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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단편문학] 암구호

ㅇㅇ(49.174) 2023.07.06 21:30:42
조회 1576 추천 59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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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모래사장이 민낯을 드러내고 저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어딘가에 홀로 떠있는 어선이 조명을 밝힐 무렵이면 김 상병의 입도 쉴새 없이 바빠진다.



"야, 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재작년이었던가, 여기서 어느 미친새끼가 같이 경계근무 들어간 후임 존나 갈구다가 후임 놈이 선임 새끼한테 그대로 당겨버린 곳이라더라."



또 시작인가, 허언인지 참말인지 분간은 안가지만 입담만큼은 좋아 듣는 맛은 그런대로 있던 김 상병이 꺼내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공포가 버무려진 사건사고인듯 했다.


근데 당겨버렸다는게 무슨 뜻일까?



"당겨버렸다라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방아쇠를 당겼다고, 총을 쏴버렸다 이거야."



"아...."



"나도 소대장한테 들은거야. 듣기로는 갈구는 방식이 좀 특이했다고 하더라고. 니도 알다시피 모든 경계조가 2인 1개조로 각 초소를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경계근무 서잖냐. 그럼 교대하러 오는 놈들한테 암구호를 댈 것이고 말이지. 근데 그때 사수로 있던 선임들이 서로 짜고서 그 후임 새끼가 하는 암구호에 일부러 대꾸를 안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그 후임의 사수로 있는 선임은 왜 암구호에 대꾸 안하는데 그대로 받아주냐고 뭐라 존나 갈궜을테고 다른 선임 사수들도 암구호도 안대는데 니네 뚫린거다 뭐 그런식으로 존나 갈궜다고 하대?"



김 상병의 말에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초소의 후문 밖으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산기슭의 으슥한 오솔길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교대 근무자들은 저 길로 왔겠지.



"사실 후임 갈구려고 마음만 먹으면 뭔 핑계든 못갖다 붙이겠냐. 사수 선임새끼는 수하절차 제대로 안했다고 존나 뭐라 그러지, 교대하러 온 사수 선임새끼도 후방감시 제대로 안하고 뚫렸다고 뭐라 존나 갈구지, 그 후임 놈도 못참고 쏴갈겼었겠지 뭐. 그리고 후임 놈이 벌인 뜻밖의 하극상에 교대하러 온 다른 사수 선임새끼도 얼떨결에 자기도 그 후임을 쏴버렸다고 하더라고. 아마 자기도 쏠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뭐 본능적인 방어기제라도 발동했겠지."



김 상병은 주위에서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들을 손을 휘저어 쫓으며 말했다.


암반에 철썩거리며 부딪히는 파도소리와 어지러이 날아드는 해충들의 소음으로 귀가 어지러웠다.



"아오, 오면서 물을 존나 마셔서 그런지 아까부터 오줌 마렵네. 야, 나 오줌 좀 싸고 올께."



"아, 예. 다녀오십시오."



김 상병은 허리에 두르고 있던 탄띠와 수통을 거추장스럽다는 듯 바닥에 내던지고는 급히 초소 밖으로 나가 아까 내가 바라보던 으슥한 오솔길로 사라졌다.



떠들썩하던 초소에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나는 고개를 돌려 눈 앞에 펼쳐져있는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피를 갈구하며 이따금 날아드는 모기의 잡음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재작년의 어느 그 날에는 한발, 아니 어쩌면 여러발의 총성이 가미되었을테지.




빠지직-




순간 무언가가 정적을 깨었다.



나뭇가지 부스러지는 소리.



김 상병일테지.



원래 같았으면 평소 그와의 두터운 친분과 그의 절차나 의식에 구애받지 않는 널널하고 털털한 성격을 고려하여 형식에 지나지 않을 암구호를 대진 않았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보니 나는 홀로 피식하고 실소를 흘리며 초소의 전방에 거치되어 있는 K-2 소총을 집어 들어 초소의 후문으로 향했다.



전방의 경계철책에 설치된 조명이 있었음에도 초소의 후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자신이 어디를 겨누고 있는지도 모른채 후방을 향하고 있는 총부리는 흡사 눈 먼 봉사 같았다.



"정지, 움직이면 쏜다. 안경!"



잠시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하우스."




하우스? 허, 참. 김 상병 이 사람이 장난치는 것일까. 오늘의 암구호는 안경에 면봉인데 말이지.



나는 피식하고 다시 한번 실소를 흘렸다.



하는 장난은 막상 입담을 따라가진 못하는구나. 나도 장단이나 맞춰 줄까?



"확인."



나는 저 숲속 어딘가에 숨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김 상병을 향해 보라는 듯 씨익 웃어보이며 총부리를 내렸다.



"벌써 다 볼일 보신겁니까? 에이... 잠시 혼자 있어서 좋았지 말입니다."



그러나 농을 던지는 나에게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만 무미건조하게 삑삑댈 뿐이었다.



뭐지?



"김 상병님?"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하우스."



"예?"



"하우스."



"....김 상병님?"



"하우스."



"....?"



"하우스."



가슴이 섬뜩해지고 등골이 섬찟해지는 것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내려놓았던 총구를 다시 치켜들었다. 그리고 어둠의 어딘가를 향해 겨누었다.


그러고 보니 저 목소리는 김 상병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평소 성대모사도 즐기는 그였지만 저건 평소 그로부터 듣지 못했던 음색의 목소리였다.



"뭐, 뭐야. 거기 누구야?"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하우스."


"하우스."


"하우스."


"하우스."


"하우스."


"하우스."



점차 나에게 다가오듯 커지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그 무언가가 빠르게 바스락거리며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야! 정XX! 야!!"



누군가가 나의 뺨을 거세게 때리고 있었다.



흐릿한 초점을 애써 다잡고 보니 김 상병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야! 너 뭐야? 왜 초소 바닥에 널부러져 있어?"



"....예?"



"야 이 새끼야! 오줌싸고 돌아와보니 니가 여기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존나 식겁쳤잖아!"



아, 그랬지.


김 상병은 소변을 보러 잠시 나갔었고 나는....



그 순간 찰나에 끊겨있던 기억이 다시금 벼락치듯 돌아온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그게... 저 김 상병님이 나가셨을 때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김 상병님이 돌아오시는 줄 알고 암구호를 댔는데 웬 놈이 저한테 면봉이 아닌 하우스라고..."



"면봉?"



김 상병이 되물었다.



"예... 오늘 암구호가 안경에 면봉이잖습니까... 그래서 그 무언가가 하우스라고 답하길래.. 제가-"



"오늘 암구호는 참치에 하우스인데?"



"예?"



김 상병을 보자 김 상병의 얼굴 어딘가가 이상했다. 마치 얼굴 전체가 뒤틀려 있는 듯이 잔뜩 일그러져 있는 얼굴이었다.



"오늘 암구호는 참치에 하우스인데?"



목소리마저도 위화감을 주고 있었다. 평소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김 상병이었지만 김 상병이 아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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