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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단편문학] 호구와 바보

ㅇㅇ(49.174) 2023.06.03 21:52:32
조회 1780 추천 78 댓글 14
														



누구에게나 즐거울 퇴근시간이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퇴근시간은 단순 일에서 벗어났다라는 해방감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 외에도 그날 쓸 글에 대한 구상이 가져다 주는 설렘과 창작의 재미가 가득한 시간이기도 하다.



퇴근길로 북적이는 지하철 역의 인파를 헤치고 겨우겨우 지하철에 오르면 나는 늘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 그 날 하루의 감상에 대해 간단히 써내려간다. 이른바, 에세이인 셈이다.



물론, 나는 전업 작가나 혹은 글로 먹고 사는 무슨 인플루언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글쓰는 취미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일 뿐. 처음에는 그저 그 날의 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간단하고도 소박한 취지에서 비롯된 이 취미이자 습관은 2년 쯤이 지난 지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를 이웃으로 삼은 이들이 수백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별 것 아닌 나의 글에 늘 공감하고 잘 읽었다며 격려와 칭찬을 남겨 주었으니, 실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때로는 이런 남들의 반응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최초의 내 소박한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는 생각도 들어 글을 쓰기도 겁나는 때도 종종 있었다. 아무래도 더는 나만이 보는 공간이 아닌 수백개의 눈이 지켜보는 곳이 된만큼, 단어 하나, 표현 한 줄을 쓸 때에도 고심하며 조심스레 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생각을 가감없이 남들 앞에서 풀어놓기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뒤따를 영향이나 결과 또한 등한시 할 수 없음을 새삼 다시금 느끼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렇듯 내 블로그에서의 유동인구가 제법 되다 보니 때로는 내 블로그를 하나의 광고 내지 홍보의 수단으로 쓰고 싶다면서 대가를 약속하며 상업적인 제안을 해오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응하지는 않았다. 우선 검증되지도 않은 이들일 뿐만 아니라, 사기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제일 컸던 것이다. 또한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에 불과한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겠다라는 제안도 여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어느 한 사람의 제안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이전에 내가 올린 어느 글에 비밀댓글로 인사와 함께 자신을 소개한 이는 자신이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비공식적으로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댓글의 말미에 자세한 얘기는 쪽지로 하자며 짧게 글을 마무리 지어두었고 이내 쪽지를 확인해보니 그로부터 온 쪽지에는 상세하게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용인즉슨, 그는 최근 각종 사건사고로 실추된 군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국방부의 정책의 일환으로 공식 홍보물 뿐만 아닌 비공식적인 간접 홍보물의 제작에 참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간접 홍보물이란, 국방부에서 공식으로 내놓은 군 홍보물이 아닌, 일반인들의 SNS,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 만들어진 군에 이로운 홍보물을 뜻하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이미지를 쇄신하려 한다는 것이 그 취지라고 했다. 또한 아무래도 홍보의 효율성, 접근성을 감안시 사람들의 조회가 많고 그 영향이 클 인플루언서나 혹은 유명 블로거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글의 말미에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며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고 구체적인 보수나 조건에 대해서는 협의에 따라 달라지므로 지금 당장 말하기는 어려우나 의뢰의 주체가 국방부인 만큼 그 보수는 결코 섭섭치 않게 받을 것이라고 적어둔 내용에서 그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듯 했다.



쪽지를 다 읽은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다시금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실추된 군 이미지의 제고라...


하기사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부대 내 사건 사고를 고려해보면 국방부에서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 또한 그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미지를 어떻게 쇄신하겠다는 걸까. 나는 내심 그 방법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당장 관심이 동했던 최대의 사유는 보수금액의 규모였다.



사실 돈에 쪼들리며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장인이란 것이 늘 돈이 고픈 존재가 아니던가. 또한 이번에는 무려 국방부라고 하는 공식 국가기관에서 비공식적이라 하더라도 제안이 들어온 것인만큼 내심 나의 재능이 국가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라는 생각에 내심 뿌듯해지며 어깨도 자연스레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흡사 임금이라도 알현하려는 신하가 의관을 정제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화장실로 향하여 씻기 시작했다. 물론 면접도 아니고 그냥 전화로 연락할 것이었음에도 이토록 내가 호들갑을 넘어선 지랄에 가까운 짓거리를 한데에는 나름 면접 전에 마음을 다잡으려는 것이기도 했다.



이윽고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그가 남긴 전화번호로 연락을 걸었고 통화 연결음이 몇차례 울렸을까, 이내 누군가가 받았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그... ABC 블로그 운영하는 A라고 하는데 제 블로그에 국방부 홍보제안 댓글 보고 연락 드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중후한 저음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죄지은 것도 없음에도 나는 괜스레 움츠러들었다. 목소리는 왜 이리 딱딱하단 말인가. 사기꾼은 아니려나?


"아, 네네. 일단 어떤 홍보물인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만... 혹시 어떤 내용인가요?"



"네, 다른 것은 없고 그냥 선생님께서 군 생활을 하시며 겪으신 일이라든지 혹은 주위에서 들은 군 생활에서의 미담, 혹은 군에 대해 가지신 생각이나 그런 것들을 주로 쓰시는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서 최대한 좋게 써주시면 됩니다. 뭐 어렵거나 그런것은 전혀 없으실거고 관건은 어디까지나 실추된 이미지의 제고인만큼, 좋은 내용들로만 많이 써주시면 됩니다. 만약 하신다고 하면 우선 처음인만큼 글 한편당 대략 X만원 씩 대가를 드릴거고 추후 조회수나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그 금액은 더 올라갈 것이고요. 선생님께서는 워낙 글 솜씨가 좋으시니 나중에는 글 한편 당 몇십만원 씩 받아가시는 것은 일도 아닐 겁니다."



"아... 네, 그렇군요..."



달랑 글 한편 쓰고 몇만원을 번다라... 역시나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물론 생소한 소재이긴 했지만 내 군생활에 기반하여 대강 포장해서 써도 되고 또 주위 친구들로부터 주워들은 얘기도 글의 소재로 삼으면 될 일이었다. 거기다 나중에는 몇십만원 씩 벌어갈 수 있다라면 이토록 효율적이고도 간단한 돈벌이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마음 속 깊은 어디선가 아득바득 올라온 자존심, 양심이란 두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나는 기꺼이 그 글을 쓸 수 있을만큼 배알이 없는 놈인가? 과거 나의 군 생활의 시절을 돌아 보노라면, 온갖 가혹행위와 부조리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시절이 아니었던가. 해병대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육해공 3군이 모두 그리 생겨 먹은 것인지 다른 군은 경험해보질 않았으니 소상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나 어느 구석을 보아도 이 사람의 말대로 미담으로 포장할 수 있는 수준의 경험은 아니었다.



더구나, 내가 전역한지도 어언 몇년이 되었고 그 몇년 동안 바깥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삐 돌아가고 바뀌었음에도 그 집단은 전통의 고수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여전히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악질 중의 악질, 적폐 집단이 아니던가. 한때는 사나이들의 로망, 바다의 사나이라는 멋드러진 이름에 혹하여 빨간 명찰을 달았지만 매일 밤마다 선임들에게 얻어 맞은 부위를 홀로 어루만지며 그 때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눈물로 지새운 밤이 얼마이던가!



결국 지금 그 날의 내 눈물을 돈 몇푼에 팔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잠시나마, 아주 잠시이지만 몇십만원에 혹한 내 자신이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보니 거실 한 켠에 서있는 전신 거울이 보였다. 그리고 거울 속에는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속옷바람으로 멀뚱히 서있는 어느 병신이 있었다.



"저기...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네?"



"주신 제안은 감사하지만, 개인적으로 겪은 군생활을 돌이켜볼 때 그걸 미담으로 포장해서 적을만큼 돈이 부족하지도, 배알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돈의 액수가 부족해서 그러신 것이라면, 얼마든지 더 올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어차피 익명의 공간인데, 양심이란 놈은 잠시 덮어두셔도 좋을텐데요. 선생님이야말로 제가 찾던 분이셔서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아뇨, 익명이든 양심이든 혹은 돈이 얼마든 간에 그냥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



사내는 다시 잠시 말이 없다가 가볍게 한숨 짓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선생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뜬금없게 들리시겠지만 선생님 덕분에 저 또한 다시 한번 용기와 자신을 얻었습니다."



"네?"



나의 질문에 사내는 여전히 무미건조하지만, 그러나 미약하게나마 한결 가벼워진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비록 일 때문에 이렇게 선생님께 제안드리고 이러고 있습니다만, 저 또한 지난 군 생활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일을 하며 짙은 회의감을 가진지 오래였습니다. 웃기는 일이죠.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를 위해 변호하고 있으니 말이죠.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까마득한 옛날의 일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자니 그 또한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래서 요즘에는 제가 과거의 일에 연연하여 눈 앞의 이익도 못챙기는 자존심만 살아있는 바보라는 생각도 들어서 그냥 잊어두자, 덮어두자 하며 이러고 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덕분에 제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듭니다."



지난 날의 번민을 쏟아낸 사내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했다.



"저는 부유한 호구보다는 자존심만 산 바보의 삶을 살겠습니다. 저야 자존심만 챙기고 가겠지만 선생님께서는 부디 자존심과 부유함도 챙긴 바보의 삶을 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쓸데없는 제안으로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뺏어서 죄송했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윽고 사내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사라졌고 나는 탁자 위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고민을 한가득 안고 매일같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아려오기도 하였다.



매일 무슨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을까. 매일 무슨 심정으로 다이얼을 눌렀을까. 비록 그의 생김새, 나이 등 무엇 하나 아는 것은 없었지만 어렵지 않게 그의 표정과 심정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이 말을 미처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졌다.



호구와 바보, 무엇 하나 썩 좋지 않은 어감들 뿐인 단어들이긴 하지만, 호구의 삶을 버리고 선택한 바보라는 새로운 삶은 결코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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