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DJ와의 답방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밤만 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폭탄이 제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폭탄 제조기술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2004년 9월, 경기도 일본투자기업유치단과 나카무라 큐조 사장을 비롯한 알박(ULVAC)사 임직원들은 투자협약식을 마치고 만찬을 시작했다. 사케와 맥주로 여흥이 무르익을 무렵 장난기가 발동했다. 폭탄주를 한 잔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온 도지사의 입에서 나온 ‘폭탄 제조기술’이란 말에 장내는 잠시 무슨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몇 초 후 일본 참석자들은 내가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만드는 폭탄주 기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긴장이 풀린 듯 ‘와하하’ 웃음보를 터뜨렸다. 직접 제조한 폭탄주를 알박사 임직원들에게 한 잔씩 권했다. 서로 폭탄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참가자들은 어느새 오랜 지기처럼 친해졌다.
외국첨단기업유치를 위해 여러 기업과 경영자들을 만나다 보면 유난히 친근감이 느껴지고 배포도 맞는 기업과 경영자가 있다. 십년지기 같은 델파이의 바텐버그 Battenberg 회장, 멋쟁이 신사인 니폰케미콘의 도끼와 회장이나 미쿠니색소의 할머니 회장 구로다상 같은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알박사 나카무라 큐조 사장은 특히 그랬다.
알박 계열사인 부품제조업체 알박동북사와 반도체제조장비 부문 계열사인 VMC사의 경기도 투자 협약서를 체결하러 가나카와 현 치가사키시의 회사를 방문했을 때 알박사는 명성과 달리 평범하면서도 검소한 분위기였다. 원래 나카무라 큐조 사장은 다른 일정상 그 자리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협약식 직전에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누가 보더라도 공장 현업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예의상 작업복 차림으로 참석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뜨려 했다. 나는 오히려 사장이 작업복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작업복이면 어떻습니까? 그대로 행사에 참석하셔도 좋고 불편하시면 옷을 갈아입고 오실 때까지 우리가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함께 자리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권유했다. 결국 그는 정장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타났다.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생산시설을 둘러본 후 만찬장으로 향했다. 원래 만찬은 우리가 대접하기로 했는데 만찬장에 도착해서 사장이 간부들을 불러 귓속말로 수군대더니 “오늘은 저희 동네에 오셨으니 저희가 대접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이거야말로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고 기뻐서 무릅을 쳤다. 고객한테 얻어먹고 대접받으며 물건 파는 것 이상 이문이 남는 장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일본 술(정종)이 몇 순배 돌아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내 몸속에 은근히 장난기가 발동하여 기왕 대접받는 김에 폭탄주 대접까지 받을 요량으로 농담을 던졌던 것이다. 그날 폭탄주를 처음 먹어본다는 나까무라 사장은 술이 약하다고 하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마시며 기분 좋아라고 했다. 이러는 동안 우리는 서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만찬장에서 폭탄주 제조의 호기를 부린 것도 어찌 보면 서로의 거리낌 없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나는 끝날 무렵 나까무라 사장에게 ‘다음에는 내가 한국에서 꼭 답례를 하겠다.’ 고 약속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호적인 분위기는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효과를 발휘했다. 알박 계열사 가운데 한국에 아직 투자가 없던 알박크라이오가 투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폭탄주 효과가 톡톡히 나타났다고할까.
이번에는 약속한 대로 내가 대접할 차례가 되었다. 공관에서 만찬을 열었다. 알박크라이오의 모리모토 사장, 알박크라이오에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 헬릭스 Helixs사의 제임스 부사장, 그리고 나카무라 사장 등이 경기도청에서 투자 협약식을 치르고 곧바로 공관으로 향했다. 대부분 전에 만난 사이라 분위기는 더욱 부드럽고 화기애애했다.
“알박크라이오사는 그동안 크라이오 펌프 기술을 해외로 가져간 적이 없습니다. 이번 경기도 평택 공장이 알박크라이오의 첫 번째 해외생산 거점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모리모토 사장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알박사의 LCD Glass 박막 씌움 장비, 부품, 표면처리, 진공펌프를 제조하는 4개사를 모두 유치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알박사는 실로 대단한 회사다. 2차대전 후 미국의 진공 트랜지스터 개발에 자극을 받은 마쯔시다를 비롯한 일본의 저명한 기업인 6명이 각각 100만 엔씩 모아 1952년에 설립한 벤처 회사가 바로 알박사다. 탄생 배경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 회사가 현재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진공장비 회사로 발전했고 생산하는 장비 한 대가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를 정도다.
나카무라 사장은 일본 동북대 교수 출신으로 금속재료공학과 관련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학자 겸 엔지니어로 처음엔 알박사의 연구소장으로 초빙되어 일했다. 그런데 전임 회장이 세상을 떠날 때 “나카무라를 사장으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회사에서 경력도 짧고 직위도 높지 않은 사람이 바로 사장으로 추대된 셈이다.
내가 본 나카무라 사장은 충분히 그런 능력과 자격이 있어보였다. 작업복을 입고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만찬을 자신들이 내겠다고 즉석에서 결정하고, 더 나아가 알박클라이오의 추가 투자를 결정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주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현대 기업 CEO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의 순진무구하고 해맑은 얼굴과 표정에서 회사 운영의 투명성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알박은 내가 그동안 유치한 해외 첨단기업 중 가장 인상에 남는 회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05년 10월경, 나는 일본 가나가와 현 마쯔자와 시게후미 지사의 초청을 받아 만찬에 참석할 때 알박의 나카무라 사장을 함께 초청해 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나카무라 사장의 위신을 올려주자는 심산이었다. 다행히 나의 뜻이 받아들여져 나카무라 사장도 만찬에 참석했다. 마쯔자와 지사에게 나카무라 사장을 각별한 관계의 좋은 친구 사이라고 소개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카무라 사장과 나의 신뢰는 친구 이상의 가족처럼 더욱 깊어졌다.
2006년 5월 29일 경기도지사로서 투자유치를 위한 마지막 일본 출장을 갔을 때 나카무라 사장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왔다. 점심 한 끼라도 대접해야겠다며 자신의 일정을 포기하고 달려왔던 것이다. 나카무라 사장의 행동에서 나는 우정어린 친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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