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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단편문학] 해협(海俠)

ㅇㅇ(49.174) 2023.06.07 21:51:46
조회 1828 추천 62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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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입니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어둠 속에서 어른거리는 거한의 뒷모습에만 의지해 한참을 따라 걸어간 A씨는 마침내 거한이 발걸음을 멈춘 문 앞에 섰다.



다시금 솟구친 두려움과 생소함 때문일까, 음침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녹슨 철문을 마주한 A씨는 선뜻 문의 손잡이로 손이 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물끄러미 A씨를 바라보고 있던 거한은 그런 모습이 익숙하다라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A씨를 대신하여 손잡이를 잡고 열어주자 육중한 미닫이 철문이 신경을 긁는 듯한 불안정한 금속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는 안내하듯 A씨에게 정중한 모양새로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해보이자 A씨는 불안한 시선으로 거한과 내부를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다잡으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방의 내부는 넓직했고 중앙의 접이식 의자 두 개, 그리고 옛날 유선 전화기 한 대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가구나 혹은 다른 물건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중앙의 한 접이식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사내가 홀로 있었고 그의 앞에는 아마도 A씨를 위해 마련된 다른 접이식 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이곳 또한 이 폐건물의 여느 공간마냥 폐허가 가져다 주는 특유의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다만 천장의 창문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는 햇빛을 통해 A씨는 저도 모르게 두려움으로 들끓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으며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이 이완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김XX씨, 맞소?"



"아, 네넷!"



사내의 돌연스러운 질문에 A씨는 놀라 엉겹결에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해보였고 천장에서 내리쬐는 햇빛 때문인지 그가 걸친 빛바랜 칙칙한 바바리 코트에서 먼지가 털어져 나와 그의 주변에서 나풀거리는 것이 선명했다.


사내는 흡사 어느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탐정의 옷차림이었다. 낡고 검디 검은 중절모에 이전에는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르겠을만큼 색이 바랠대로 바래버린 바바리 코트, 그리고 가뜩이나 이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구태여 선글라스를 착용한데다 또한 얼굴도 검은 마스크로 가린 모습이었다. 물론, 아무래도 사내의 신분이 신분인만큼 그 특이한 옷차림은 철저한 보안유지를 위한 것임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는 있었으나 그래도 그 얼굴을 모르는 상대와 마주하게 되니 A씨는 자연스레 다시금 긴장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소?"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목소리가 웅얼거릴 법도 했으나 의외로 사내의 중저음 톤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분명 무뚝뚝하고도 사무적인 어조의 음색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 속에는 어딘가 청아함을 머금기도 한 듯한 기묘한 목소리였다. 그 때문일까, 이 사내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부질없는 짓이다. 이 사내의 나이를 알아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어차피 이 사내와의 볼 일은 이와 무관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예.... 맞습니다."



사내의 말대로였다.



더이상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기가 어려웠고 지쳤기에 그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사내를 찾게 된 것이었으니까.



"좋소."



그러고는 사내는 품에서 웬 종이를 꺼내들더니 A씨에게 건넸다. 받아든 종이에는 A씨에게 제시되는 옵션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옵션 A : 궁형'

'옵션 B : 거열형'

'옵션 C : 화형'

'옵션 D : 팽형'

'옵션 E : 사지절단'

.....

....

...

..


흡사 고대 중국의 온갖 형벌들을 그대로 가져와 적어놓은 듯한 끔찍한 옵션들을 보며 A씨는 말문이 막혔다. 물론, 처음에 소개 받을 때부터 그 잔혹성에 대해서는 중개인이 사전에 언질을 주긴 하였으나 일의 결과만큼은 확실하며 뒷탈없이 깔끔히 해낸다는 자들이라고 하였기에 이렇게 발걸음을 하게 되었건만, 그 잔혹함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왜,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시오? 선생의 따님이 평생 안고 가야할 육신과 마음의 상흔의 대가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약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머뭇거리는 A씨를 보며 사내가 의아하다는 듯 묻자 A씨는 읽던 종이를 내려놓고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사내의 말대로였다.



복무하던 군 부대에서 상급자이자 선배라는 이유로 자신의 몸을 범하는 그 음란하고도 더러운 손길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홀로 감내해야 했을 딸의 지난 고통과 오욕의 세월들이 면면이 떠올랐다.



딸은 그 수치를 이기지 못하고 손목을 긋는 것으로 이미 더럽혀져 도저히 씻어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끝내려 하였고 다행히 동료 장교의 늦지 않은 발견 덕분에 천운이 뒤따라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으나 손목에 파고든 칼날의 상처보다 더 깊었던 것은 마음의 상처였을 것이고 딸은 남은 평생을 그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딸을 둔 아버지로서 A씨는 자신의 힘이 닿는 선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려고 했다. 자신의 딸을 성추행한 피의자 B 대위를 고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언론에도 투고하여 사회적인 이슈로 만드는 한편, 청와대의 신문고에도 읍소하다시피 하여 B 대위의 처벌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러한 A씨의 피끓는 기나긴 투쟁의 덕분일까, B 대위는 머잖아 군복을 벗게 되었으나 그 뿐이었다.



A씨가 원하던 징역살이는 커녕 무슨 이유에서인지 B 대위는 별도의 형벌도 없이 소리 소문없이 불명예 제대로만 자신의 죄값을 치루었고 한때 들끓던 사회의 여론도 늘 그래왔듯 어느새 잠잠해지고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져 결국에는 A씨 홀로 남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된 기자를 통해 들은 바로는 B 대위는 알고 보니 어느 모 소장의 조카가 되기에 그 뒷배경을 통해 처벌을 겨우 면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보이던 딸이 나약해보이는 유리 몸으로 어느 한 곳 다치는 일 없이 그 힘든 사관후보생 교육을 별탈 없이 수료하고 그토록 자신이 염원하던 군의 장교가 되었다며 수여받은 견장의 다이아를 자랑스러워 하던 딸의 모습이 눈에 선명했던 A씨로서는 B 대위가 오늘도 두 다리 쭉뻗고 잠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뿐이었다.



아무리 홀로 분통을 터뜨리고 한탄하여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딸은 오늘도 병원에서 상처입은 육신과 정신을 홀로 어루만지며 눈물로 밤을 지새울 것이었고 B 대위는 새로이 얻은 직장에서 자신이 군 시절 벌인 온갖 추행에 대해서는 내색한번 없이 마치 지극히 정상인인 것마냥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오늘도 별다른 근심이나 걱정없이 저녁을 즐길 것이었다.



그렇게 병실에서 늘 생기없는 눈으로 멍하니 창문으로 먼 산만 바라보는 딸을 도저히 좌시할 수 없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A씨에게 어느 날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자신과 같이 군에서 피해나 사고를 당한 부모들로부터 청부업자를 소개 받게 된 것이 그 발단이었다. 피해자 부모들의 사례는 다양했다. A씨처럼 자녀가 장교인 경우도 있었고 혹은 부사관이나 일반 병사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먼저 찾아간 것이 아닌,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아 청부제안을 받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B 대위를 당장이라도 손수 요절을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A씨였지만 청부업자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나서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또한 명백한 위법이 아니던가. 그러나 딸의 옆에서 매일같이 눈물 짓는 아내와 예전의 명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로 시체처럼 누워있는 딸을 보노라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하였고 무엇보다 실제로 청부업자에게 의뢰하여 효과를 보았다라는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피해자 부모들의 조심스럽고도 은밀한 증언에 힘입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늘 비로소 이 청부업자, 이 사내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무엇으로 하시겠소?"



잠시 회상에 잠긴 A씨를 사내가 일깨우듯 물었다.


아, 그렇지. 나는 아직 옵션을 고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이걸 골라도 되는 걸까? 이걸 고르는 순간 난 청부살인을 의뢰한, B 대위 그 놈과 똑같은 범법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감옥에 간다면 아내와 딸아이는? 앞으로 내 인생은? 앞으로 어찌되는 걸까. 하지만, 다른 의뢰인들이 증언한 것처럼 정말 뒷탈이 없다라면, 이걸 통해 아내와 우리 XX의 한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을 풀고 싶다.



"물론, 고르기 쉽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오. 나는 선생과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선 수많은 부모들과 마주하였소. 개중에는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후과가 두려워 돌아간 이들도 있었소. 정 내키지 않는다면 이대로 돌아가도 좋소. 어디까지나 선택은 선생의 것이니 말이오."



사내는 A씨의 혼란스러운 속내를 이미 짐작하였다라는 듯 덤덤한 어조로 첨언하였고 A씨는 그 말에 복잡한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정말... 뒷탈은 없는 것이겠지요?"



A씨의 물음에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도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의뢰인들로부터 들었습니다만, 정말 청부의 대가가 금전이 아닌 다른 것인게 맞습니까..?"



"그렇소. 어차피 직접 청부일을 할 살수(殺手)들에게 있어서 돈이란 것은 가치없고 무의미한 것이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소. 게다가, 어차피 선생은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형편도 안되는 것으로 아오만은?"



사내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차갑고도 날카로운 질문에 A씨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새삼 다시금 자각하게 된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지기도 한 것이었다.



"네... 맞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으니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딸아이의 한도 못풀어주는 못난 아비로 사는 것일거고요.."




그러자 사내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A씨의 자조어린 쓴웃음에 내심 미안함을 느끼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사내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고 있는 A씨를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나약한 감상이 현실을 이겨내는 데에 도움을 주진 않소. 그럴 시간에 선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 말에 A씨는 고개를 수그린채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애당초 구석에 몰릴 대로 몰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이 사내를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온 가족이 매일을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야만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 뒤의 일이야 나중에 A씨 홀로 감당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뒤에 무엇이 기다리든 담담히 받아내리라.



".....하겠습니다. 옵션은 A, 궁형으로 하겠습니다. 우리 딸아이, 우리 XX를 더럽히고 망가뜨린 그 원흉의 싹을 찾아내어 도려내고 없애고 싶습니다...!"



분노어린 A씨의 노성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앉은 의자의 아래에 놓여 있는 유선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요즘도 저런 전화기를 쓰는 곳이 있었단 말인가. 아아, 아마도 보안유지를 위함일 것이다. A씨는 이해가 간다라는 듯이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M, 의뢰인의 청부다. 옵션은 A, 대상자의 신상정보는 곧 보내주마."



그러자 사내의 말에 M이라고 불린 청부업자가 어찌나 크게 소리내어 웃었는지 수화기 너머로 킬킬거리며 웃음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에서 그 청부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과 기대가 느껴진다라고 하면 A씨의 착각인걸까. 그러나 그 웃음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갖게 된 첫 인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은 내일 즉시 시행할 것이오. 그리고 그 증거사진 또한 보내드리지. 또한 대가에 대해서 말해주자면, 대강 들어서 알고는 있겠지만 X월 X일, 이 날 집을 비우시오. 다른 곳에서 묵을 숙박비 정도는 내가 내어드리리다."



통화를 끝낸 사내가 말하자 A씨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자신의 집으로 와서 대관절 무엇을 하겠다는 걸까.



"그 날 하루만 비우면 되겠습니까..?"



"그렇소. 딱 하루면 되오. 그리고, 집의 화장실이 푸세식인거 맞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의뢰인들로부터 대강 귀띔 받았을 때도 믿지 않았던 A씨였다. 청부의 대가가 화장실이라니. 대체 무슨 놈의 대가가 그렇단 말인가? 그러나, 의뢰인들의 증언대로 사내는 과연 청부의 대가로 화장실을 운운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 맞습니다.. 근데, 대체 화장실을 가지고 무엇을 하시려고..."



"구체적인건 선생이 들어봤자 좋을 것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소. 그저 필요로 하는 것만 회수해서 갈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시오."



A씨의 물음에 사내는 딱 잘라 말하였고 A씨도 별 수없이 그만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나 물을 것이 있으면 하시오."



사내의 말에 A씨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물을 것이야 많고 많았다. 되려 너무 많아서 뭐하나 고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딱 하나 정말 궁금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사내와 청부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체였다. 대관절 이들은 누구이길래 이토록 잔혹한 방법으로 청부일을 하며 또 왜 하필이면 군대와 관련된 피해자들의 의뢰만 전문적으로 받는 것일까, 그것도 무보수에 가까운 조건으로. 수단은 잔혹하지만 어찌 되었건 아무래도 나름의 신념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자들임은 분명해 보였다.



"선생님과 그 청부업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막상 질문은 하였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통같은 보안유지를 원칙으로 하는 사내가 그 질문에 대해 순순히 답해줄리 만무했다. 역시나 우문이었나.



그러나 사내는 별다른 반응없이 A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선글라스 너머에서 이리 저리 A씨를 뜯어보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괜한 질문으로 사내의 화만 사는 것은 아닐까 싶어 사내의 눈치를 보던 A씨였으나 사내는 의외로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름과 정체를 밝힐 만큼 이 일이 떳떳하다고 생각하진 않소. 그러나, 한편으로는 필요한 일이라고도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오. 나는 물론이고 살수(殺手)들은 바깥세상에서는 선생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소. 어쩌면 우리는 사회에서 우리도 모르게 서로 마주친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 "



사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빛이 내리쬐고 있는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햇빛을 받아 사내의 선글라스의 렌즈가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과거 내가 한때 몸담았던 집단에서 저지른 과오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함이오. 그 집단에서 나는 주로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또한 그와 동시에 가해자이자 방관자이기도 했소. 내가 그 집단을 떠난 후, 나는 그 집단이 시간이 흐르며 자정작용을 통해 점차 나아지길 기대했었소. 더이상 나와 같은 이가 생겨나질 않기를 바랬던 것이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대였던 것 같소. 정공법만으로는 자정작용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지."



무덤덤하고 사무적이기만 하던 사내의 어조는 어느새 격앙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이 길이오. 비록 비합법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는 하나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정의이자 대의(大義)요. 다만 이 좆게이 새끼들, 아니, 이 살수들은 한때 가해자이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과거의 그릇되었던 삶을 참회하고 지금은 모두가 훌륭한 협객이 되었으니 그들은 이 대의을 행함에 있어 훌륭한 조아(爪牙)가 된 것이오. 물론, 선생의 말대로 이 협객들이 대의를 행하는 수단은 과거 잔혹함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들의 장기였기에 그 정도가 제법 잔혹하긴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의(小義)일 뿐이오. 무릇, 대의가 소의에 앞서는 법인만큼 그런건 아무래도 좋소."



말을 쏟아낸 사내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듣고 있는 A씨를 보고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할말은 다 하였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오. 허나, 언젠가는 선생도 내 뜻을 이해할 것이라 믿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 아니 어느 협객은 뒤돌아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그가 남기고 간 의자의 빈자리에 햇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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