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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단편문학] 허수아비

ㅇㅇ(49.174) 2023.06.08 20:05:08
조회 1594 추천 59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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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뒷편의 어느 텃밭.



곽말풍 중령은 오늘도 상추잎을 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미나 낫, 삽 등과 같은 농기구들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곳에서 별도의 기구 없이 쉽게 재배하고 쉽게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기도 한 상추는 그에게 있어서 귀중하고도 훌륭한 식량이기도 했다.



밭고랑을 따라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옆으로 옮겨가며 상추를 수확하던 곽말풍 중령의 내리깔은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허수아비가 우뚝 서있었다. 어느새 허수아비가 서있는 곳까지 이른 것이었다.



허수아비는 시체 썩는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사실 허수아비가 아닌, 시체였으니까.



평소 곽말풍 중령의 밭 농사를 경멸스럽게 생각하던 해병들이 이죽대며 허수아비랍시고 갖다준 것은 사실 그들이 즐겨 만드는 '전우애인형' 이었고 곽 중령이 이를 거부하며 자신이 직접 짚과 헝겊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매번 밭에 세워 놓노라면 해병들은 어느새 이를 발견하고는 뽑아다가 갖다 버리고는 비웃으며 조롱을 일삼았던 바람에 별 수 없이 그들이 건네준 이 시체를 허수아비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곽말풍 중령이 이 허수아비를 꺼려했던 이유에는 비단 이것이 흉한 몰골의 악취를 풍기는 썩은 시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구는 진작에 썩어 문드러지고 사라져 그 시체의 눈은 텅 비어 있었지만 곽 중령은 그것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다. 신원 미상의 이 남자는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의 이 해병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 곳에서 이토록 참혹하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필승! 대대장님!"



고개를 돌려보니 빨간 활동복 차림의 익숙한 이가 경례를 하고 있었다. 곽말풍 중령과 더불어 이 부대에서의 유이한 제정신의 소유자, 황룡 병장이었다.



"아, 황룡 병장. 자네 왔는가."



곽 중령이 경례를 받고 손을 내리자 황룡은 아직까지 건재한 군기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칼같이 거수경례한 손을 내렸다. 그는 유일하게 곽 중령을 상관이자 대대장으로 모시는 해병이었다.



그는 아마 오늘도 곽말풍 중령 자신을 설득하러 온 것일 터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네. 난 이곳에서 나가지 않을 것일세."



그러고는 곽말풍 중령은 황룡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아직 수확하지 못한 구역의 밭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부터인가 그는 이 밭을 떠나기가 싫어진 것이었다.



"대대장님, 저 정신나간 놈들처럼 대대장님마저도 변해버리시면 안됩니다. 이럴 때일 수록 마음을 다잡으셔야 합니다. 어렵게 겨우 닿은 공군과의 연락이란 말입니다."



"아니, 난 제정신일세. 그냥 나는 솔직히 내 마음을 말하는 것일 뿐이야. 언제부터인가... 난 이곳이 좋아졌어.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곳에 있으면 난 마음이 편하다네."



걱정과 당혹감이 뒤섞인 시선을 보내는 황룡을 보며 곽말풍 중령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저번에 말씀하신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신 겁니까.."



황룡의 물음에 곽말풍 중령은 먼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으면 나는 매일매일 내 지난 과오를 씻어가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네. 내가 만들어낸 비극의 피조물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며 또한 그 피조물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학대를 받아도 마음만큼은 편했어.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죄값은 치르는 것이라는 위안을 받았다랄까.."



황룡은 잠자코 곽말풍 중령의 넋두리를 듣고 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한차례 곽말풍 중령의 머리를 스치고 가자 어느새 하얗게 새어버린 그의 머리가 드러나며 바람에 가볍게 일렁거렸다.



"생각해보게, 나인들 대대 내에서 벌어지는 사병 간의 가혹행위에 대해 정말 몰랐겠는가. 나도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온 몸일세. 그 당시 상부의 바람대로 부대는 늘 가혹행위와 부조리가 없는 청정구역이 되었어야만 했고 나는 지휘관이자 소대장, 중대장으로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사건사고를 은폐하고 묻어야만 했네. 그랬던 내가 대대장이 되어서 대대 내에서의 그런 일들을 몰랐을 리가 있겠는가."



곽말풍 중령은 말을 멈추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나도 과거의 상부처럼 그리 되더군. 분명히 그런 폐해가 암약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음에도 나는 애써 외면하고 방관하며 그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겉만 열심히 윤기나게 닦았다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대가가 바로 이것이지."



황룡은 곽말풍 중령이 손으로 가리키는 해병성채를 바라보았다. 회한에 젖은 눈으로 해병성채를 올려다보고 있는 곽말풍 중령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참회.



늘 되뇌이고 곱씹던 단어였지만 그 단어의 무게는 날마다 가중되는 듯 했다.



그리고 곽말풍 중령은 나날이 늘어가는 그 무게를 오롯이 홀로 감당하기로 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과오로 생겨난 이 피조물들은 물론, 그 피조물들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이라는 부산물이자 2차 피해자들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치 자신에 눈 앞에 서있는 이 허수아비, 황룡과 같은 이들에 대한 속죄 말이다.



허수아비의 가슴팍에는 옷에서 반쯤 찢겨 떨어져 나가 피로 물들어 있는 '황룡' 이라 실로 수놓아진 명찰이 바람에 힘없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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