맑은 물이 좔좔 흘러내린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 우윳빛 아침 안개가 나무 사이를 물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신선이 된 기분으로 아침의 맑고 투명한 산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 마시며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봉우리에서 심호흡을 한 나는 올라온 등성이 다른 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다. 야트막하고 둥그런 산봉우리라 어느 곳으로 내려오든 돌아서 처음 올라갔던 길과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려가는 길은 촉촉한 흙으로 덮여 운동화를 신은 발에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경사가 완만하고 푸르고 무성한 나뭇잎들의 그림자로 동굴을 만들고 있어 마치 선경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렇게 좋은 산책일이 있는 걸 모르고 올라올 때 힘든 길을 택했네’하면서 ‘역시 길은 이길 저길 다녀봐야 좋은 길을 찾아내는거야’하고 중얼거렸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한참을 내려갔다. 갑자기 오솔길이 끝나더니 경사진 산비탈이 나타난다. 산 밑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올라온 방향이 아닌 것 같았다. 산 밑 마을도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데 그곳으로 가자면 잡목이 우거진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것이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힘들더라도 다시 자기가 있던 정상으로 올라가 방향을 잡고 길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올라갔다. 스스로 즐기는 산책이 끝나고 의무적인 걸음이 되자 갑자기 다리에 피곤이 왔다. 내려오던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얼마쯤 왔는지 모르겠다. 저 멀리 내가 올라갔던 봉우리라고 짐작되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면 구태여 그곳까지 다시 오를 필요는 없고 그 밑의 지점에서 내가 처음 올랐던 길을 찾아 내려가면 되었다. 나는 내가 처음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계곡 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무성한 숲 사이에 쌓인 해묵은 낙엽 위로 사람의 발자취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길로 내려갔다. 무심코 또 다른 생각을 하면서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아무래도 주변의 수풀 모습이 생소하다. 내가 걸어 올라올 때 옆으로 보이던 모습들이 아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정상까지 올라가 길을 찾아 내려오려고 생각하니 다리가 아프다. 나는 좌우로 봉우리를 살펴보았다. 오른쪽의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고 높지 않은 야산들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물을 따라 가면 무조건 산 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가볍게 결론을 냈다. 나는 일단 길을 잃은 것으로 단정하고 물소리가 들리 곳을 행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숲은 험했다. 잡목과 풀들이 들어찬 계곡의 물가는 한걸음 내딛기가 힘들었다. 떨어져 쌓인 썩은 낙엽들 속으로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덤불이 발을 묶어 당기기도 했다. 가시가 반소매 티셔츠 밖으로 나온 팔을 긁기도 했다. 습기 차고 음습한 골짜기였다. 밟고 가는 풀 속에서 뱀이라도 나와 물면 꼼짝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짙고 푸른 나뭇잎들의 그림자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계곡만 내려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나는 마치 조난당한 자의 기분을 상상하며 덤덤히 계곡을 내려갔다. 산 밑이라고 생각한 계곡 끝은 예상과는 달리 또 산비탈로 광활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산 밑도 아침에 내가 올라온 곳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제는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조바심이 났다. 집에서 아내는 아침을 차려 놓고 내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다급해졌다. 꺾어진 굵은 나무들이 이리저리 누워있는 산비탈을 이리저리 방향도 없이 허겁지겁 가기 시작했다.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는 의식에 발길이 편한 곳으로 뛰다시피 내려갔다. 내려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산비탈이 눈앞에 전개됐다. 이상했다. 그만큼 높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자꾸만 내리막의 산비탈만 보이는 것이다. 문득 산중에서 귀신한테 홀린 사람의 얘기가 떠올랐다. 산중에서 밤새 길을 가고 또 가도 얼마 있다가 보이는 건 자기가 한참 전에 지나간 지점 바로 그곳이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왜냐하면 올라간 건 삼 사분 거리였는데 그 몇 배를 내려가도 산 밑이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나는 부지런히 아카시아 나무숲을 걸어 내려갔다. 몸을 휘감는 억센 풀들이나 덤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산비탈 한쪽에 앉았다. 둘러싸인 수풀 속에서 하늘만 손바닥만하게 빠끔히 뚫려 있었다. 길을 잃은 채 그 하늘을 보자니 한심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 열심히 산등성이 사이를 걸었다. 한참이나 걸은 뒤에 산 밑을 내려다보니 넓은 개활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비포장의 널따란 길이 산을 옆으로 지르고 있었다. ‘이제 살았다’하고 나는 뛰어 내려갔다. 포크레인으로 산비탈을 깎아 만든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 넓은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떠서 길 위에 하얀 빛을 퉁겨 내고 있었다. 길은 오른쪽으로도 뻗어 있었고 왼쪽으로도 비슷한 모양으로 나 있었다. 내려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하겠는데 그 지점에서는 어느 쪽이 내려가는 길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손바닥에 침이라도 묻혀서 ‘어느 쪽으로 갈까요?“하고 점이라도 치고 싶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나는 그래도 약간 내리막길로 되어 있는 왼쪽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발을 당기는 덤불도 없고 가시도 없었다. 길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감싸고 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처음 느꼈다. 나는 또박또박 그 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산봉우리 옆을 하나 지나치자 나는 하마터면 ’악‘하고 소리지를 뻔했다. 길이 눈 앞에 보이는 여러개의 산봉우리를 옆으로 휘어 감싸면서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올라가는 게 아닌가. 억울했다. 아까 왼쪽으로 방향을 잡을 게 아니라 오른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 할 수 없다. 이제라도 돌아서 오던 길을 다시 걸어서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방향을 돌려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물 한 병 수건 한 장 없이 일어난 그대로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이 아무 인적이 없는 산길을 끝도 없이 방황하는 것이다. 내가 걸어온 최초의 지점으로 가는데만도 힘이 들었다. 그곳을 지나 나는 또 끊임없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쪽이 올라가는 길이었으니 이번은 백퍼센트 틀림없이 내려가는 길인 것이다.


  얼굴에서 땀이 쏟아져 흘렀다. 숲에서 헤매는 바람에 티셔츠와 바지가 온통 젖은 흙으로 얼룩져 있다. 세수 안 한 얼굴과 자고 일어나 바로 나온 머리가 부스스하다. 나는 어느새 누가 봐도 수상한 모습을 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고 또 갔다. 이번에는 끝을 볼 예정이었다.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었건만 도대체 차나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흙으로 된 길바닥에도 차바퀴나 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지 않았다. 나는 묵묵히 걸었다. 하소연 할 사람도 없었다. 아마 집에서 아내는 지금쯤 ‘왜 안 올까’하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산봉우리와 산봉우리의 허리를 깎아 연결한 구부러진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가다 보니 다시 길은 오르막 길이 되어 간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제는 끝까지 가 보는 수 밖에 없다. 헉헉거리면서 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마지막까지 힘들게 오르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눈 앞에 올려다 보이는 능선의 중간 부분에서 길은 끝나 있었다. 산 위로 길을 닦는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이제는 한발 자국도 더 걷기 싫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 그러면 아까 그 길이 다시 맞다는 소리였다.


  이제 이 길은 더 믿을 수가 없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으면서 수많은 봉우리만 옆으로 끼고 돌고 돌면서 사람을 탈진시키는 나쁜 길이다. 그 길을 따라 가다가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는 다시 결심했다. 잡목과 덩굴과 가시가 가득한 수풀을 헤치고라도 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옆에 서 있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지팡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길을 벗어나 계곡으로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이 한참이나 위로 내려다보이도록 계곡 쪽을 향해 내려갔다. 몇 발자국을 걷자마자 계곡에서는 수량이 풍부한 물이 줄줄 내려가고 있었다. 축축한 이끼 낀 물가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깍깍 울고 있었다. 금세 다리가 아프고 피곤해졌다. 어디로 얼마나 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란 사람을 지치게 하나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짙고 푸른 나뭇잎 사이로 손수건 만하게 뻥 뚫린 하늘이 보였다. 다시 돌이켜 길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깊은 숲 속에서 뱀한테라도 물려 기절하면 영락없이 죽을 판이다. 그렇지 않고 탈진하더라도 사람 눈에 띄기 힘든 것이다. 오던 길을 다시 낑낑 기어 올라갔다. 이제는 마을이 눈앞에 올 때까지 가고 또 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산마루 옆으로 굽이굽이 끝없이 돌아 깍은 길을 보았다. 타박타박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렇지만 다른 수가 없다. 걷기 시작했다. 한나절이 다가왔는지 햇볕이 뜨겁다. 시계도 없다. 다만 길 옆 야산 비탈의 중간에 설치되어 끝없이 남쪽으로 연결된 송전탑을 바라보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지그시 밟고 있는 길과 송전탑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므로 한나절을 묵묵히 걸었다. 몇 시간을 족히 걸었음직하다. 20대 중반, 군 시절 한 시간 걷고 10분 쉬고 한 시간 걷고 10분 쉬면서 100리 행군을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면서 나는 걸었다. 또 걸으면서 옛날 선비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을 이렇듯 타박타박 끝없이 걸어갔겠지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 위에 얹힌 맑은 여름 하늘에는 솜 같은 뭉개구름이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조금 가면 나오겠지 하고 기대하던 마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럴 수가 없었다. 나는 길가에서 산 아래 숲을 보면서 걸터앉았다. 조난당한 것도 아니고 죽을 위험에 봉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건 지금 있는 위치도 모르고 산 밑으로 내려가지도 못해 이름 없는 야산 숲에 감금된 건 사실이다. 집에 가고 싶었다. 시원한 샤워가 그리웠다. 따끈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그리워졌다. 지금쯤 아이들과 아내가 나를 찾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혼자 산에 갔다가 혈압으로 쓰러진 것으로 추측하고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연락할 길이 없다. 나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산 아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길을 걸어가다 탈진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도를 하면 인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주님,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주의와 정성을 다하지 않고 무심히 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죽기야 하겠습니까만 다리가 아픕니다. 목도 마릅니다. 빨리 집으로 가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렇다고 갑자기 기적이야 나타나겠습니까? 마지막까지 인내하고 집으로 갈 수 있는 힘이나 주십시오. 정말 힘들다니까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떴다. 벌떡 일어섰다. 기운을 차려 걷기 시작했다. 한 스무 걸음쯤 걸었을 때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번쩍 돌려 뒤를 보았다.


  눈앞에 하얀 엑셀 승용차 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꿈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타박타박 혼자서 걸어온 길로 맑은 햇살을 퉁겨내며 차 한대가 그림같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차 중앙으로 다가서면서 손을 들었다. 차가 멈칫한다.


  “죄송합니다. 아침 산책 나섰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분당 새마을 연수원 뒤 맹산으로 올랐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좀 태워주세요.”

  나는 간절하게 차에 타고 있는 청년에게 부탁했다.


  “일단 차에 타시죠.”

  하며 청년은 운전석 옆 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 문으로 들어서다 말고 멈칫했다. 의자 앞바닥에 놓은 플라스틱 이 리터 들이 콜라병 안에 뱀이 한 마리 꿈틀거리고 있었다. 짙은 초록 바탕에 이따금씩 붉은 반점이 나 있었다. 비늘이 꺼칠꺼칠한 게 마치 새의 깃털 같은 형태였다.


  “이거 뱀 때문에 의자에 앉지 못하겠는데요..”

  나는 주저하며 핸들을 잡은 청년을 쳐다보았다. 그 말에 청년은 운전석에서 나와 그 뱀을 뒷좌석으로 옮겨 놓았다.


  “까치 독삽니다.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길래 잡아가는 길입니다.”

  청년은 횡재했다는 듯 자랑했다. 드디어 차는 산비탈의 험하게 깎아 놓은 길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1킬로 정도만 더 가면 이천의 나뭇골인데 분당 야산에서 출발하셨다면 무지하게 걸으셨군요. 혼나셨겠어요.”

  “이천이요?”


  “네. 조금 더 가면 이천입니다. 저는 이천 산림조합 서기로 있어요. 아침에 새로 공사하는 현장 감독을 갔다 오는 길입니다. 이 길은 아직 일반인이 전혀 모르는 공사 중인 길입니다. 이천에서 광주를 거쳐 성남으로 빠지도록 산 능선에 길을 뚫고 있는 중이지요.”

  “..!..”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했다. 내 체력으로는 한 시간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산길을 왔다 갔다 방황한 까닭에 그렇게 멀리까지 올 수는 없으리라는 짐작이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해 멀리 오고 만 것이다.


  “도대체 이 부근이 어떤 곳입니까? 집이로 가야겠는데 어디로 데리러 오라면 되겠습니까?”

  “저는 산림 서기로 있어 이곳을 자주 순찰하는데 아저씨 말도고 더러 길을 잃고 헤매는 분을 발견했어요. 산이 우습게 보여도 숲이 깊어서 의외로 위험한 곳이에요. 바로 아저씨가 오신 길에서 지난 번 제가 시체 한 구를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시첸가 하면 왜 얼만 전에 대학 입시문제지 유출로 수배됐던 사람있지요? 그 사람이 지금 산중에 닦고 있는 길 중간까지 차를 몰고 와서 그 속에서 약 먹고 죽은 거에요. 사람들 눈에 발견되지 않다가 열흘만에 나한테 발견된 거지요. 제가 찾았을 때는 이미 운전석에 앉아 열흘째 있던 터라 몸이 거의 다 시꺼멓게 썩었더라구요.”


  청년은 지금도 그때가 불현듯 생각나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여기서 차로 조금만 선생님이 오신 방향으로 다시 가면 갈마터널 윗부분 능선이 있어요. 바로 거기서 지난해인가 감옥에서 나와 보복 살인극을 벌이고 경기고 산 속에 숨어서 버티던 김경록이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곳 아닙니까. 만만히 보셨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이 부근은 산이 깊은 곳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도 잘못하면 죽을 뻔했네요..”

  “저는 어려서부터 등산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산림 서기가 된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직업으로 산에 올라가야 하니까 그 좋던 산이 이제는 싫어지데요. 저도 얼마 전에 지금 저희가 온 길 아래 숲으로 갔다가 길을 잃어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도가 있고 같이 간 노련한 산림반장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저도 큰 고생할 뻔했어요.”


  “...”

  나는 정말 겁 없이 여름의 무성한 숲으로 들어섰다는 반성이 들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걸었어도 산을 헐면서 닦는 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사람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한 것이다.


  “제가 산비탈을 헐어서 길을 닦는 마지막 부분까지 보고 다시 돌아서 길을 걷다가 차를 만났는데 도대체 어디 계셨습니까? 제가 발견 못할 리가 없는데요.”

  “도로를 만들려고 산비탈을 허무는 마지막 언덕 바로 밑에 있었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아차’하는 후회가 들었다. 왜냐하면 산을 허는 마지막 부분까지 이르러 눈에 보이는 산마루 중간이 헐려 있는 모습을 보고 절망해서 되돌아선 바로 그 부분 앞에 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눈에 가려진 얕은 봉우리 옆길 몇 발자국 차이로 나는 그 차를 발견 못하고 그렇게 방황하면서 걸었던 것이다. 마지막 몇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지금 아침도 못 잡수시고 돈도 한 푼 없으시겠네요. 제가 갈마터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곳 주유소에서 집으로 전화를 거시지요.“

  “이왕 신세지는 바람에 돈까지 신세 좀 집시다. 한 3만 원만 꿔 주시겠어요? 사무실 가서 바로 부쳐 드릴께.”


  “3만원이나요? 내가 가진 비상금까지 다 털어야 그 정돈데..”

  청년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면서 청년은 지갑구석에 꼬깃꼬깃 접어 논 만 원권 세 장을 꺼내 주었다. 그 은혜로 나는 그날 40킬로가 넘게 떨어진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우연히 떠도는 길에서 아픈 다리를 쉬다가 문득 떠오른 기도해야겠다는 생각.

  이 방향을 잃기 쉬운 넓은 세상에서 그래도 급하면 달려가 매달릴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쁘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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