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에 이걸 반드시 읽어야 함. 안 읽으면 내용 이해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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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The road to ruin is always kept in good repair
호라이즌 밴드라는 이름은 댄이 제안했다. Event horizon, 사건의 지평선에서 따온 이름이었는데, 앞에 생략된 단어는 이벤트가 아니라 Supernatural-phenomenon, 곧 초자연현상이었다.
즉, (초자연현상의) 지평선 밴드인 셈이었다. 초자연현상처리반의 퇴사자들을 하나둘씩 세상으로부터 격리해 초자연현상에 가두고 죽인다는 목적에 충실한 작명이었다.
소연은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댄은 필요한 준비물로 어디선가 라디오 중계 차량을 탈취해 가져왔다. 민지는 악기를 공수했다. 물론 밴드 그 자체가 초자연현상으로 결속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초자연현상으로 사람들을 유도할 뿐이었다.
유도되는 초자연현상은 과거 민지가 자신의 메타포로 만들었던 Next nest를 주로 이용했다. 초자연현상처리반은 비정기적으로 사람을 하나둘씩 콕 집어 죽이는 초자연현상에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십장생도를 처리하지 못했고, 큰 소모가 있었다.
외국인이 나타난다는 제보와 정체불명의 3인조 밴드가 라디오 방송에 나온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순조롭게 퇴사자들을 죽였고, 그렇게 2023년이 밝았다.
***
2023년 5월 22일, 매너리즘이 생길 정도로 반복되는 살인 작업에 세 사람 모두 말하지 않는 지루함과 피로함에 휩싸였다.
“다음엔 누구죠?”
시간을 거치면서 소연도 더는 길게 떠들지 않았다. 여전히 형식적으로나마 껍데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안의 내용물이 자유를 맞이했다. 껍데기 시절 지닌 습관과 취향, 정신성을 유지할 의무도, 필요도 없었기에, 소연은 적절히 타협했다.
“서울 거주의 정효순이란 사람. 가정을 꾸려서 2남 1녀, 자식들은 독립했고 남편과 동거 중.”
여전히 차량 운전은 민지가 했다. 댄은 안쪽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계를 다루는 건 초자연현상으로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쉽게 고장이 났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을 온전히 유지하고 온갖 걸 기억하고 있는 댄이 기계를 다루는 데 적격이었다.
“자식들은 용케 안 죽었네요?”
차량 너머 댄의 기억을 넘겨받은 소연이 말했다. 민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퇴사자의 가족이니까. 영향이 없진 않겠지.”
“라디오 잠깐 틀어보실래요? 재미있는 얘기가 들리는 것 같네요.”
“라디오?”
소연은 곧바로 라디오를 틀었다. 주파수를 맞추자, 라디오에선 아나운서의 정갈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 시간부로 안동 지역에 대한 출입 봉쇄령이 떨어졌음을 알립니다. 다시 한번 안내합니다. 안동 일대는 현 시간부로 APOF 작전 지역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립니다. 이에 따라 안동으로의 모든 출입로는 통제되오며, 무단으로 진입하려 할 시, APOF의 무력 제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안동?”
“안동에 뭐 있는지 혹시 아세요?”
소연이 물었다. 민지는 소연이 이미 알면서 물어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안동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안동에 폐건물 하나가 있었는데 위에서 반이 뜯겨나간 교회였다. 그곳엔 평범한 방식으로 들어갈 수 없는 문이 있었다.
그 너머엔 대한민국에 강림한 최초의 암흑색맹이 있었다. 민지는 모를 수 없었다. 본인이 찾아갔던 곳이었다. 본인의 얼굴을 뒤덮은 어둠의 근원이 그곳에서 나왔다.
“정부가 암흑색맹을 잡는다고?”
“뭐, 일단 표면적으로는 초자연현상을 이용하는 쪽이니까요. 해가 되는 초자연현상은 초자연현상으로 공멸을 노린다…….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런 걸로 암흑색맹이 제거되진 않을 텐데.”
민지의 말대로였다. 암흑색맹은 가장 오래된 초자연현상 중 하나였고, 그 기원은 어둠에 대한 지성의 두려움이었다. 인류가 빛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한, 암흑색맹은 불멸이었다.
“정부가 어떻게 암흑색맹의 본거지를 아는 거지?”
“글쎄요……. 혹시 모르죠. 처리반이랑 APOF가 공조했을지.”
소연은 적당히 대답했다.
“인제 와서 공조한다고? 대체 무슨 생각…… 윽!”
민지는 지적 충격에 얼굴을 짚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갑작스러운 제동에 안전띠를 매지 않았던 소연은 그대로 창문에 얼굴을 박았다.
“아, 언니!”
“아악! 안 돼! 왜! 어째서!”
민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문을 열고 차에서 뛰쳐나갔다. 소연은 뛰쳐나가는 민지를 보다가 뒤쪽으로 넘어가 댄을 찾았다.
“댄! 언니가 이상해요!”
“It’s over. Let her go. This is her path now.”
정작 댄은 관심도 없다는 듯 내버려 두라며 대꾸했다. 소연은 그 순간 댄의 기억을 뒤졌다. 댄은 보란 듯이 그녀가 기억을 찾기 쉽게끔 몇 가지 특정 기억을 상기했다. 그건 댄이 민지를 만나기 전, 바벨론의 문을 통해 들여다본 미래의 기억이었다.
“이게 언니의 최후였던 거예요?”
“It’s not the end. She’s just changed—into the only shape that could make her dream real.”
“다른 형태로 바뀌다니……. 아니, 그전에 언니의 꿈이 대체 뭔데요?”
소연의 물음에 댄은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Just like you. Just watching someone—nothing more.”
소연은 댄의 비웃음에서 민지가 가진 소망이 자신과 같으면서도 다르단 걸 깨달았다. 그건 분명 살의도, 증오도, 원망도 아닌 인간의 감정이었다. 소연은 허탈함을 넘어선 실망을 느끼고, 분노마저 느꼈다.
“진짜들은 왜 그렇게 나약한 건지 모르겠네요. 분명 언니는 인간성을 다 끊어낸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도 여전히 그런 나약한 감정이 남아있다고요?”
“You’re asking me? What do I know?”
댄은 대답을 피하고 능청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소연은 한숨을 내쉬고 민지가 떠나간 방향을 쳐다봤다. 쫓아가서 죽일까 생각도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민지는 이미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죽을지는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 터였다. 소연은 굳이 귀찮게 자기가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을 맞이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형편없는 퇴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호라이즌 밴드는 앞으로 2인조로 다녀야겠네요.”
“Problem with that?”
“불만이라면 한국말 좀 해줬으면 하는데요.”
“You're asking for too much.”
댄은 그렇게 말하면서 본인이 운전석으로 향했다. 소연은 귀찮은 일을 대신 맡아주니 더 말하지 않고 얌전히 조수석에 다시 앉았다. 차는 다시 출발했다.
***
“안 돼! 그러지 마!”
민지는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활보했다. 암흑색맹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였다. 모든 암흑색맹이 보는 건, 모든 암흑색맹이 공유했다. 모든 암흑색맹은 그 안에서 똑같았다. 그러나 암흑색맹 안에서 자의식을 유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첫 감염 후 얼마간 버티다가도, 이내 암흑색맹이란 거대한 광기의 흐름 앞에서 희미한 의식은 녹아 사라졌다.
민지는 암흑색맹의 사도로 선택받았고, 그렇기에 광기의 폭풍 속에서도 선명한 자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엔 수도 없이 공유되는 타인의 자아가 어색하고 불쾌했지만, 그들의 비명과 붕괴를 공유하면서 점차 익숙해졌었다.
인간성을 하나씩 끊어내면 끊어낼수록, 이제 누가 암흑색맹에 감염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라디오를 듣기 전부터 안동에 누가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본거지에 불나방 같은 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 들어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자기 동생이 있는 것도.
“한태준 씨, 퇴사하려면 회사로 오셔야죠. 적어도 팀장님이나 총괄에게 사직서는 제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퇴사한다는 건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민지의 머릿속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인자하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민지는 머릿속이 타오를 것처럼 괴로웠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다 못해 쥐어짜이는 것만 같았고, 누가 머릿속을 쥐고 터트리려는 것 같았다.
“아아악! 아아악!!!”
민지는 길거리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차에 치여 넘어졌다. 상당한 거리를 굴렀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민지를 찬 차량은 그대로 민지를 밟고 가버렸다.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은 민지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고통은 멎었다. 그러나 민지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어둠 속에서 마주한 건 동생이었다.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동생이었다. 그런데 동생은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 한태준이라니? 그에겐 김민태란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한태준이라니?
초자연현상처리반 대응제거적출 11팀. 암흑색맹에 감염된 순간 공유된 정보가 민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민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안동 어느 교회 지하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당장 돌아가야 했다. 안동으로 가서 마주해야 했다.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민지를 강렬하게 지배했지만, 민지의 몸은 육신의 껍데기만 움직일 따름이었다. 그곳으로 갈 수 없었다. 가지 못했다. 마치 그녀의 영혼이 그곳에 가길 거부하는 것 같았다.
“대체, 대체 왜? 왜 가지 못하는 거야! 왜 이럴 때!”
민지는 절규하듯 외쳤다. 힘이 부족한가? 민지는 주위를 둘러봤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대다수는 가짜였다. 민지는 닥치는 대로 어둠을 흩뿌려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제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저항했지만, 무의미했다.
수십 명을 집어삼켜도 갈 수 없는 건 여전했다. 그런 와중에도 민지의 몸은 계속해서 어디론가 발걸음을 향했다. 민지는 암흑색맹에 감염된 어느 여자를 통해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리 한쪽이 날아간 동생은 괴로워 보였다. 민지는 묘한 희열감과 함께 역겨움을 느꼈다. 헛구역질이 나와 길에서 엎어져 속을 게워냈다. 민지는 여자를 조종하려고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왜 이럴 때 안 되는 거야?”
민지는 차라리 택시를 부르려고 했다. 안동까지 몇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사이에 동생은 죽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택시를 부르려고 도로를 쳐다봤지만, 택시 정거장은 보이지 않았고, 입술도 뜻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마저 자기가 일전에 먹어 치운 뒤라 거리는 한산했다.
간신히 일어난 민지는 다시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동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않았다. 동생이 연결담당자와 나눈 대화를 엿들었지만, 민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동생은 죽으려고 암흑색맹을 찾아가려고 했다. 민지는 당장에라도 동생을 찾아가고 싶었다. 찾아가서 죽이든, 물어보든, 어떤 선택이든 좋았다. 마주해야만 했다.
“윽!”
총에 꿰뚫리는 감각에 민지는 얼굴을 짚었다. 물론 실제로 민지의 몸이 꿰뚫리진 않았다. 동생이 최초의 암흑색맹과 조우했고, 그를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이었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암흑색맹은 불멸이다. 인간이 저항해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동생은 저항했다. 민지는 최초의 암흑색맹을 통해 동생이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통쾌함, 배덕감, 그리고 다시 올라오는 역겨움에 민지는 또다시 쓰러질 뻔했다.
“하아……. 하아…….”
민지는 가로등에 기대어 고개를 들었다. 발길이 닿은 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과거 한국총력고등학교에 등교할 때 지내던 원룸 빌라였다. 여전히 자리에 남았고, 사람들이 사는 게 느껴졌다.
민지는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웁! 우욱…….”
동생이 내던져진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구를 때, 민지는 밀려오는 쾌락에 정신을 못 차릴 뻔했다. 그러나 게워낼 것도 없었다. 육신의 껍데기만 유지 중인 민지는 먹거나 마시지 않은 지 오래였다.
민지는 자기가 살던 곳의 문 앞에 섰다. 안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문이 열렸다. 민지는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보이는 신발은 하나, 남성용 구두였다. 민지는 고개를 들어 거실 안쪽을 쳐다봤다. 부서진 전등에 매인 줄과 거기에 달린 남자 하나가 보였다. 익숙한 뒷모습이었고, 누군지는 금방 알아봤다.
“선배…….”
성진이었다. 그가 어째서 이곳에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살인지조차 의심스러웠지만, 민지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동생은 죽어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오래된 초자연현상 앞에 대적하다니. 목숨이 천 개라도 모자랄 일이었다.
그런데 기쁘지 않았다.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암흑색맹은 본질적으로 같으니, 그녀 자신이 동생은 죽인 거나 다름없는데도.
민지는 매달린 성진을 뒤로 하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암흑색맹의 계획은 간단했다. 죽어버린 동생의 몸에 깃들어 초자연현상처리반 내부에 침투하는 것이었다. 동생의 숨이 끊긴 순간, 암흑색맹은 곧바로 그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흐아아악!!! 아아악!!!”
민지는 강렬한 빛에 휩싸인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고, 발작하듯 몸을 튕겼다. 얼굴을 부여잡고 몸을 굴렸다.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녀의 몸은 타오르고 있었다. 어둠에 잠식된 얼굴과 어둠에 먹혀버린 그녀의 내부가 연기를 내며 타올랐다.
“으아아아악!!!”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아득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민지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잃을 수 없었다. 그녀의 정신은 암흑색맹에 묶여있었고, 암흑색맹이 존재하는 한 그녀의 정신 역시 존재했다. 암흑색맹이 괴로워하면, 그녀 역시 괴로워했다.
민지는 이 고통이 자신에서 비롯된 게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었다. 암흑색맹과 자신은 본질적으로 같았다. 암흑색맹이 소멸하는 고통을 겪는다는 건, 민지 자신 역시 똑같은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었다.
민지는 불타는 와중에 성진을 쳐다봤다. 그 순간, 민지는 어느새 어둠이 걷혀 자기 눈이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죽은 지 오래된 성진의 초점 없는 눈과 마주쳤다. 고통을 넘어선 공포가 민지를 엄습했다.
“흐아아악!!! 끄헉, 헉, 컥! 커어억!!!”
민지는 튕기듯 몸을 굴리다가 이내 매였던 몸이 놓아지듯 쓰러졌다. 민지는 얼마 안 남은 몸의 물을 전부 빼낸 채 누웠다. 여전히 그녀는 살아있었고, 정신도 또렷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그녀를 충만하게 감쌌다.
민지는 직감했다. 이제 자기 몸을 뒤덮은 어둠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암흑색맹이 정녕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그리고 동생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살아난 것인지, 살아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암흑색맹이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멀쩡히 살아있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민, 민태야…….”
민지는 오랫동안 부르지 못했던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민지는 너무 피로했다. 너무 괴로웠다. 너무 배고팠고, 너무 졸렸다. 민지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영영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뜨면 동생을 볼 수 있길 바랐다.
***
“……살아계십니까?”
민지는 입안에 흐르는 물을 반사적으로 마셨다. 간신히 눈을 뜨자, 군복을 입은 여자 한 명이 보였다.
“……누구?”
“실례합니다. 저는 APOF 말살부대 소속 성한희 대위입니다. 김민지 씨 맞으시죠?”
성한희라고 소개한 여자는 상반신만 보였다. 민지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눈을 뜨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민지는 눈을 다시 감았다. 한희가 준 물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했지만, 허기는 여전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한희는 민지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죽을 먹였다. 민지는 겨우 음식과 물을 섭취하고 나서야 말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김민지 씨 맞으시죠?”
민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허기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다. 여전히 온몸에 힘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
“다행입니다. 저는 댄이란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받았습니다. 당신이라면 제가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게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요.”
“누구……?”
“지금은 이적한 제 군 선배입니다. 김민태 중위님이시죠. 당신의 동생입니다.”
김민태. 그 이름을 듣자 민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민지는 정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조차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은 한두 방울 흐르고 그쳤다.
“내…… 동생…….”
“맞습니다. 당신의 동생이자, 제가 연모하는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같이 만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민지는 그제야 눈을 살며시 떴다. 상반신만 보이던 한희의 실체가 눈에 담겼다. 상반신 아래로는 거대한 입이 달린 무언가였다. 더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형상이었다. 그러나 민지는 놀라지 않았다. 놀랄 기력도 없었거니와, 놀랄 일조차 아니었다.
“하나가 될 겁니다. 당신의 강렬한 소망과 당신이라는 영혼의 연결점이 있다면……. 분명 최후의 때, 중위님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한희가 민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민지는 그 손이 참 따듯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온몸을 맡기고 싶을 정도의 온기였다.
“열, 쇠…….”
“열쇠 말입니까?”
“내 품에…….”
민지의 말에 한희는 조심스럽게 민지의 옷을 뒤져 안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았다. 열쇠를 살피던 한희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과거 민지가 성진에게 받은, 초자연현상처리반으로 출입할 수 있는 열쇠였다.
“이런 걸 숨겨두고 계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걸로 중위님을 만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군요.”
“동생을……. 만나고 싶어…….”
민지가 다른 한 손으로 한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두 번째 눈물이 흘렀다. 민지는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민지는 멈출 수 없었다.
한희는 민지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말했다.
“그 소원, 이뤄드리겠습니다. 아프지 않을 겁니다. 잠시 눈을 감고 계시면, 하나가 될 겁니다.”
민지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눈을 감았다. 한희는 몸을 움직였다. 거대한 입이 민지를 향해 벌어졌다.
민지는 순식간에 삼켜졌다. 민지를 삼킨 한희는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김민태 중위님! 곧 우린 만나게 될 거예요! 반드시!!!”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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