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형 녹취분석연구소 대표 스튜디오 운영하다 우연히 발 들여 음성·성문 등 오디오포렌식 정보분석
“경찰·법원 등 국가기관, 언론사나 법무법인을 주로 상대해요. 고객이 의뢰를 맡길 때 보안각서를 쓰고 일을 시작합니다. 분석 내용부터 사용하는 장비까지 모두 대외비(對外秘)죠.”
이철형 대표. /녹취분석연구소 제공
1999년 문을 연 녹취분석연구소는 음성·음향·성문(聲紋·목소리 지문) 등 소리 신호를 분석하고 내용을 파악해 감정 결과를 제공하는 회사다. 여러 민·형사 재판부터 굵직한 사건에도 관여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의뢰한 블랙박스 음향·음성 분석이나 북한 김정남 아들 김한솔 육성 진위여부 판독 등을 녹취분석연구소에서 맡았다. 대법원 등재 특수감정인으로도 활약 중인 이철형(46) 녹취분석연구소 대표를 만나 오디오포렌식의 세계에 대해 물었다.
-녹취분석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녹음 파일이나 영상에 담긴 음성 등의 소리 신호를 분석하고 내용을 파악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특수감정을 한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영화감독이나 음악 프로듀서를 꿈꿨다. 내 창작물을 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걸 좋아했다. 녹취분석연구소도 멀티뮤직시스템이라는 미디어 솔루션 회사로 시작했다. 작업물도 원래는 녹음 파일이 아닌 음악이나 악기 소리였다. 디지털 녹음기가 막 나올 때였는데, 풀 디지털 리코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녹취분석을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스튜디오 운영 초기에는 음반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인 소개를 통해 소리 분석이나 감정 의뢰가 들어왔다. 예를 들면 고소 협박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방이 내민 녹음파일이 조작이 의심된다며 감정을 해달라고 의뢰했다. 알음알음으로 일을 맡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녹취분석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통화 내역을 녹음하는 사람이 늘었다. 자연히 의뢰도 많아졌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어떤 의뢰가 들어오는지 궁금하다.
“살인사건·장기미제사건·급발진 사고 등 다양하다. 세월호 사고 때 배에 있던 차량 내 블랙박스 소리는 모두 우리가 분석했다. 사실 국가기관이나 법률회사가 주요 고객이라 보안 각서를 작성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언론사에서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큰 사건을 가져온다. 이들이 나를 신뢰하지 못하면 극비 자료인 녹음 파일을 쉽게 주지 못할 거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긴 힘들다. 개인 민사소송 관련 의뢰도 들어온다.”
-대법원에 등재된 특수감정인이라고.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분쟁이 법정에서 종결된다. 법관이 국가에서 부여한 힘으로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판결 과정에서 사진·영상신호·녹음파일·소리신호 등 특수 분야 감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때 법원에서 각 법과 분야 전문가를 특수감정인으로 등재한다. 대상자의 감정의견서가 합리적이고, 법원에서 수용할 수준이라고 판단하면 법관이나 해당 분야 전문 법과학자의 추천을 통해 대법원 행정처에 특수감정인으로 등재된다. 그러면 녹음 파일에 대한 감정이 필요할 때 법관이 특정 감정인에 일을 맡길 수 있다. 이를 감정 촉탁이라 한다. 특수감정인 명단은 비공개로 알고 있다. 짐작건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본다.”
-직원은 몇 명이나 있나.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은 없다. 일반 회사처럼 상품을 팔아 매출을 내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의뢰의 상황·감정 규모·데이터 등에 따라 작업 인원이 달라진다. 보안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을 쉽게 쓸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우리 회사가 국가기관도 아닌데, 많은 사람을 쓰면 보안 통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어느 순간 혼자 작업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취분석연구소 제공
-어떤 장비를 쓰는지 말해줄 수 있나.
“보안 유지가 필요해 대외비다. 사용하는 장비가 알려지면 감정 과정을 역추적해서 데이터를 조작할 수도 있다.”
-주요 고객은.
“경찰·법원·언론사·변호사·법인 등이다. 또 대기업 감사실에서도 의뢰가 들어온다. 개인 고객은 소송 당사자가 많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융복합 분야다. 소리는 의학적으로 보면 청력이고, 물리로 따지면 진동이다. 소리라는 개념적인 표현을 쓰지만, 이를 분석하기 위해 접근해야 하는 학문은 5~6개에 달한다. 이를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학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외국 사례·판례·논문 등을 찾아보고 연구해야 한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쓰거나 알고리즘을 적용해보고,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등 실험도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리코딩에 관심이 많았다. 여러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장비 사용 경험도 풍부했다. 녹음 파일로 시작해 하나씩 역으로 상황을 추론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조금씩 찾을 수 있던 것 같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수입도 궁금하다.
“아마 중소기업에 다니는 또래 연봉에 못 미칠 거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녹취 속 목소리를 분석해 특정인을 확인하는 성문 분석이란 분야가 있다. 보험회사에서 자문 역할처럼 성문 분석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들어올 때가 있다. 비대면 계약 과정에서 보험사기 등 여러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맡으면 안정적으로 수입은 나올 수 있겠지만, 당장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의 의뢰를 더 우선시한다. 틀에 박힌 삶을 살기 싫어서 시작한 일이기도 한데,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단순하게 말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 고기 먹고 싶을 때 돼지고기 한 근 살 돈만 있으면 부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정만 잘하면 싸게 작업해주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더러 있는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일 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없나.
“스스로 녹취분석에 대한 결론을 내린 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특수감정인은 공정성을 바탕으로 녹취를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작은 의문점이라도 감정서에 적거나 결론에 명시하는 이유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는 내용만 남겨주기를 바라는 고객은 불편해한다. 물론 의뢰를 받기 전에 이런 부분을 설명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앞으로 계획은.
“녹취분석을 대중에 조금 더 알리고 싶다. 모르면 당하고 알면 힘이 되는 게 바로 이 분야다. 소송 중 상대 측에서 편집하거나 조작한 녹음 파일을 내밀었는데도 기술적으로 조작이 가능한지 몰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분도 있다. 이렇게 억울하게 큰일을 당할 뻔한 분들을 보면 녹취분석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브런치에 올린 글을 바탕으로 책 ‘법과학, 녹취분석학개론’을 출간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이나 영화 작업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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