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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문학] 경계근무

ㅇㅇ(49.174) 2023.06.16 22: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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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 야식메뉴는 뭐냐?"



그의 갈굼은 늘 그 날의 야식메뉴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무슨 메뉴를 얘기하든 그가 만족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무엇을 얘기하든 결국은 돌고 돌아 나의 찐빠로 귀결되었으니까.



"네, A 병장님. 오늘은 초코샌드를 챙겨왔습니다."



"아 시발, 이거 지난주 월요일에 가져온거 아니냐? 내가 그때 뭐라 말했더라?"



"네, 매일 야식메뉴는 겹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왜 오늘 메뉴가 초코샌드인지 나는 궁금해지네? 선임 말이 좆으로 들린다 그런건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시발... 뭘 맨날 시정하겠대. 너는 이래서 문제야. 어라, 표정이 별로 안좋다?"



늘 이런 식이다.


그와 야간해안 경계근무를 서는 날에는 암묵적으로 그에게 헌납할 군것질 거리를 챙겨가야 했고 그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별로라면서 운을 떼는 것이었다.


설령, 그가 요구한 대로 매일 다른 과자나 사탕, 초콜릿 따위의 것들을 갖다 준다고 하더라도 양이 너무 적다는 둥, 너무 달아서 마음에 안든다는 둥, 생각치도 못한 별의별 사유를 들어 나를 갈구고는 했다.



그냥 다 치우고, 쉽게 말하자면 그는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 꼬투리 잡아서 갈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해두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번처럼 사탕이 녹아 포장지가 잘 안뜯어진다라는 것으로 시작된 갈굼이 어떻게 내 여동생 외모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겠는가 말이다.



하필이면 같은 분대에 속한 선임이었고 주로 같은 분대에 속한 인원들끼리 2인 1조로 조 편성이 되는 바람에 그와 함께 근무 투입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고 그와 함께 해안철책에 위치한 초소에서 보내는 두시간이라는 시간은 억겁과도 같이 느껴졌다.



"하, 됐다. 니한테 뭘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야, 너 K-2 제원 다시 읊어봐."



나의 가족, 친구, 학벌 등에 대한 은연 중에 묻어나오는 비하와 조롱도 끝나고 더는 갈굴 거리가 없어질 즈음에는 그는 늘 이와 같이 암기를 필요로 하는 따분하지만 갈구는 재미와 효과만큼은 확실히 입증된 이른바 '제원 암기' 라는 본연의 갈굼거리로 돌아가곤 한다.


문제는 K-2를 지닌 일반 소총수인 내게 다른 화기의 제원까지도 암기할 것을 강요하고 또 모른다고 하면 군인으로서의 자세가 글러먹었다는 둥, 그래가지고 북괴군이 당장 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둥, 온갖 되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도 당해서 자연스레 외워지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그에 대한 반발심에서 기인하여 K-2 뿐만 아니라 K-201, K-3 등과 같이 나의 주특기도 아닌 화기제원들까지 모조리 외워 줄줄이 늘어놓노라면, 그 또한 아니꼬운 마음에 결국에는 말투에서 꼰티가 묻어나온다면서 궁극적으로는 나에 대한 갈굼으로 귀결되는 것이 그 루틴이었다.



"야, 총기제원은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초병의 근무수칙에 대해서 복습해보...."



초코샌드를 우적우적 씹던 A 병장이 문득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초소 밖의 창가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보기라도 한듯 그의 시선은 어딘가에 꽂혀있었다.



나 역시 갑작스러운 그의 돌발행동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그보다도 먼저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 파도가 밀려와 철썩거리는 것이 아닌, 분명 무언가가 바다 해안가에서 물질을 하는 듯한 소리였다.



"야, 너도 들었지?"



월광이 그리 좋지는 못했음에도 A병장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는 듯 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황망해졌다.



내가 뭐라 대꾸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 A병장은 초소의 선반에 놓여있는 무전기를 집어들고는 상황실을 호출했다.



"XX, 당소는 OO. 금일 어민 야간조업 있는지?"



있을리가 만무했다. 애당초 해안 GOP에서 야간에 어느 정신나간 어민이 사전 신고도 없이 낚시질을 하겠는가.


아니, 애초에 신고한다고 해도 허락이 잘 안떨어질 뿐만 아니라 허락이 난다고 해도 당연히 그날 경계근무를 서는 초병들에게 필히 사전 전파될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할 필요는 있긴 했으나...



".....없음. 무슨 일인지?"



음산한 기계음과 함께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상황실의 응답에 A병장과 나는 얼어 붙은채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A병장은 내가 뭐라할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초소의 창가에 거치된 K-2를 집어들고는 탄창을 분리하여 그 위에 부착된 봉인지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그러고는 탄을 장전하는 소리와 함께 창 밖을 향해 겨누는 것이었다.


나 역시 떨리는 요동치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황급히 K-2를 거치대에서 빼내어 탄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뭐지, 실제 상황인가 이거.


근데 민간인이면 어쩌지? 반대로 진짜 거수자이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발포한다! XX!"



총을 겨누고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던 A병장의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나는 내심 그 무언가가 A병장의 암구호에 대답하길 바랬다.


철썩이는 파도소리 외에는 세상 만물이 호흡이라도 잠시 멈춘 듯한 찰나의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엄폐물로 삼고 있던 초소의 벽에서 몸을 떼어내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와 총열 덮개를 연거푸 다잡으며 창 밖으로 총을 겨누었다.


분명 무언가가 철책 너머의 방파제 언저리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철책 조명의 불빛으로 물들여진 주황빛의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접근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취할 시에는 즉각 발포한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A병장의 다급하고도 단호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꿈틀거릴 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저건 대체 뭐지-



"탕! 탕! 탕!"



순간 고막을 찢는 듯한 3발의 총성과 함께 그것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시금 적막이 흘렀다.



미세하지만 역한 화약냄새가 풍겨져 왔다. A병장은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사격자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시...시발, 야 내가 엄호해줄테니 너 철책 쪽에 가서 한번 확인 좀 해봐."



나보고 가라고?



"예...?"



내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자 그는 여전히 사색이 된 표정으로 윽박지르며 나를 다그치는 것이었다.



"아 이 새끼가, 가서 한번 확인해보라고! 시발, 이 새끼는 총 한번 안 쏜 주제에..."



그의 말에 나는 속에서 무언가가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대로 비록 내가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대한 행동은 취하지는 못했지만 뜻밖의 상황이었는데다 그렇다고 그에게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예, 알겠습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사로잡혀 있던 두려움도 잠시, 그것이 사격을 받고 쓰러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긴장이 이완되고 달아났던 정신이란 놈이 돌아와 자리잡게 되자 다시금 A병장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사주경계 자세를 유지한 채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초소 밖을 나가 철책으로 향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떠한 인기척이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뒤를 흘끗 돌아보자 A 병장은 창가에서 여전히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뒤돌아 보지 말고 얼른 가봐, 이 새끼야!"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어조였다. 그럴 수 밖에, 방금 누군가를 쏴 죽였을테니까.



시발새끼.




철책에 가까워지자 그것의 형체가 좀 더 뚜렷해졌다.


그것, 아니 그는 북한군이었다.


물에 푹 젖은 군복 차림새로 보건대 그는 어쩌면 어딘가에서부터 헤엄쳐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쓰러져 있는 방파제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나와 철책 조명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어떠한 총기나 혹은 장비도 없었다.


어느 부대에서 탈영하여 온 귀순자였을까.



"야! 뭐야, 뭐냐 그거!?"



뒤에서 A병장이 물어왔다.



"....예, 북한군입니다."



"뭐?"



A병장은 내 말을 못믿겠다는 듯 반문하였다. 그러고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시발. 진짜잖아?"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와 철책 너머로 쓰러져 있는 북한군을 신기하다라는 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와... 이거 실화냐... 내가 지금 북한군을 사살한거냐 이거..? 내가 지금 사람을 죽인거냐...?"



그는 눈 앞의 광경을 못믿겠다라는 듯 감탄 반, 놀라움 반의 어조로 연신 뇌까렸다. 그러고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려는 듯 무릎을 굽혔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가득했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긴장이 해소된 것은 A병장에게 있어서 참 불행이었다.



그는 지금 내 앞에서 경솔하게도 자신의 뒤를 드러낸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나 후방감시를 강조하더니 이젠 제 놈이 후방감시에 소홀하지 않던가.



수없이 내 인격을 짓밟고 죽여가는 것에는 희열과 재미를 느끼던 그가 실제로 막상 누군가를 죽여놓자 이렇게 어색해하고 조심스러워 하니 생전 처음 느끼는 역겹고도 메스꺼운 감정이 목전에서 연신 철썩이는 파도 마냥 물밀듯 몰려왔다.



지난 날 그가 내게 내뱉어온 온갖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면면히 스쳐지나갔다.


북한군 시체에 정신이 팔려 나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A병장을 속시원하게 걷어차고 싶어졌다.



새삼 양 손이 무거워져 내려다보니 K-2가 들려져 있었다. 마치 주인의 마음이라도 헤아린 듯이 나를 일깨워주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단발로 맞추어져 있는 조정간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랬지.



나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역시나 나와 A병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총성을 들었을 5분 대기조가 조만간 튀어올 터였다. 나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보였다.



교전 중 전사. 이 정도가 그의 사인으로 적당해 보였다.


물론 그의 몸에서 나올 K-2 소총 5.56mm 탄환은 내가 만들어낸 그의 사인을 설명하기엔 부족하겠지만 그런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어보였다.






방탄을 쓴 그의 뒤통수가 탐스럽게 느껴졌다.




---------------




"오늘 9시 뉴스는 오늘도 얼마 전 있었던 '해병대 X여단 귀순자 사살 및 부대 내 총기난사 사건' 에 대한 소식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인 XX일, 국군 군사경찰 수사 현황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A병장이 행한 부대 내 가혹행위 및 폭언에 대한 동일 소대 내 소대원들의 증언 및 진술이 일관됨을 확인하였으며, 또한 A병장을 총기로 살해한 B 일병에 대한 신문 조사 또한 완료하여 군검찰로 송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군검찰의 수사관으로 계시는 C 수사관님 모시고 이야기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수사관님. 앞서 수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긴 합니다만, 이번 군 부대 내 총기 난사 사건은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 주시죠."



"네, 참 여러모로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두가지 사건이 얽혀 있다랄까요. 비록 귀순자로 추정되는 북한군을 사살하였다고 하더라도 일단 사건의 피해자인 A 병장은 군인으로서의 의무,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경계근무를 서는 초병으로서의 의무는 다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와 별개로 군 부대 내에서는 후임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나 폭언을 해왔다는 증언과 진술이 많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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