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시대의 지방재정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가장 변화를 많이 겪는 것이 행정과 재정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중앙과 지방의 수직적관계 일변도였던 구조가 이에 더하여 지방자치단체간의 수평적 관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 간의 관계로까지 다원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화한다는 것인가?
우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직적 관계에도 궤도 수정이 있게 된다. 의사결정방식이 지금까지의 상위자치단체의 하향적 행정과정에서 자치기구를 통한 상향적 정치과정에 의존하는 범위로 확대되는 변화를 겪게 된다. 지시에 따른 업무의 처리가 아니라 필요한 재원 및 행정사항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건의나 요구가 많아지게 되고, 중앙은 이를 조정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당해 지역주민 간의 관계도 이런 변화를 겪게 된다. 지금까지 행정 및 재정에 대한 주민의 의사반영방식은 민원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그리고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의사반영기구가 형성되었다. 바로 지방의회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업무가 의회의 감시를 받게 되고, 지역주민의 의견도 수시로 의회를 통해 반영된다. 더구나 이렇게 반영된 의사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구속력을 갖게 된다. 문자 그대로 민의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지방자치 실시와 더불어 자치단체간의 수평적 관계가 보다 다양화되는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모든 지방자치단체는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재원을 확대하고, 행정서비스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있는 부분에서의 갈등을 유발한다. 자원배분을 둘러싼 재정적 할거주의와 지역간 조세회피 현상 등이 발생하고, 재정활동의 지역간 불균등이 확대할 소지도 있다. 경기도와 서울만 따져 보아도 상수원 보호를 위한 재원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갈등이 표출되고 있으며, 쓰레기 처리장의 입지를 두고도 이미 분쟁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능력과 재정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특별히 재정과 관련해 지방자치제가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지방재정에 대한 자치기구의 독자적인 의사결정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종래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통제 조정방식이 재정권을 중심으로 행정지도 및 자문, 자치단체간 갈등조정 등 간접적 조정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자치체의 자체 판단에 의한 수입과 지출결정 비율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때로는 지방자치단체간의 불균형을 낳게 된다. 그래서 공공서비스의 공급수준 및 질에 대한 주민의 평균적 욕구와 지방자치단체의 능력 사이에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도시화로 인한 주민의 생활상의 기대수준이 다양하고 높은 경기도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특히 높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기회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중앙정부에 의한 균등발전논리와 무관하게 지방정부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지역의 양적 질적 발전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주민들에 의한 '발로 하는 투표(voting by foot)'를 통해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국가 전체적으로 창의와 자발성이 강조되는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
둘째는 재정수요의 폭발적인 증가이다. 특히 지방자치제 초기에 지역주민의 억눌렸던 욕구가 분출됨에 따라 한정되어 지방재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재정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더구나 우리처럼 경제위기까지 겹쳤을 경우에 발생할 수요란 쉽게 짐작하기 곤란하다. 이것은 자치기구로 하여금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새로운 재원을 발굴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이 자치기구 혹은 자치단체장의 능력을 검증하는 잣대가 된다. 우리가 국제감각과 경영마인드를 가진 단체장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경기도의 재정현황
경기도의 재정구조는 두 가지 형태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하나는 도 본청 단위의 재정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도 본청과 각 시군을 포함한 재정구조이다.
도 본청을 단위로 한 경기도의 재정규모는 1997년 예산 기준으로 3조 7,282억 원으로서(일반회계+특별회계),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도 본청과 시군을 포함한 단위로 하면, 1997년 예산 기준 11조 3,346억 원에 달한다. 이와 같은 규모는 1992년 도 본청 기준으로 17조 5,000억 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불과 5년 사이에 무려 두 배 이상 증가한 규모로서, 그만큼 경기도의 재정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재정자립도는 1992년 84.8%에서 1997년에는 78.7%로 하락하고 있어 지방세 및 세외수입 등 자체재원에 의한 수입이 재정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도 단위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높고, 특별시 및 광역시를 포함해도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경기도의 발전을 위한 기반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임을 말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 함정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는 지역주민을 고려한 1인당 재정지출비를 계산해 보면, 1995년 기준으로 80만 6,000원으로 도 단위 지방자치단체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재정자립도가 높은 이유가 주민에 대한 지출이 적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재정지출에 대한 욕구가 커질 여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고 그에 따라 자립도는 급격히 낮아질 가능성도 높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도 전체의 자립도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각 시군별 자립도는 편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경기도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과천은 95.1%이지만, 양평군은 19.3%에 불과하다. 전체 평균으로 따져 보아도 시평균이 76.5%인데 반해 군평균은 39.5%에 불과해 군의 재정자립도는 시의 재정자립도의 거의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연천, 가평, 양평, 동두천, 여주 등 북부지역 및 동부지역의 재정자립도는 30% 내외에 불과한 실정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지역들이 상수원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각종 토지이용규제로 인해 발전을 제약받고 있다는 점으로서, 행정적 규제에 의해 발전이 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재정지원의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다.
재정수입의 측면에서 경기도의 재정구조를 분석하면, 지방세수입과 세외수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지방교부세, 국고보조금, 지방양여금 등 중앙정부로부터의 지원 비중은 현저히 작아 도 단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경기도의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으로 반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경기도 세수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한 측면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세입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지방세의 구조를 살펴보자. 도의 경우, 1995년 일반회계 예산 중에서 지방세 수입의 88.6%가 취득세와 등록세에 편중되어 있다. 이들 세목은 건설경기나 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부문으로서, 경기의 변동에 따라 세입규모가 매우 불안정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 세목은 전부 재산의 거래세로서, 재산의 보유과세율을 상승시키고, 거래세율을 낮추어야 한다는 세제개편 여론에 따라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지자체의 세입구조가 이들 세금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군의 지방세 수입구조를 살펴보면, 담배소비세, 자동차세, 종합토지세 등이 주요 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재산세, 농지세 등도 시군의 지방세원의 한 구성 부분이다. 이러한 시군의 지방세원의 특징은 재산의 보유세목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경기변동에 따른 지가하락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시군의 지방세 수입도 극도로 불안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으로 보유세를 높이고,거래세를 낮출 경우에는 시군의 지방세수는 증가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방세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현재의 중앙세와 지방세의 분류는 중앙집권적 구도하에서 이루어졌다.즉 중앙집권체제하에서 지방정부에 대한 재원보장 차원에서 조세구조의 장기적 구도와는 무관하게 재산관련세목들을 지방세에 편입시키고, 소득세, 소비세의 세목들은 중앙정부의 세목으로 편입시켜 놓았다. 그 결과 경기의 변동에 따라 지방세의 세입이 심하게 변동하고, 과세방식의 변동에 따라 도와 시군 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말았으며, 지방세 수입의 증대를 통한 지방재정의 확층이 원천적으로 곤란한 구조로 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세입측면에서 본 지방재정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다.
세외수입 측면에서 경기도의 재정구조를 살펴보면, 1993년도의 경우 경기도가 추진한 경영수익사업의 종류 및 대상사업을 보면 공유재산의 생산적 이용이 196건으로 전체의 33.9%, 토지개발이용사업이 118건, 20.4%, 건설자재 생산공급이 16.3%, 관광 유원지개발운영이 14.9% 및 농림수산소득증대사업이 14.5%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총수입액으로 살펴보면, 토지개발이용사업이 5,597억 원으로 전체의 70.2%를 차지하고 건설자재의 생산공급이 1,376억 원으로 17.2%를 차지하는 등 총수입액의 87.4%가 부동산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어 안정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이다.
각 시군별로 살펴보면, 1994년도의 경우에 경기도의 자치단체별 사업건수는 평균 2.3건(36시군), 사업당 수익액은 3억 7,900만 원으로 규모가 매우 영세한 실정이다. 더구나 직영기업위주의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어 공사 공단 등의 간접경영방식은 의료원을 제외하고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민관합동 경영사업도 활성화되어 있지 못해, 사업구조의 다변화가 매우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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