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선이 2일차의 이동 경로.
쿠시로에서 출발해서 네무로 찍고 다시 쿠시로로 돌아오는 일정임.
점심을 후딱 먹어 치우고는 바로 근처에 있는 일본 최동단의 등대로 향함.
등대 우측으로 쭉 들어가면 조류 관찰소도 있다는 모양임. 여기 말고도 네무로 본선상에 이런 시설들이 제법 많은 듯.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날씨가 좋았으면 좀 더 선명하게 보였을 건데,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게 하보마이 군도임.
하보마이 군도를 비롯한 쿠릴 열도 전체는 현재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 분쟁 지역임.
이쪽은 유독 바다 냄새가 많이 났는데, 저런 창고 같은 건물 앞에서 다시마를 많이 말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음.
"불러 되찾자 (선조가 쌓아 올린) 북방 영토"
"모든 치시마(쿠릴 열도), 카라후토(사할린)을 반납해라. -북쪽의 수호병-"
예전에 갔던 일본 본토 최북단인 왓카나이와는 다르게 이쪽은 곳곳에 세워진 것들이 되게 험악한 분위기임. 왓카나이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추모하는 글귀를 비롯해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여러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었는데, 이쪽은 대놓고 "땅 내놔라 이 새끼들아"로 도배되어 있음.
이날만 유독 많았던 건지는 몰라도, 노삿푸곶 곳곳에 자위대원들이 많이 와 있었음.
"희망의 길"
아, 드디어 여기도 뭔가 평화로운 전시물이 보이는구나 싶었는데 천만에 말씀.
"이 길은 전국 각지에서 들여온 돌을 깔아서 만든 섬을 향한 길이며, 섬이 반환될 때를 위한 길입니다. 돌 하나하나에 북방 영토 반환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 역시 '땅 내놔라 개새끼들아'의 완곡한 표현이었을 뿐.
시마노카케바시(四島のかけ橋)
방금 전에 본 전시물과 거의 흡사한 의미임.
아까 본 자위대원들이 타고 온 차량.
분위기를 보니까 그냥 놀러 온 것 같은데, 아무리 볼 게 없어도 영내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단 낫다 그런 건가.
아마도 이쪽에서도 최북단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을 건데, 일단은 북방 영토 자료관이라 내부에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료들이 많이 전시돼 있긴 할 거임. 남의 나라 영토 분쟁에는 딱히 별 관심은 없어서 패스했음.
대충 둘러봤는데 진짜 뭐가 없음.
등대에서 이쪽까지 천천히 걸어오면 한 10분 가량 걸리는데, 농담 아니고 진짜 둘러보는 데 10분이면 끝남.
이거 시간이 애매하게 남는데 북방 자료관이나 그냥 대충 훑고 나올까 생각도 했을 정도임.
사진 중앙에 우뚝 솟은 게 '오로라 타워'라는 건물인데, 코로나 기간 동안 관광객이 급감해서 방치되고는 지금까지 재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음.
왓카나이 쪽에는 그래도 기념품 상점 같은 것도 있었는데, 여긴 내가 못 찾은 건지 딱히 안 보여서 그냥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림.
버스 올 때까지 한 10분 남아서 갈까 말까 한 번 더 고민했지만 그냥 안 감. 위의 버스 배차 간격을 보니 하나 놓치면 일정 개박살이라.
그렇게 다시 네무로역으로 돌아와서 다시 열차를 탐.
늦게나마 래핑 열차가 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일반 열차였음.
아무래도 열차 고장이나 뭔 사고로 못 오지 않았을까 싶음.
시골에서 굴리는 한 칸짜리 열차다운 풍경.
운행하는 반대 방향에 서서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듯.
그리고 운행하는 방향 쪽으로 가면 실시간으로 출몰하는 야생동물과 기적을 울리느라 바쁜 운전수의 모습을 볼 수 있음. 진짜 농담이 아니고 선로가 그냥 놀이터인마냥 미친듯이 출몰함. 대부분은 기적을 울리면 도망가는데, 어쩌다가 한 번씩 사슴 같은 게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대로 받으면 사고 수습하느라 열차 지연되는 듯.
기적을 어찌나 자주 울리던지 여태껏 타 본 열차 중에서 제일 자주 들렸음. 한 아저씨는 신경이 쓰였는지 앞에 가서 구경하더라.
한 칸짜리 열차임에도 불구하고 안에 화장실 시설이 다 갖춰져 있음.
시골 노선 특성상 열차 하나를 놓쳐 버리면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데다, 무인역은 대체로 화장실이 없어서 열차에서 해결해야 하는지라.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앗케시만인데, 여기랑 이어진 앗케시호라는 호수 역시 염분이 높아서 굴을 양식하고 있다고 함.
홋카이도가 개척 역사가 짧고 인구 대비 넓은 것도 있어서 땅이 혹사당할 일이 적어서 지력(地力)이 대단히 좋다고 함. 덕분에 홋카이도에서 수확한 농산물이나 길러진 가축들은 맛이 좋기로 유명함.
선풍기와 작동 스위치.
덥지도 않았는데 이게 신기해 보였는지 어떤 아줌마는 눌러서 작동시켜 보고 그러더라. 요새는 확실히 보기 힘든 똥차긴 함.
그렇게 오후 4시 반이 되었을 무렵 아주 빠른 저녁을 먹기로 함.
요 근래 회전초밥에 장난질이 워낙 많았던 것도 있고 해서 주문받아서 그때그때 만드는 방식으로 많이들 전환한 듯.
시메 코하다(전어) - 198엔
이거 참 가성비가 좋았음. 제철이라 고소한 맛이 일품임.
연어 - 253엔
안정적인 맛의 연어. 이 회전초밥 체인은 위에 얹어주는 횟감이 큼직큼직한 게 특징인 듯.
시메 사바(고등어) - 253엔
이거보다 조금 더 기름기가 올라오면 진짜 맛있을 것 같은데, 이때도 무난했음. 지금 먹는 참고등어는 이때보다 확실히 맛있을 거임.
청어 - 253엔
청어도 고등어랑 마찬가지로 조금 더 기름기가 올라왔으면 좋았을 듯. 청어 역시 지금 먹으면 기름기가 잘 올라서 엄청 맛있을 거임.
고래 - 317엔
지금껏 살면서 고래 고기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맛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는 되게 평범하다는 느낌이었음. 일단 붉은 살코기는 흡사 소고기의 우둔살과도 비슷한 식감이었고 바다 생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정도로 비릿한 향도 없고 담백했음.
얘기를 들어보니 고래 고기를 푹 익히면 특유의 향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그렇게 먹어 본 적은 없으니 그건 또 언제 기회가 된다면 시도해 보는 걸로.
츠케 마구로(참다랑어) - 317엔
단가가 높은 가게에서는 진짜 좋아하는 품목인데, 회전초밥에서는 역시 큰 감흥은 없음. 그냥 무난함.
눈다랑어 대뱃살 - 418엔
육질로 봤을 때 냉동된 걸 해동해서 만든 것 같은데, 가능하다면 역시 참다랑어 츄토로가 더 나음.
역시 눈다랑어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참다랑어한테는 못 비빈다는 느낌.
이케지메 칸파치(잿방어) - 418엔
이날 붉은 육질 생선 중에서는 가장 컨디션이 좋았음. 앞서 먹었던 등푸른생선들처럼 조금만 더 기름기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잿방어는 잿방어라 맛있었음.
다랑어 3점 세트 - 418엔
네기토로(자투리 살을 다진 것), 눈다랑어 아카미, 참다랑어 아카미. 역시 무난함.
시오다레 잔기 - 353엔
홋카이도에는 '잔기'라고 카라아게랑 비슷한 향토 요리가 있는데, 고기 자체에 밑간을 강하게 하는 게 카라아게와의 차이점이라는 듯.
바삭하게 튀긴 닭 튀김은 무조건 옳다. 맥주가 확 당기는 짭짤하고 고소한 맛.
오는 길에 잠깐 슈퍼에 들렀다가 17시 50분 무렵에 호텔에 도착함.
밤에 TV나 보면서 먹을 반값 할인 카츠 카레 도시락도 사 옴.
단돈 2,400원에 사 온 거지만 생각 외로 꽤 먹을 만한 안심 카츠를 곁들인 카레였음.
후식으로 먹으려고 사 온 아이스크림인데, 구매할 때는 그냥 쌀 그림이 있어서 여기서 수확한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이구나 싶어서 샀는데, 묘하게 술 향이 남.
자세히 안 보고 골라서 왔는데, 술지게미가 사용되어서 알코올 함량이 0.4%인 술 아이스크림임.
사실 뚜껑 윗 부분에도 잘 보면 酒粕(술지게미)라고 적혀 있었는데, 하겐다즈 옆에 있길래 별 생각 없이 골라서 못 봄 ㅋㅋㅋ
본의 아니게 고른 거긴 한데, 일단 알코올은 향만 약간 나는 수준이고 그냥 달달한 우유 아이스크림임.
본인이 정말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 싶은 정도가 아니라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듯.
워낙 긴 일정이다 보니까 한 번에 쓸 수가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올리긴 할 건데, 조금 쓰다 보면 지금 같은 페이스는 힘들고 주에 2회 정도로 조절하지 않을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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