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우웅...
잔해가 널브러진 도로 위를,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우중충한 회색이 가득한 곳에서, 바퀴는 먼지를 날리며 끝없이 굴러갔다.
"선생님, 목적지에는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예전보단 나아졌다고 해도, 아리우스는 여전히 위험한 곳입니다. 적어도 따님은 저희 쪽에 맡기시는 게..."
"하하, 걱정은 고맙지만 말야."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수녀복 입은 학생들에게, 선생은 두 손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이미 마리와 이야기도 됐고, 결재까지 마친 사안이거든. 그리고... 이 아이도, 아리우스에 대해 알 필요가 있으니까."
"마더 이오치의... 알겠습니다."
"대신 도착 후엔 꼭 현장의 지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안전을 위해서니까요."
"하하, 알겠대도."
백미러로 선생의 미소를 확인한 후, 두 사람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한편, 선생 옆자리에는 그의 딸이 앉아 있었다.
"있지, 아빠. 아리우스는 뭐하는 데야?"
"트리니티가 하나 되기 전에 있던 학교 중에 하나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힌 학원이었지만, 지금은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지."
호기심 많은 소녀의 질문에, 선생은 간략하게만 대답했다. 말보다는 직접 보는 편이, 아이가 이해하기 쉬울 것이므로.
"아, 도착했네요.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공터에 차를 세운 수녀는, 먼저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다들 고마워, 행사가 끝나면 다시 연락할게. 우리 딸은 안 불편했니?"
"응, 난 괜찮아! 완전 쌩쌩해!"
소녀는 몸을 한 바퀴 빙 돌리며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모습이 귀여워,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아핫, 간지러워!"
선생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 앞의 어느 벽돌집을 보다. 2층 정도 높이의 자그마한 그 건물은, 십자가 장식 때문에 경건하게도 느껴졌다.
"여기로군, 시스터후드의 수도원이자..."
"아리우스의 난민들을 받아주는 고아원입니다. 무너진 건물을 수리해서 쓰는거라, 그리 크지는 않아요."
"고마워, 슬슬 들어가볼게. 우리 딸, 아빠가 손 잡아줄까?"
"응!"
선생은 자신의 딸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향했다. 새로운 만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이 수도원의 문을 살짝 밀자, 그 안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녀님! 이거 여기다 놓으면 돼?"
"네, 흘리지 않게 조심해요!"
"수녀님! 이 과자 맛있겠다!"
"후훗, 이따 행사가 시작되면 다같이 먹어요?"
그 중에는 익숙한 목소리도 섞여있어, 선생은 손을 흔들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히나타! 오랜만이네."
"수녀 이모들이다! 안녕~!"
"어라, 선생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수도원의 원장인 히나타는 선생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에, 행사를 준비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선생에게 향했다.
"수녀님, 이 아저씨는 누구야?"
"이번 할로윈 파티에 손님으로 오신 샬레의 선생님이에요. 모두 인사드려야죠?"
"안녕하세요, 선생님!"
히나타의 소개에, 아이들은 힘찬 목소리로 선생에게 인사했다. 선생은 그 넘치는 에너지에 미소로 답했다.
"다들 반갑구나. 오늘 행사에 같이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단다. 이쪽은 우리 딸인데, 너희 또래니까 사이좋게 지내렴?"
"다들 안녕!"
소녀가 손을 번쩍 들며 흔들자, 히나타와 아이들은 손님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오랜만에 온 외지인이, 아이들에겐 신기한 존재였기 때문이리라.
"... 칫."
다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응? 아빠, 저기..."
"선생님, 슬슬 파티를 시작할건데, 행사 진행을 조금 부탁드려도 될까요?"
"맡겨만 줘! 우리 딸도 즐길 준비됐지?"
"아, 으응."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채, 할로윈 파티가 시작되었다.
"트릭 오어 트리트!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하핫, 그래그래. 많이 먹어라?"
할로윈 파티가 시작되고, 호박 바구니를 들고온 아이들은 선생과 히나타 앞에 줄을 섰다. 각자 구호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두 사람은 과자를 나눠주었다.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준비했네? 이런 것도 준비하고."
"잡화점에서도 파는 것들이니까요. 기왕이면 더 즐거웠으면 해서요."
흡혈귀 망토를 두른 선생은, 마녀 모자를 쓴 히나타에게 가볍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과찬이라는듯, 히나타는 손사레를 치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사오리 씨도 오셨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걘 요즘 출장 중이거든. 덕분에 내가 여기 있는거고. 그것보다 우리 딸도 사탕 좀 먹을래? 좋아하는 레몬 맛도 있는데."
"아, 응. 고마워."
아빠에게 사탕을 받아 입에 넣으면서도, 소녀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자신을 향한 적대감이 무엇이었는지, 소녀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아이들이 과자를 나눠먹고 있을 때, 소녀는 마침내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됐다.
"어?"
소녀는 보았다. 나이가 좀 더 많아보이던 한 아이가, 조용히 행사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소녀의 직감은, 저 아이를 쫓아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빠!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어, 조심히 다녀와라."
"나가서 왼쪽으로 가면 돼요."
"고마워!"
복도로 나온 소녀는, 아이가 수도원의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뒤따라간 소녀는,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문을 열었다.
- 퍽, 퍼억.
"어라...?"
살짝 열린 문으로 밖을 확인하던 소녀는,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밖에 나간 그 아이가 나무에 주먹질을 하는 소리였다.
"젠장, 다 죽어버려! 선생이니 뭐니,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나무에 주먹질하면 아플걸? 나무가 까칠까칠해서 손이 까질거야."
"우, 우와악!"
울분에 차 나무를 때려부술 기세였던 그 아이는, 갑자기 옆에 온 소녀에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 너! 언제부터 날 쫓아온거야!"
"몰래 파티장에서 나갈 때부터."
"처음부터잖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탓일까, 그 아이는 소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소녀는 딱히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그것보다 너, 아까 했던 말은 뭐야?"
"그, 그건!"
소녀의 질문에 당황하던 그 아이는, 결국 이를 악물었다.
"하!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어? 뭐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 아이는, 소녀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너네 아빠는 위선자일 뿐이야! 갈 곳 없는 애들을 돌봐주는 건 시스터 히나타가, 아리우스의 치안을 지키는 건 스바루 씨나 마이아 씨가 다 하고 있는데! 너네 아빠는, 샬레의 선생은! 그냥 행사가 있을 때 몇 번 와서 웃고 사진찍을 뿐이라고!"
말을 마구 뱉어낸 뒤 씩씩대던 그 아이는, 고개를 들어 소녀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소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왜, 아무 말도 못하겠어? 어른들은 다 똑같아, 슬퍼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해주...!"
"아빠."
"어?"
그제서야 그 아이는 자신의 뒤에 커다란 그림자가 져 있음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샬레의 선생이 서 있었다.
"아, 아니... 저는 그게..."
아까까지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선생은 어색하게 턱만 만지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히나타가 호박 파이를 만들었거든. 들어가서 먹자, 맛있을거야."
"으, 응! 너도 어서 가자!"
"어? 아니, 잠깐!"
멋대로 그 아이의 손목을 잡은 소녀는, 무작정 그 아이를 이끌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선생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뒤따랐다.
수도원 안은 여전히 왁자지껄했다. 갓 구운 호박 파이를 꺼내온 히나타는, 테이블에 파이를 내려놓은 다음 한 조각씩 잘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 아이가 안 보여서 걱정했거든요."
"수도원 뒤뜰에서 우리 딸이랑 놀아주고 있더라고. 그렇지?"
"그, 그럼!"
선생의 거짓말에 소녀는 어색하게 대답했지만, 히나타는 딱히 눈치채지 못한듯했다. 선생까지 자리에 앉고나자, 히나타는 헛기침으로 주의를 집중시켰다.
"크흠! 자, 여러분? 식사 전에는 꼭 뭘 해야된댔죠?"
"기도요!"
"맞아요! 그럼, 오늘도 일용할 양식이 있음에 감사하며 기도를 드리도록 할까요?"
"네~!"
양 손을 꼭 모으고 눈을 감은 아이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소녀 역시 같이 기도를 드렸지만, 아까 그 아이가 신경쓰여 실눈을 떠보았다.
"..."
그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분노가 얼굴에서 드러나는 듯했다. 소녀에겐 낯선 모습이었다.
"자, 그럼 여러분? 모두 감사의 의미를 담아..."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포크를 달그락대며 호박 파이를 입에 한가득 집어넣었다. 소녀 역시 달달하고 부드러운 파이를 입에 넣긴 했지만, 맛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라? 왜 그래, 우리 딸? 파이가 입에 안 맞니?"
포크를 조용히 내려놓은 소녀는, 선생에게 물었다.
"아빠, 있잖아... 아빠는 사실, 나쁜 사람이야?"
"어, 어?"
예상치 못한 소녀의 질문에, 파티장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선생과 히나타가 상황을 수습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에잇!"
- 땡그랑!
"자, 잠시만요! 어디 가는...!"
"시끄러!"
냉담한 공기를 견디기 힘들었던 탓일까, 그 아이는 포크를 집어던지고는 파티장을 나가버렸다. 히나타가 붙잡으려 했지만, 아이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버린 후였다.
"아...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아이들에게 너무 물러서...!"
"아냐, 괜찮아. 그것보다 히나타, 저 아이에게 어서 가봐. 아마 도움이 필요할거야."
"아, 네! 다들, 금방 다녀올 테니까 파이 맛있게 먹어요!"
아이가 들어간 방으로 급히 뛰어간 히나타. 그 뒷모습을 보던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며 파이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딸은, 잠깐 아빠랑 얘기 좀 할까?"
"응..."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녀를 달래며, 선생은 소녀의 손을 잡고 수도원 뒤뜰로 나갔다.
- 똑, 똑똑.
"안에 있죠? 잠시 들어갈게요."
아이들의 방 앞에서 가볍게 노크한 히나타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침대 중 하나에 누워있는 그 아이는, 이불을 머리까지 올려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가, 아무리 수녀님이어도 오늘은 진짜 화낼거야."
"전 그래도 상관없는데요? 오히려, 솔직한 감정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니까요."
히나타는 그 아이가 누운 침대 옆에 가죽 스툴을 놓고 앉았다. 대화의 여지가 생길 때까지, 히나타는 몇 시간이고 그곳에 앉아있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 아이도 잘 알기에, 아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아... 알았어,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데."
"별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도, 어른이라는 존재가 미운건가 해서요."
히나타의 눈동자엔 슬픔이 가득했다.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기에.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 난민 무리에서 지내던 그 아이는, 법보다 총탄이 가까운 폐허에서 버텨왔다. 트리니티의 제대로 된 지원을 구경한 적조차 없기에, 그녀는 세상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갔다.
그런 아이가 마음을 연 것이 바로 히나타였다. 타고난 모성으로 그녀가 보듬어준 덕에, 적어도 수도원에서만큼은 그 아이가 웃을 수 있었다.
"수녀님이 부를 정도면, 그 선생이라는 사람도 엄청 좋은 분이겠지.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는 여전히 어른들을 불신했다. 우리 속 동물들처럼 자신을 감상하는 어른들은, 그저 탄식을 내뱉고는 자기 할일을 하러갈 뿐이니까.
"괜히 화가 치밀어올라. 애초에 샬레인지 뭔지, 아리우스에 관심이 있긴 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자주 온다고."
그 아이는 침대 시트를 꽉 쥐었다. 눈앞에 선생이라는 작자가 있다면, 한 대 갈기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 어른을 마주했을 때 겁먹었던 자신이, 너무나도 비굴했다. 폐허에서 익힌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그녀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놔둬... 수녀님도, 나 같은 건 놔두고 그 인간이랑 파이를 나눠먹으면 되잖아. 왜 나한테 신경쓰는데..."
거짓말이었다. 제발 위로해달라는 자신의 연약함을, 가시돋친 말로 감추고 있었다.
"... 그랬군요. 그치만, 그치만 말이에요."
그리고 히나타는, 당연히 아이의 진심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샬레의 선생님은 말 그대로 선생님이세요.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죠. 저도, 스바루 씨도, 마이아 씨도, 사오리 씨도... 모두 그분에게 배운거예요."
"배워...? 뭐를?"
히나타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수도원의 건립에 대해 상담을 신청했을 때, 히나타에게 딱 어울린다고 칭찬해주던 선생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분이 뭘 가르쳐 주셨냐면요..."
"누구도 완벽하진 않단다. 완전히 착한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이 세상엔 없지."
수도원 뒷문 계단에 걸터앉은 선생은, 바로 옆에 앉은 소녀에게 말했다. 고개를 푹 숙인 소녀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기울였다.
"그래서 우리 딸이 아빠한테 나쁜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래, 아빠는 사실 꽤 나쁜 사람이란다.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고, 모두를 구해내는 건 불가능해."
"... 진짜?"
소녀에게는 쉽사리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초인 같았던 아빠가, 사실은 나쁜 사람이라고 고백하다니.
"하지만 아빠는 무서운 것도 없잖아? 엄~청 용감한 히어로 아냐?"
"아빠한테도 두려운 순간이 있단다.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한다면, 아빠도 무척 두렵거든."
"사랑하는 사람? 엄마 말야?"
어느 새 고개를 들어 선생을 올려다보는 소녀에게, 선생은 볼을 살짝 꼬집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엄마를 쏙 빼닮은 우리 딸도 말이지."
"으, 으에에~! 놔줘... 그나저나 진짜? 내가 슬프면, 아빠는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보고싶지 않다, 이건 누구나 하는 생각이란다. 나의 가족, 나의 학생, 키보토스의 모두들... 그래서 아빠가 지금까지 선생으로 일하는거야."
선생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잘될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모두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순간들을.
"이건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야.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하지. 눈물보다는, 미소가 더 보기 좋으니까."
"으음... 역시 잘 모르겠어."
"지금은 그걸로 괜찮단다. 언젠가, 아빠의 말이 이해될 날이 올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어낸 선생은, 소녀의 손을 잡고 수도원으로 다시 들어왔다. 소녀가 오늘의 가르침을 기억하길 바라면서.
"그런 얘기를, 선생이라는 사람이 했었구나..."
한편 히나타에게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상념에 잠겨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것도 안하는 어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리우스의 모두에게 사상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니.
"슬슬 일어날까요? 호박 파이도 먹고, 선생님한테도 사과하도록 해요."
"알았어... 머리만 좀 정리하고 나갈게."
적당히 앞머리를 넘긴 그 아이는, 히나타의 뒤를 따라 다시 파티장으로 향했다. 나갈 때의 상황이 상황이었다 보니, 친구들의 얼굴을 어떤 표정으로 봐야할까 긴장이 되었다.
"자, 할 수 있죠? 직접 문을 열어요."
"응..."
조금 움츠러든 모습으로, 그 아이가 문을 열었을 때.
"저기, 다들 미ㅇ..."
"Oh, I can't help believing you! 꼭 만날 수 있다고~!"
"어라?"
아까까지의 조용함은 온데간데없이, 파티장은 요란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멋대로 노래방 기계를 꺼내와 한 곡조를 뽑아내는 선생이 있었다.
"그날부터 믿어왔어, 분명 서로 부르는 마음이 있다면~!"
"저, 선생님?"
"아하핫, 완전 웃겨~!"
노래에 심취한 선생과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는 아이들. 그중에는 선생의 딸인 소녀도 있었다.
"... 이런 사람이구나, 선생님은."
"후훗, 네. 선생님은 이런 분이셨죠. 어쩔 수 없네요, 우리도 같이 응원해줄까요?"
아이들과 함께 앉은 히나타는, 선생의 무대에 환호성을 보내주었다. 이 모든 게 선생의 배려임을, 그녀는 알고 있기에.
"후우... 개운해졌다."
곡을 마친 선생은 테이블에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들 박수를 쳐주었기에, 선생은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앵콜! 앵콜! 앵콜!"
"너네 어른 놀리면 못 쓴다! 예전엔 3시간도 거뜬했는데, 지금은 힘들어죽겠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여기..."
"오, 고마워."
땀을 닦아내는 선생에게, 히나타는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시원함이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헤헤, 아빠 멋있었어! 다음에도..."
"저, 저기."
"응?"
어깨에 느껴지는 감촉에 뒤를 돌아본 소녀는, 아까 그 아이가 볼을 긁적이며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할 말이 있는듯, 그 아이는 쉽사리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까는 그... 미안해. 너희 아빠, 좋은 분이신데..."
"그치! 우리 아빠, 엄청 멋있지?"
"어, 으응. 물론..."
"그럼 됐어! 있지, 우리도 노래 부르자! 같이 부르면 더 재밌을거야!"
"야, 잠깐!"
멋대로 그 아이의 손을 잡은 소녀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고르기 시작했다. 결국 그 아이는, 소녀와 함께 연거푸 세 곡을 완창해야만 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할로윈 파티는 막을 내렸다. 노래와 춤으로 탈진해버린 소녀는, 아빠의 등에 업혀 잠자고 있었다.
"오늘을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다음에도 또 와주실거죠?"
"물론이지, 엄청 즐거웠는걸. 너희들도 다음에 보자!"
"네~!"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선생은 시스터후드가 준비해준 차량에 올라탔다. 차가 떠나가는 동안, 그 아이는 히나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 어땠나요? 선생님이라는 어른은."
"그게, 단정짓지는 못하겠지만...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가보네."
그 아이는 솔직하지 못했지만, 히나타는 그것으로 좋았다. 진심이 쌓이면 언젠가 전해지기 마련이니까.
"후훗, 그럼 어서 들어갈까요? 여러분, 오늘 저녁은 스튜예요~!"
"와아, 스튜!"
"나 고기 많이 줘!"
"난 감자!"
아이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높이며 히나타를 따랐다. 여전히 히나타의 손을 잡은 그 아이 역시, 히나타와 함께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 있잖아, 수녀님."
"네?"
"언젠가 나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 네, 물론이죠.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히나타는 말했다. 그 대답에, 아이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
어찌저찌 할로윈 전에 완성했습니다.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네요.
아리우스에 대해 더 심도있는 내용을 다룰까도 했지만, 일단 이 정도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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