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자존심 높은 양

운영자 2010.04.22 12:39:56
조회 287 추천 1 댓글 0

  뉴질랜드의 로토루아에서 보았던 일이다. 파란 초원 위에서 작달막한 검정개 한 마리가 ‘으르르’ 하고 목구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내며 양떼들을 노려보고 있다. 잔인해 보이는 갈색의 눈알에 위협과 과시의 빛을 가득히 담아 쏘고 있다. 그 맞은편에 있는 양떼들이 검정개의 눈빛에 온 몸이 얼어붙은 듯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다. 개의 머리가 약간 각도를 바꾸어도 양들 전체의 방향이 달라진다. 완전히 개의 눈 빛 하나에 수백 마리 양들의 행동이 달려 있는 것이다. 검정개 한 마리가 서서히 양들을 한 방향으로 몰기 시작한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양들이 다섯 마리씩 짝을 지어 개가 조종하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개는 일정 수의 양들을 떼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양떼들 뒤고 달려가 펄쩍 뛰면서 양떼의 어깨 위를 딛고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컹컹’ 짖더니 앞을 가로 막는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양떼가 크게 앞뒤로 나뉘어 진다. 검정개는 앞의 무리를 왼쪽 우리에 그리고 뒤에 쳐진 양 무리를 다른 우리에 쫓아 넣는다. 양들이 완전히 우리에 몰려 들어가자 농장의 주인인 젊은 남자가 우리 앞에 고리를 닫아 버린다. 그가 던져 주는 몇 점의 고기를 개는 아주 맛있는 듯 받아먹는다.


  여기저기 겨울 초원 위에 양들이 웅크린 채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는 파릇파릇한 풀들이 돋아 나 있다. 그러나 눈이 쌓인 곳에서는 눈 사이에 삐죽이 돋아 있는 마른 풀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눈이 오면 눈 속에서 양들은 그대로 침묵한 채 겨울을 견뎌낸다. 양치기 청년이 그 양들 중 한 마리를 잡아다가 다리 사이에 끼워 넣는다. 털을 깎으려는 것이다. 양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의 다리 사이에서 다소곳이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모를 정도다. 작은 눈에 비례해 맞지 않을 정도로 뭉툭한 코, 그리고 얇은 입술을 가졌다. 그 청년은 양의 입술을 들여 올려본다. 옥수수 같은 가지런한 이가 나온다. 생풀을 뜯기에도 튼튼하지 못해 보일 정도로 작고 약해 보인다. 청년의 양털 깎는 바리캉이 배에 닿자 털을 뭉텅뭉텅 밀어 버리기 시작한다. 분홍빛 뱃가죽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양은 한겨울을 날 한 벌의 옷을 빼앗기면서도 아무 소리 없이 승복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털이 모두 깎인 양은 새빨간 몸뚱이가 되어 밖으로 내쫓긴다. 쫓기면서도 그저 놓아주는 것만이 감사한 듯 아무 불평 없이 나간다. 푸른 초원 위에서 태어난 양은 땅에서 나는 풀을 먹으면서 인간에게 두 번쯤 털을 선사한다고 한다. 저녁이 되었다고 편안히 잠잘 우리가 별도로 있지 않았다. 그 넓은 벌판의 많은 양을 위해 인간이 목욕 한번 시켜 주지도 않는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날이 밝으나 어둠이 다가오나 초원에서 살다가 삼년쯤 되는 해에는 아무소리 없이 인간에게 가죽과 고기를 바치고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 농장의 한 구석에는 지나치는 여행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각종의 양들이 조그만 단 위에 서 있었다. 여행객들마다 젊잖게 서 있는 양들의 머리를 만져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뿔을 흔들어 보기도 한다. 양들은 마치 다른 양들에게서 일어난 일인 듯 침묵하며 그 손장난들을 참는 걸 보았다. 이쯤 되면 양이 착하고 온순한 게 아니라 무기력하고 못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천 마리의 양떼가 양 한 마리 몸통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검정개 한 마리에게 잔뜩 주눅이 들어 이리저리 몰리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도 겁을 먹은 채 그저 죽은 체 하고 ‘살려 줍쇼’ 하는 태도다. 컬이 다 깎여도 소리 한번 지를 줄을 모른다. 생각과는 달리 얼굴도 실제로는 못생긴 축에 든다. 나는 손으로 나무 상자 위에 종류별로 있는 양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으면서 지나갔다. 뿔이 소라 고동같이 뒤로 굽고 털이 부스스한 제왕형의 양이 내가 뿔을 약간 흔드는데도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 채 아무 티도 내지 않는다 도대체 이건 살아 있는 동물인지 식물인지를 모를 정도다 나는 걸어가면서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자그마한 검은 털을 가진 양을 보게 되었다. 그 양이 서 있는 박스에는 ‘선폴크’라고 이름이 씌어 있었다. 나는 무심코 손을 그 작은 양의 머리 위에 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 검고 작은 양은 내 손이 얹혀진 머리를 흔들어 손을 털면서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움칫했다.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았다. 양이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양의 머리 위로 손을 가져가려 했다. 그러자 그 검고 작은 양은 머리를 뒤로 약간 움츠리다가 앞으로 뻗으면서 나를 받으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나는 뻗으려던 손을 내려놓으면서 그 작은 검은 양의 눈을 쳐다보았다. 갈색의 눈 사이에 세로로 얇게 뻗은 검운 눈동자에서 반항의 광채가 역력히 쏟아져 나왔다. 분명했다. 그것은 굴종과 경멸에 저항하는 강한 눈빛이었다. 작은 덩치임에도 나는 그 눈빛에 겁을 먹고 주춤했었다.


  나는 한나절 양 무리들을 지켜보면서 그 속에 인간 사회를 형상화해 보았다. 몇 점의 고기로 중간에 있는 개를 키운다. 개가 주인을 대신해서 수 천 마리의 양들을 마치 손바닥 이에 올려놓고 움직이듯 지배한다. 양들은 개의 이빨과 잔인해 보이는 갈색의 눈빛에 기겁하기 때문이다. 그 질서 속에서 개는 자신을 인간으로 착각 하는 것 같다. 그런 속에서 개의 붉은 혓바닥이 무서울지라도, 인간의 손길이 겉으로는 따뜻하더라도, 또 덩치가 작고 힘이 없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양은 살아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검고 작은 양을 다시 한번 쳐다보면서 그 뉴질랜드의 농장을 떠났다. 다시 돌아다 본 순간 그 양의 목에는 쇠줄이 매달려 그 양이 서 있는 박스에 걸려 있고 뿔이 잘린 자국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175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차우셰스쿠가 부러워한 북한 운영자 10.06.15 306 0
174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당원자격은 정상참작 사유 운영자 10.06.15 158 0
173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검사와 비슷한 변호인 운영자 10.06.15 154 0
172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요식행위인 재판제도 운영자 10.06.10 162 0
171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영장 없이 언제나 체포 [2] 운영자 10.06.10 205 0
170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처형방법에서도 독창성 주장 운영자 10.06.10 234 0
169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북한 형법교과서의 사형이론 운영자 10.06.10 241 0
168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법 위에 당, 그 위에 김일성 운영자 10.06.08 204 0
167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믿을 만한 통계 없어 운영자 10.06.08 155 0
166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보위부의 살인공작, 고문‧처형 운영자 10.06.08 316 0
165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정치범 사형은 국가보위부 재량 운영자 10.06.03 328 0
164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한 여교사의 신앙증언 운영자 10.06.03 340 1
163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군인도 공개처형 [1] 운영자 10.06.03 406 0
162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한국 노래 불렀다고 인민재판 운영자 10.06.03 199 0
161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경제범 공개처형 빈번 운영자 10.06.03 226 0
160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학생까지도 공개재판 대상 운영자 10.06.03 201 0
159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풍기문란자 공개처형은 전통 운영자 10.06.01 485 1
158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조총련 상공인 위해 여배우 처형 운영자 10.06.01 1300 1
157 공개처형, 그 참극의 실상 - 즉결처형이 지금도 있는 나라 [1] 운영자 10.06.01 620 0
156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입양제도의 부활 운영자 10.05.27 130 0
155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당 간부들 대거 이혼하기도 운영자 10.05.27 222 0
154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가족법 제정의 의미 운영자 10.05.27 624 0
153 이혼 두번하면 벌금 5천 원 - 대동강변 李家村의 몰락 운영자 10.05.27 293 0
152 굳세어라, 보리 문둥이 운영자 10.05.25 253 0
151 미움받는 유태인 [1] 운영자 10.05.25 433 2
150 추억상속 운영자 10.05.25 232 0
149 리히텐 슈타인 왕국 운영자 10.05.20 289 0
148 감옥과 무덤 운영자 10.05.20 244 0
147 괴테 호텔, 단테 집 운영자 10.05.20 282 1
146 뺑소니 [1] 운영자 10.05.18 239 0
145 월부장사 [1] 운영자 10.05.18 273 0
144 간이 바뀐 친구 운영자 10.05.18 234 0
143 뚝방옆 전과자 교회 운영자 10.05.13 242 0
142 사진관 변호사 영감 운영자 10.05.13 282 0
141 엄마,합의합시다. 운영자 10.05.13 276 0
140 뜨거운 감자 운영자 10.05.11 249 0
139 변호사와 사기꾼 [1] 운영자 10.05.11 432 2
138 두 얼굴의 미인 [1] 운영자 10.05.11 469 2
137 앳된 판사와 심통난 늙은 피고 [1] 운영자 10.05.06 432 1
136 한심한 대리인 운영자 10.05.06 248 0
135 양자 빼 주세요 운영자 10.05.06 239 0
134 벙어리 증인 운영자 10.05.06 244 0
133 복대리(複代理) 운영자 10.05.06 280 0
132 약 좀 먹게 해줘요 운영자 10.05.06 243 0
131 임신한 여죄수 [1] 운영자 10.04.29 637 1
130 야! 가라 가! [1] 운영자 10.04.29 282 0
129 큰일낼 여자네 운영자 10.04.29 372 0
128 직접 실험해 보시죠 [1] 운영자 10.04.27 372 1
127 미녀와 법정 운영자 10.04.27 480 0
126 아마데우스 [1] 운영자 10.04.27 251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