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성탄절이라고도 불리는 그날은, 본디 트리니티의 어느 성인의 탄생을 축복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성인이 모든 이의 행복을 바라왔기 때문일까,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선물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휴일로 그 의미가 굳어졌다.
"아빠! 리쭈 달았어!"
"어이구, 벌써? 그래, 잘 달았네. 근데 리쭈가 아니라 리스란다?"
그리고 그것은, 키보토스의 퍼스트 패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히히, 셋쨩이 도와줬어. 고마워, 셋쨩!"
[퓨퓨이!]
자신의 로봇강아지 셋쨩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소녀는, 엄마에게도 리스를 자랑하기 위해 안방으로 향했다.
"엄마, 엄마! 나 거실에 리스 달았다?"
"어머, 정말요? 그럼 한 번 보러 갈까요? 끄응..."
침대에 걸터앉아 시집을 읽던 하나코는, 딸아이의 부름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최근 더 커진 배와 깜빡거리는 조그만 헤일로는, 그녀의 안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머나~, 예쁜 리스네요. 잘했어요, 우리 딸."
"에헤헤... 나중에 동생한테도 자랑해야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소녀는 벌써 동생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잔뜩이었다.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소녀는 하나코의 배를 쓰다듬었다.
"어라, 당신 벌써 나왔어? 좀더 방에서 쉬지 그래?"
"저도 기대돼서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더라고요. 그나저나 이건..."
하나코는 웅크려 앉아 무언가를 설치하던 선생을 마주했다. 선생이 손을 가볍게 털고 일어나자, 그의 등에 가려졌던 것이 드러났다.
"우와아, 트리다! 나보다 커!"
"뭐, 엄청 큰 편은 아니지만 집에 전시하긴 딱이지."
TV 옆에 소녀의 두 배만한 트리를 전시해두니, 집 안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렇게 다들 곧 있을 휴일을 모두 기대하고 있을 그때.
"그럼, 슬슬 트리 조명도 켜볼까? 아마 훨씬 예쁠 거야."
"응! 빨리빨리!"
[퓨잇!]
선생이 트리 조명의 코드를 꽂는 순간,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 픽! 피스스...
"어라? 고장났나..."
트리에 두른 조명이, 힘없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져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창고에 놔둬서일까요, 어떡하죠..."
"으에, 그럼 트리 못 써? 어쩌지, 셋쨩?"
[퓨이이...]
소녀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선생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쇼핑이라도 하고 올까? 잡화점에 가면 조명도 있을 거고, 그 외에 쓸만한 소품들도 살 수 있으니까."
"어, 진짜? 그럼 갈래!"
기운을 차린 소녀의 머리를 선생이 쓰다듬어준 후, 두 사람은 나갈 채비를 하였다. 대충 걸어뒀던 외투를 입은 후, 선생은 벙어리 장갑을 낀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럼 여보, 다녀올게. 무리하지 말고!"
"셋쨩, 엄마 잘 지켜줘야 해?"
[퓨퓨!]
"다녀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하나코는 두 사람을 손흔들어 배웅했다.
눈이 쌓인 D.U.의 길거리는 제법 소란스러웠다. 적녹의 조명을 켠 가게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고, 중앙 광장에는 커다란 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천천히 걸어라, 그러다 넘어진다?"
잡화점에서 산 조명과 소품을 들고가는 소녀 역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취해 눈밭 위를 총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소녀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 땡땡땡! 땡땡~!
"응? 뭐지, 종소리?"
귓가에 맑고 가볍게 울리는 종소리. 소녀는 그것에 이끌려 광장 쪽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가세요~!"
"수익금은 키보토스의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인답니다~!"
소녀가 도착한 곳에는, 두꺼운 붉은빛 털옷을 입은 여인들이 핸드벨을 울리며 가판대에서 케이크를 팔고 있었다. 한쪽에 동전을 넣을 수 있는 냄비도 있는 걸로 보아, 연말맞이 자선 행사인듯했다.
"케이크... 맛있겠다아..."
"욘석, 뛰지 말라니까! 헉헉, 어휴..."
케이크 가판대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녀의 뒤에서, 그녀를 쫓아온 선생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겨우 진정한 선생은, 그제서야 눈앞의 여인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어라, 이 모습은... 선생님?"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그간 불편한 데는 없으셨나요?"
"아! 세리나, 하나에! 만나서 반갑구나."
트리니티의 졸업생이자 구호기사단의 담당고문인 세리나와 하나에는, 샬레의 선생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다들 추운데 열심이네. 자선 행사니?"
"네! 올해는 평소와 다르게 케이크를 팔게 됐거든요. 후배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저희들도 직접 나서기로 했답니다?"
"이 케이크, 전부 후배들과 함께 포장한 거예요! 하나 사가시면 어때요?"
통나무를 본따 만든 초콜릿 케이크는, 가판대 위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위에 뿌린 슈가파우더가 조명빛을 반사해서 더욱 그랬다.
"아빠, 이거 하나 사가자! 엄마도 좋아할 거야!"
"그럴까? 세리나, 케이크 하나 부탁할게."
"네~, 금방 꺼내드릴게요?"
새하얀 케이크 박스를 꺼내온 세리나는, 그것을 선생에게 건네주었다. 잠깐 겹친 손끝에서, 온기가 전해져 가슴까지 닿았다.
"앗..."
"응? 세리나,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혹시 양초도 필요하실까요?"
"그럼 긴 걸로 한 개 부탁해."
"네, 금방 꺼내드릴게요!"
황급히 얼굴을 가린 채 가판대 뒤로 뛰어가는 세리나. 그 모습이 소녀의 눈에는 이상하게만 보였다.
"저기저기, 저 이모는 왜 저래? 어디 아파?"
"아, 그거요...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샬레의 선생님은 죄많은 남자거든요."
"어? 우리 아빠 나쁜 사람이야?"
하나에는 최대한 돌려말했지만, 당연하게도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세리나는 양초를 꺼내 포장하였다.
"양초랑 성냥, 그리고 케이크 나이프까지 넣어드렸어요. 맛있게 드세요, 선생님."
"고마워, 세리나. 너도 즐거운 크리스..."
그리고, 선생과 세리나가 작별인사를 하려는 찰나.
- 쩌엉!
"우왓! 깜짝아!"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이건, 자선 냄비 쪽 같은데요?"
"누가 이런 장난을..."
천둥이 친듯 커다란 굉음이 들려,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자선 냄비 앞에서는, 스케반 두 명이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하하하! 거봐, 웃기는 소리가 날 거라니까!"
"진짜네! 아예 한 탄창 갈겨볼까?"
"잠깐, 거기 두 분!"
총기를 든 스케반을 말린 것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세리나였다. 아무리 관대한 그녀여도, 구호의 의지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왜 이런 장난을 치시는 거죠? 이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냄비라고요!"
"자꾸 행패를 부리시면 공안국을 부를 거예요!"
세리나와 하나에의 노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스케반은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총구를 그녀들에게 향하며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
"행패? 야, 장난하냐? 불우이웃에 우리같은 사람들은 없나보지?"
"우리도 제대로 된 소속 없이 떠돌이 생활하는 게 좋아보여? 너네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야?"
"그건...!"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지만, 당장 그녀들을 자극할 수는 없었다. 만약 저들이 날뛴다면, 후배들과 함께 준비한 케이크가 전부 못 쓰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냄비로 라면 끓여먹든 어쩌든 우리 마음이다 이거지. 그 정도 대우는 받아야지, 안 그래?"
"꼬우면 어디 공안국 불러봐, 무슨 짓을 할지 보여줄...!"
"호오, 그거 궁금하군요. 무슨 짓을 할 생각이죠?"
잔뜩 독기가 오른 스케반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 목소리..."
"... 미네 선배?"
다정하면서도 냉정한 그 목소리, 세리나와 하나에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아앙? 넌 또 뭐야!"
"이거 진짜 본때를 보여ㅈ... 어?"
스케반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하늘빛 날개의 여인은 두 사람의 머리통을 잡아 들어올렸다. 맹수같은 그녀의 눈은, 스케반들을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았다.
"확신했습니다. 여러분께는 '구호'가 필요하겠군요."
"구호...? 근데 왜 손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가는 거야...?"
"에이, 아니지...?"
미네는 대답 대신 세리나와 하나에에게 곁눈질했다. 미리 준비하라는 신호임을 잘 알았기에, 두 사람은 각자의 구호물품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봐, 우리 대화로 풀지 않을래? 우리가 전부 잘못했으니까..."
"그래, 그니까 이거 좀 놓고 얘기하지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 사람은, 그대로 광장 반대편까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와... 아빠, 저거 부메랑이야?"
"아니, 부메랑은 돌아오잖아. 저건 못 돌아와... 여러 의미로."
선생과 그의 딸은, 그 초현실적인 광경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 아파... 아프다고..."
"팔이... 다리가아..."
스케반들이 날아가버린 곳에 선생이 도착했을 땐, 두 사람은 이미 온몸에 붕대를 감은 후였다.
"환자분, 자꾸 말하고 그러면 상처가 덧난다고요? 응급처치는 끝났으니까,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아니면 지금 바로 환부를 제거하는 방법도 있어요! 잠시만요~!"
"으, 으아아! 우리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 줘!!"
위이잉, 하나에의 전기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자 환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세리나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누르고서야 비로소 체인이 멈췄다.
"좀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살았어, 미네. 고마워."
"별거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이니까요."
미네는 정말 별일 아니라는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녀에게 구호 행위는 쓰레기를 줍듯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후배들 응원인 거야?"
"반은 맞습니다. 혹여 후배들에게 폐를 끼치는 구호 대상자가 있을까봐, 자선 행사 장소들을 방문하며 근처를 순찰 중이었죠."
마지막으로 온 곳이 여기였는데 하필 이런 일이 터졌군요, 라고 미네는 덧붙였다.
"여전히 미네는 마음이 따뜻하구나,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된다?"
"엣, 잠깐..."
습관처럼 미네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 때문에, 미네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원숙미가 느껴지는 트렌치 코트의 여인이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은,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 아빠는 죄많은 남자."
그 모습을 보며, 소녀가 하나에의 말을 되뇌이고 있을 때.
"진짜 어른들은 모르겠... 응?"
"조심, 조심...!"
소녀는 보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보이는 아이가, 케이크 두 개를 들고 조용히 가려는 걸.
"아! 아빠, 저기!"
"응? 어, 이봐 잠깐!"
"으으, 젠장!"
소녀와 선생에게 걸린 아이는, 그대로 케이크 박스를 들고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대로 인파 속에 숨는다면, 잡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미네, 잠깐 따라와 줘!"
"네, 네!? 선생님, 갑자기 무슨..."
"미안,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세리나랑 하나에는 우리 딸을 잘 부탁해!"
선생은 무작정 미네의 손목을 잡은 채 아이가 도망친 방향으로 달렸다. 미네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분명 숨이 차서는 아니었다.
"서,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결혼까지 하신 분이 이러시는 건..."
"아, 저깄다! 미네, 반대쪽 골목에서 대기해 줘! 양쪽에서 잡아야 해!"
"네? 아, 네넵. 저 아이 말인가요?"
선생의 작전을 듣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미네는, 우월한 신체능력으로 순식간에 골목을 빙 돌아갔다. 물론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만...
"하아, 하아...! 됐어, 이제 여기서..."
"꼬마야, 잠깐만!"
케이크를 들고 어느 담장에 기댄 채 숨을 고르던 아이에게, 선생이 조심히 다가갔다. 당연히 아이는 다시 도망치려고 했지만...
"칫! 순순히 잡힐 것 같...!"
"네, 그럴 것 같습니다만."
"아..."
반대편에는 이미 미네가 대기하고 있던 상황. 도망칠 곳은 없었다.
"변상하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돌려주셨으면 좋겠군요."
"내, 내가 왜! 여기서 전부 먹어치워버릴 거야!"
너무 어린 아이라서 차마 미네도 '구호'까진 못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계속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던 중,
"어라? 잠깐, 너 다른 케이크는 어쨌니? 분명 두 개 아니었어?"
"뭣, 그건..."
선생은 위화감을 눈치챘다. 아이가 들고 있는 케이크는 하나 뿐이었던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요, 선생님?"
"응, 아까 봤거든. 설마..."
선생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언젠가 만화에서 본듯한 내용을.
"그, 그건 내가 이미 먹었어! 그럼 문제없지?"
"아까까지 뛰어다닌 건 까먹었니?"
"진짜 그랬다면 진즉에 먹은 걸 전부 게워냈겠죠. 또래보다 심폐지구력은 뛰어나지만, 소화기관은 그렇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치이...!"
그리고 아이의 반응을 보니, 아마 정답인 모양이었다.
"꼬마야, 협박하긴 싫지만... 아저씨는 전화 한 통이면 발키리 공안국장과 연결할 수 있어. 이 근처를 수색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러니 알려줄래? 누구한테 케이크를 넘겨줬는지."
"... 따라와."
못마땅하다는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아이는 어딘가로 안내했다.
아이를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그중에 담장이 낮은 낡은 주택이 있었다. 아이는 익숙한듯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언니! 어서 와!"
"케이크 맛있어! 언니도 빨리 먹어!"
"뒤에 있는 분들은 누구야?"
주택 안에는 선생의 딸과 비슷한 또래인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 네 명 정도.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야. 누가 착한 아이인지 확인하러 왔지!"
"... 선생님?"
선생의 애드리브에 놀란 미네는 눈을 크게 뜬 채 선생을 봤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그들과 어울렸다.
"우와, 진짜? 근데 산타처럼 안 생겼어!"
"하하, 당연하지! 벌써부터 빨간 옷 입고 돌아다니면 금방 들킬걸?"
"우리한텐 들켜도 돼?"
"그럼, 착한 아이들인데! 그것보다..."
선생은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거실로 들어왔다. 그곳에는, 역시나 뭉개진 케이크가 있었다.
"이런! 누가 케이크를 이렇게 망가뜨려놨니? 아주 혼나야겠는걸?"
"그, 그치만! 이건 언니가 던져준 거란 말야!"
"맞아! 케이크를 사왔는데 빨리 받으랬어. 그치, 언니?"
"... 나한테 묻지 마."
그 아이는 애써 동생들의 눈을 피했다. 그제서야 미네도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자, 그럼 얘들아? 오늘은 특별히 이 산타가 직접 선물을 골라주마! 같이 백화점으로 가볼까?"
"와아, 산타 최고!"
"있지, 난 새로 나온 장난감 갖고 싶어!"
선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모모톡을 보내고 있었다.
- 모모톡!
"응? 이건..."
[숙제야, 그 아이 상담 좀 해주렴.]
모모톡을 읽은 미네가 무어라 말하려 했을 때, 선생은 이미 아이들과 함께 골목을 빠져나간 뒤였다.
"... 애들이 케이크가 먹고 싶댔어."
거실에 단 둘이 남게 되자, 그제서야 아이는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생활비를 벌어오거든. 근데 그게 한 달 버티기도 빠듯해서..."
아이는 변명했지만, 미네는 차가운 눈으로 그저 아이를 응시할 뿐이었다.
"발키리에 넘길 거면 마음대로 해. 나도 나쁜 짓을 한 것쯤은 아니까. 그래도..."
"죄송합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 뭐라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 미네의 모습에, 아이는 심히 당황한듯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사과는 왜..."
"구호가 필요한 곳에 구호를, 우리 구호기사단의 모토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께는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모양이군요."
미네의 표정에선 깊은 비탄이 느껴졌다. 무뚝뚝한 척하지만, 사실은 그녀 역시 여린 내면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걸 받아주시죠."
"이게 뭔데?"
"제 명함입니다. 거기 적힌 번호로 연락하시면, 후배들이 이곳에 구호 활동을 위해 와줄 거예요."
명함을 받아든 아이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난 듯 눈가가 떨렸다.
"이런 동정은 필요없어! 어차피 필요할 땐 오지도 않았으면서!"
"동정이 아닙니다. 이건 그저 제 신념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뿐... 선택은 당신 몫이에요."
아이는 탁상을 손바닥으로 쾅 치며 일어섰지만, 미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 나름의 방법으로 선생의 '숙제'를 풀어갈 뿐이었다.
"후우... 알겠어. 이건 받아둘게. 보기 싫으니까 나가."
"감사합니다, 케이크 값은 제가 계산해두도록 하죠. 그럼..."
아이의 모진 말에도 미네는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한듯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마음에 안 들어... 바보같긴."
"그럼 안됐네요. 구호기사단엔 그런 바보들밖에 없거든요."
미네는 조용히 거실의 미닫이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다음에는요?"
모든 일이 끝난 후, 집에 들어온 선생은 하나코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해주었다. 선생은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애들 장난감 하나씩 사주고 돌려보냈지, 뭐. 그 아이가 무슨 선택을 할지는, 본인한테 달려있으니까."
"후훗, 물론 미네 씨는 다정하니까 그냥 무시하진 않겠지만요."
하나코는 케이크를 먹은 접시를 치우며 말했다. 선생도 상을 닦은 후, 기지개를 켰다.
"하기야 그렇지... 끄응, 너무 긴 하루였어. 애는 지금 자고 있나?"
"네, 좀전에 잠들었어요. 그러고보니 그 애 선물도 준비해야 하는데..."
"아, 그건 걱정 마. 아까 백화점에 갔을 때 하나 샀거든."
그렇게 말한 선생은 거실 한쪽에 놔둔 종이백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안에 든 것은 하니와 씨 무드등이었다.
"포장은 당신한테 부탁해도 될까? 난 영 손재주가 안 늘어서."
"그럼요. 어디 보자, 선물 포장지가..."
웅크려 앉아 TV 아래 서랍장을 뒤지는 하나코. 장난끼가 동한 선생은, 그 뒤로 다가가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에잇!"
"어머, 당신도 참... 이러면 방해된다고요?"
언제나처럼, 선생의 아파트에는 따뜻한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이상적인 가족이 으레 그렇듯이.
한편, 트리니티의 구호기사단 본부에는 잠들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후우... 이 안건은 처리했고, 다음은..."
- 똑똑똑. 똑똑.
"아, 들어와도 됩니다."
서류 더미에 집중하던 미네는, 노크 소리를 겨우 듣고 대답해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후배인 세리나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선배, 일도 좋지만 조금 쉬면서 하지 그래요?"
세리나는 케이크 한 조각이 든 접시를 미네의 책상에 놔주었다. 포크로 한 입 떠서 먹으니, 미네의 몸에는 부족했던 당분이 보충되었다.
"고맙습니다, 세리나. 덕분에 살겠네요."
"오후에 있던 일 때문에 그래요? 그건 딱히 선배 책임이 아니라고..."
선배를 달래주려던 세리나였지만, 미네는 손을 들어 거절했다.
"그만, 이 이야기는 이쯤 하죠. 전 그저 책무를 다할 뿐입니다. 그것보다..."
미네는 의자를 돌려 창가를 보았다. 트리니티에서는 크리스마스 맞이 불꽃놀이 축제가 한창이었다.
"세리나도 하나에랑 같이 축제 구경이라도 가보지 그래요? 저도 이 서류만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정말이죠? 그럼 이따 봐요, 선배."
세리나는 꾸벅 인사한 후 미네의 집무실을 나섰다. 형형색색의 조명은, 여전히 근심에 찬 미네의 얼굴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네의 귀에 들려온 것은 익숙한 알림음이었다.
- 모모톡!
"응? 이 시간에 누가... 아."
낯선 번호로 온 문자메시지. 그러나 그 발송인이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후후후."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고요히 집무실을 채웠다.
*****
네, 긴 토가시 행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생각날 때 한편씩 쓸 생각이라, 연재텀은 계속 길듯합니다... 미리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다른 소설 보기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