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의사라는 안정적인 삶을 박차고 나와 창업에 나선 사람이 있다. 하루에 봐야 하는 환자가 수십명이 넘다 보니 꼼꼼히 진료할 수 없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또 정신과라는 높은 문턱을 낮추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 의료 전문성에 IT 기술을 더해 접근성 높은 정신 건강 관리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디지털 정신건강케어 스타트업 포티파이 문우리(36)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문 대표는 창업 전 이력이 화려하다. 2009년 대학 졸업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평소 의학뿐 아니라 창업에도 관심이 많아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경영학 석사 과정)도 함께 공부했다.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해보고 싶어 졸업 후엔 2011년 맥킨지앤컴퍼니에 입사해 3년여간 경영컨설턴트로 일했다.
“첫 직장이었던 맥킨지에서의 생활은 재밌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쉽진 않았죠. 구글, 삼성 등에서 경험을 쌓고 온 경력자들과 동일 선상에서 일해야 하다 보니 처음 1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자리를 잡아갈수록 일이 재밌었고 보람도 컸어요.
그렇게 일하던 중 어느 날 스트레스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할 때가 왔구나 싶었어요. 맥킨지에서 일하면서도 의사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싶진 않아 언젠간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 돌아와 2014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으로 병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연봉은 맥킨지 때와 비교하면 반의 반 토막 수준이었어요.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어느덧 교수가 되어 있었는데, 전 인턴 생활을 하고 있으니 심리적으로 힘들기도 했어요.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에 우울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정신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7년여간 일했어요. 우울증, 불안장애, 치매 등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만났는데 진료 시간이 턱없이 짧다 보니 일하면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한 타임 동안 환자 30명 정도를 받았어요. 교수님들은 50명씩도 받는 상황이었죠. 정신과 진료는 환자와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밀린 환자를 다 보려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평균 진료 시간은 불과 10~15분 정도였습니다.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선 결국 약물 처방 위주로 진료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정신과 방문 환자 수는 213만명인데, 정신과 전문의는 3900여명에 불과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울감, 무기력감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면서 정신과 환자는 더 빠르게 늘고 있어요.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 수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전문기관을 찾는 걸 꺼리는 사람이 많아요. 정신과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싶었습니다. 더 많은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의료 전문성에 IT 기술을 결합해 접근성 높은 정신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온라인 마인드케어 프로그램 ‘마인들’. /포티파이
문 대표는 박사 과정을 마친 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예비창업지원 사업에 뽑혀 2020년 7월 ‘포티파이’를 창업했다. 현재는 총 10명의 팀원과 함께하고 있다. 임상 심리 전문가 5명, IT 개발자 및 기획자·마케터 5명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1월 맞춤형 온라인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마인들(MINDLE)’을 출시했다. 서울대 출신 정신 건강 전문가들이 만든 마인들 검사는 ‘심리 도식치료’라는 심리학적 이론에 기반을 둔 검사다.
마인들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는 성격 패턴 검사를 거쳐 사용자의 성향을 분석한다. 엄격이, 물렁이, 고독이, 콩콩이, 버럭이라는 5가지 캐릭터로 나눴다.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은 엄격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물렁이, 사회적 소외를 겪는 사람은 고독이, 불안감이 높은 사람은 콩콩이,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운 사람은 버럭이인 식이다. 이렇게 검사 결과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맞는 맞춤형 온라인 치유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전문가들의 코칭 영상, 마음 체크, 퀴즈 등 다양한 활동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성격패턴을 크게 5가지로 나눴다. /포티파이
-사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창업할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왜 사서 고생하냐면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비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집중했어요. 영상 회의 플랫폼 ‘줌’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모아 직접 이야기를 듣고 상담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고민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마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맞춤형 디지털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마인들은 심리 도식 치료, 인지행동 치료, 수용전념 치료 등 현장에서 활용하는 이론을 기반으로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어요. 전문가들과 협업해 콘텐츠를 직접 만듭니다. 현재 600여종의 콘텐츠가 있어요. 2023년까지 5000여종의 콘텐츠로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 3월에는 사업성을 인정받아 끌림벤처스 VC로부터 5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궁금합니다.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과 기업 간 거래)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어요. 맥킨지에서 일할 때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멘탈 문제를 겪는 동료를 보면서 기업에 속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현재 기업·기관에 속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영업·서비스·육체노동 등 직군별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요.
작년 성남시의료원 코로나 대응 의료진을 위한 온라인 심리 치유사업을 운영을 시작으로 맥킨지앤컴퍼니, 넥슨 등에 임직원 대상 온라인 워크숍 및 심리케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9월부터는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Business To Consumer·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모델로 확장할 계획이에요.
서비스는 월 구독 형태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용 부담을 크게 줄였어요. 보통 정신과 진료는 한 번에 3만~4만원, 심리상담센터는 회기당 7만~1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요. 마인들은 한 달에 2만~3만원대입니다.”
포티파이 문우리 대표 . /포티파이
-경쟁사와 차별점은요.
“전문 의료진이 직접 스트레스 관리 솔루션을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명상, 마음 일기 등과 같은 방법으로는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해요. 실제 치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심리 치료 이론 등을 기반으로 임상 치료 현장에서 쓰는 치료법을 디지털화했습니다. 또 고위험군 사용자는 프로그램과 연계한 1:1 추가 관리를 받을 수 있게 했어요.”
-창업 이후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후기를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상처에 빨간 약을 발라주는 것 같았다’ ‘불안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줘서 좋았다’ ‘심리 상담이나 병원 방문은 망설였는데 집에서도 간편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등의 후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본격적으로 B2C 서비스에 나설 예정이에요. 또 커뮤니티 기능을 도입해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이 밖에도 정신건강 이론에 기반한 전문 콘텐츠를 더 다양하게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고위험군의 경우 면담이나 병원 방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향후에는 해외에도 진출할 생각이에요. 멘탈 케어와 관련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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