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과동기 녀석이 있었다.
그는 어느 대학교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외모에 원만한 성격을 가진 평범하고 크게 특출나지도 않은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친구였다.
있는 과의 특성상 사람들이 워낙 많아 어지간한 '인싸' 가 아닌 이상, 그들 모두와는 깊은 교우관계를 맺기란 어려웠기에 A와는 서로 면식은 있는 사이였지만 그리 친하지는 않은 사이였다. 그냥 길 가다가 마주치면 간단히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서로 인사치례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기약없는 약속의 말만 주고 받았던 수준이랄까.
아무튼 그런 A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리를 함께한 날이 있었는데 바로 학생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날이었다. 학교에 학생 예비군 대대가 있었던 덕분에 굳이 번거로이 재학증명서를 떼서 어디 동사무소나 다른 곳으로 먼 걸음을 할 필요가 없었고 때로는 내심 빨간명찰이 오버로크된 군복을 입고 교정을 활보하며 받는 주위의 시선도 즐기며 으스대는 맛 또한 제법 있었던 덕에 남들과는 달리 나는 예비군 훈련이 마냥 그렇게까지 귀찮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고도 철없던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해병대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던 같다. 하지만 같은 남자들 눈에나 개구리 군복이나 신형군복, 그리고 해병대 군복의 차이가 눈에 띄지 내가 과시하고 싶었던 여자들한테야 그게 눈에 띄었겠나 말이다.
아무튼, 그 날은 이제 막 초겨울에 접어들기 시작하였음에도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집결장소에 버스가 도착하자 껄렁한 차림새로 담배를 피우거나 하릴없이 핸드폰만 들여다 보며 기다리던 나를 비롯한 훈련 참가자들은 후다닥 버스에 올라타 이런 추운 날에 미쳤다고 훈련을 하냐는 둥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얼어붙은 손을 비비고 녹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20여분이 남았기에 다른 참가자들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던 중, 익숙한 얼굴의 누군가가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A 그 녀석이었다. 어라, 쟤도 오늘 훈련 받는건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에는 내게도 익숙한 위장무늬의 전역모만 덜렁 들려 있을 뿐, 녀석은 군복 차림이 아니었다. 그냥 검은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은 평범한 차림이었다.
이윽고 A도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이 피어오른 얼굴로 내가 앉아있는 좌석으로 다가오고는 인사를 건넸다.
"어라, B 너도 오늘 예비군 훈련 신청했었구나? 혼자 훈련 받기 심심했는데 잘됐다. 근데 너도 해병대 출신이었어..? 전혀 몰랐는데... 아무튼 이렇게 보니 반갑네."
A의 너스레에 나 역시 장장 8시간을 함께 보낼 뜻 밖의 말동무가 생겼다는 반가움에 흔쾌히 옆자리에 둔 가방을 치워주었고 A는 옆 좌석에 앉았다.
"그러게, 진짜 반갑네. 그나저나 나는 너도 해병대 출신인 줄은 전혀 몰랐는데, 나는 XXXX기인데 넌?"
"아, 나는 OOOO기야. 너가 내 선배구나."
"에이 뭐, 사회 나와서까지 기수를 뭘 따지고 그래. 그냥 다 같이 친구하는거지."
알고보니 A는 나보다 몇기 아래인 후배였고 그는 나와는 달리 서해 쪽에서 복무했었더랬다. 그리고 남자들의 군대 얘기가 으레 그러하듯 본격적으로 서로의 군생활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 나는 먼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근데, 너 왜 군복 안입고 왔어? 이거 안입고 와도 되나?"
내 물음에 A는 잠시 표정이 굳어지는 듯 하더니 이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 일그러진 미소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듯했다.
"아... 사실, 잃어버려서 그냥 가서 한 벌 달라고 하려고."
"아.. 그렇구나. 이거 뭐 조기퇴소 당하고 그런 불이익 있는건 아니려나?"
"아냐, 저번에도 훈련장에서 조교 통해서 빌려 입고 훈련 받았어. 원래 달라고 하면 빌려준다더라."
"오, 그래? 잘됐네."
그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A와는 이렇다하게 서로의 군 생활에 대한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 군복인데다 A와 나는 해병대라고 하는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A는 나의 이런저런 질문에 그냥 대답을 얼머부리거나 혹은 어색한 미소로 시종일관 응할 뿐 그다지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A의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이유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냥 별로 군 생활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거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겠거니 짐작 하고 대화 주제를 바꾸어 당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취업, 연애 등과 같은 공통된 고민거리이자 이야기거리들에 대해 말을 꺼내자 A는 그제서야 그럭저럭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도시 외곽의 어느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일련의 훈련수속 절차를 모두 밟고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야외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땀을 흘려 얼어있던 몸도 녹이는 듯 했지만 그도 잠시 땀이 식으면서 더한 추위가 찾아오니 여간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전을 어찌저찌 보낸 나와 A는 점심식사 후,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추운 날에는 유도리 있게 실내교육으로 좀 바꾸면 안되나 하며 투덜거리던 나와는 달리 A는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뭐해? 어딜 그렇게 봐?"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라는 듯 A는 대략 20~30m 쯤 떨어진 벤치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라이터를 틱틱대고 있는 어느 해병대 군복 차림의 한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A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이 달싹거리고 있었고 평소보다 배로 커진듯한 눈의 동공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은 오른손으로 왼손 손등을 벅벅 긁고 있었다. 가뜩이나 추운 날인데 핸드크림조차도 안바른 상태에서 어찌나 세게 긁었는지 손등은 이미 벌겋게 떠 있었다.
"야, 너 왜 그래? 뭔데, 저 사람 아는 사람이야?"
A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마치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듯한 모양새로 그가 하는 모든 무의식 중의 손짓 발짓에 어지러이 시선만 옮길 뿐이었다. 나는 의아한 마음에 A가 주시하고 있는 그 사내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혹시 저 친구 아시는 분인가요? 제 친구인데 지금 그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서 혹시 지인이신가 해서요."
"네?"
검은 뿔테 안경에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한가로이 피우던 담배를 입에 갖다 대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상의의 앞섬을 풀어헤쳐 드러난 그의 다부진 체격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는 심드렁한 시선을 돌려 내가 가리킨 A를 멀뚱히 바라보았고 그러고는 유심히 살펴 보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사내는 이내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급히 담뱃불을 탁탁 털어내고는 말없이 자리를 떴고 내가 사내를 불러대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망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보였다.
나는 사내의 뒷모습과 여전히 제자리에서 손등만 벅벅 긁고 있는 A를 번갈아 보며 내심 그 둘의 관계를 어렴풋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든 군대에서든 일단 이 둘은 썩 유쾌하지 않은 관계로 만난 사이임이 분명해 보였다. 자리를 피하는 저 사내의 분위기로 미루어보건대 일단 사내 쪽이 A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처지였으리라.
A는 사내가 황급히 올라간 언덕길을 여전히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고 그의 손은 여전히 분주했다.
"야, 그만해. 피나겠어."
내가 A의 오른손을 잡고 조심스레 왼손 손등에서 떼어놓자 A는 그런 나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더니 자리를 떴다. 나는 A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고민에 빠졌다. 저 사내와 얽힌 사연을 물어보면 실례가 될까. 그냥 버스에서 처럼 모르는 척하고 다른 대화 주제를 이끌어나가야 할까.
그렇게 묘했던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교육이 시작되었다.
오후 교육에는 예비군 훈련의 유일한 재미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야외 실탄 사격훈련이 편성되어 있었다. 사격 훈련 전까지 A는 내내 말이 없었고 나도 그런 A의 분위기를 살피며 굳이 A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의미 없는 농담을 던진다던지 혹은 괜찮냐라고 묻는다던지와 같은 일도 없이 조용히 훈련을 받았다. 물론, A의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함이 감도는 듯한 조용한 무표정이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기에 괜히 심기 거스르지 말자라는 생각에 그냥 조용히 내버려두기로 했던 것이다.
이윽고 사격훈련이 시작되었다. 최초 편성된 조 별로 사격하는 것이었기에 나와 A는 같은 라인에서 대기 중에 있었고 언덕에 위치한 사격장에서는 어렴풋이 맡을 수 있는 화약냄새와 총성만이 어지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 이제 세시간 남았네."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A와의 어색한 분위기도 환기할 겸하여 슬슬 느껴지는 훈련의 지겨움에 토해낸 혼잣말이었건만 A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A는 뒤를 돌아보고 있었고 어느새 다시 손등을 긁고 있었다. 뒤에 서있는 다른 예비군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런 A를 위아래로 훑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엄습하는 불안함을 느끼며 A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자리에는 아까의 그 사내가 서있었다. 사내는 애써 A의 시선을 외면하려는 듯 헛기침을 연발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A를 보며 나는 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해졌다. 만류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까처럼 계속 모르는 척 해야하는 것일까. 그러나 모르는 척하기에는 A의 왼손 손등은 이제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고 피가 보이기 시작한 상태였다. 가뜩이나 추위로 부르터서 건조해진 손등에 연신 손톱으로 할퀴어대니 피가 터져나온 것이었다.
"야, 피 나오잖아! 이제 그만해."
나는 건빵 주머니에 챙겨온 물티슈를 급하게 꺼내들고는 A의 왼손 손등을 감쌌다. 그러나 A는 아랑곳 않고 여전히 그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희번득하게 눈을 뜬 A의 눈빛에서는 광기마저 감도는 듯 했고 내심 두려워지기 시작한 나는 우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찰나, 우리 조 차례가 되어 교관이 우리를 사격장으로 인솔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각자 지정된 사로에 자리한 우리는 교관의 지시에 엎드려 쏴 자세를 취했다. 슬쩍 바로 옆자리의 A를 보니 녀석의 표정은 여전히 조용했다. 분명 녀석의 심리상태는 복잡할 터, 그러고 보니 녀석의 화난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과연 저게 화난 모습인 건지 아니면,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분을 삭히는 중인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일단 당장은 사내가 눈 앞에서 사라짐으로서 잠시나마 내면의 평화를 찾은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저 둘을 떼어놓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이유 모를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선배님, 교관님의 지시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내 옆의 조교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관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 홀로 교관의 구령에 따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미안해요."
교관이 이윽고 다시 구령으로 지시하기 시작했다. 이미 현역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해온 동작 덕분인지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기계처럼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자꾸만 A가 신경 쓰여 주위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둘을 떼어놓았지만 사격이 끝나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이번이야 사실 저 아저씨가 속한 조가 재수없이 우리 조 뒤에 훈련을 받으러 온 것이니 그 다음 훈련에는 별도로 피해서 다니면 되려나? 아니, 애당초 나는 왜 이것 때문에 이렇게 신경 쓰고 있어야 하지? 사실 따지고 보면 저 둘 간에 일에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노리쇠 후퇴고정,
약실확인, 약실확인 이상 무,
노리쇠 2,3회 후퇴 전진,
조정간 위치 단발, 격발,
격발 이상 무,
노리쇠 후퇴고정,
조정간 위치 안전,
탄창 인계,
탄창 수령,
탄창 확인,
탄창 결합,
탄피받이 결합,
노리쇠 전진,
조정간 단발,
"탕!"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었음에도 고막을 찢는 듯한 아직은 이른 총성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교관들과 조교들은 물론이고 우리 조원들도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우왕좌왕 하고 있었고 그 중 더러는 멍하게 서있거나 더러는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땅에 쳐박은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의 A는 없었다.
K-2와 함께.
사람들의 욕지거리와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얼떨결에 일어서 A를 찾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격장의 계단으로 가보니 녀석은 그 아래에서 총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의 앞에 우뚝 서있었다. 대기 중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숨어버리거나 도망가서 대기장에는 바닥에 널부러진 그 사내와 A뿐이었다. 사내가 흘린 피가 창백한 회색빛의 콘크리트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를 등지고 서있는 녀석의 뒷모습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방탄 헬멧을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은 A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녀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나는 왜인지 녀석의 표정을 알 것만 같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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